모르는 남자를 만난 적 있다.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세 장의 셀카가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취미가 무엇인지 지금 처한 상황이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지 단서가 하나도 없던 관계였다.
다만 나는 만나기 전 그에게 '호모 사피엔스'를 우울하기 때문에 구매했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었다.
그는 나보다 20cm쯤 키가 컸고 덩치가 꽤 있는 편이었는데 내 앞에 마주앉아 다리를 떨었다. 내 눈을 잘 바라보지 못했고 쫓기는 사람마냥 초조해 보였다. 나는 평소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 남자의 말을 들어주느라 조용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대화가 끊기면 지뢰라도 터질 사람마냥 끊임없이 말을 만들어냈고 아이스 커피를 10분만에 다 마신 후 목이 탔는지 얼음을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내가 불편한가? 아님 원래 정신 없는 사람인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 남자 볼이 상기되었다는 걸 느꼈다. 나에게서 호감을 얻고 싶은 거다. 평소 이 남자의 모습이 어떤 지 당분간 알기 어렵겠다.
신기했다. 나를 모르는 남자가 티가 다 날 정도로 설레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두 세시간 쯤 나는 그 남자를 조용히 지켜보고 그 남자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다가 자신만 신나서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 지 이내 조용히 멈췄다. 그리고 이제 시작이라는 듯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과 밥 먹는 게 불편하다고 커피 사줘서 고맙다고. 그 남자는 엄청난 실망감과 난처함이 가득한 얼굴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집이 코앞이고 대낮이며 나도 여기 산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세 시간쯤 지나 내가 잘 들어갔냐고 카카오톡을 보내자 그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다시 상기되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았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당했다고 생각했다. 다신 연락할 지 몰랐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이상형이라고. 너무 떨려서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기억도 안난다고.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냥 사진이니깐 실물과 다르겠지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똑같아서 더 떨렸다고. 날 알지도 못하는 남자는 내가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정신없던 그 남자와 비교해 나는 평소보다 무척 차분했고 어른스러워보였다. 머리 속에 수 많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남자에게 공유해주고 싶거나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남자가 내게 신기할만큼 나도 그 남자가 신기했다. 내 앞에서 떠는 사람 처음이었다. 날 좀 알게 되면 나중에 분명 이불킥 차게 될텐데.. 그가 궁금하지도 우리의 관계가 궁금하지도 않아서 곡성을 보러가자는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을 거절하며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사람에게는 수 많은 모습이 발견될 수 있다. 그 남자도 분명 내가 본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 있겠지.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과 내가 본 그 남자의 모습이 조금도 비슷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이었을까? 그럼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 그렇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진정한 내 모습이라는 게 있기란 할까. 관계의 접점 속에서 딱 내가 보여주는 그 만큼만 나인데. 나를 몰라준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도 억울해 할 필요도 그리 기뻐할 필요도 없을 지도 모른다. 스스로조차.
글을 읽고 나니 갑자기 고물님의 외모와 목소리, 분위기가 궁금해지는데요? ㅋㅋㅋ
글 잘 읽고 갑니닷!
안녕하세요. yjs님 인사드리는 거 처음인 것 같은데 맞나요? ㅎㅎ 부디 이 글이 처음 읽으신 글이 아니시길 ㅋㅋㅋ 조심스레 희망해봅니다. 저는 무지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태그에 따라서 변하는거 같아요
사람도 글도 스위치를 누르면 변신~^^!
모두가 다 나
모든 모습이 고물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역시 모두가 나.. 굳이 뭐가 나인지 고민할 필요 없죠 ㅎㅎ
진짜 좋아했나봐요.
알고보니 그저 산만하신 분일지도 ㅋㅋㅋ
곰돌이가 @fgomul님의 소중한 댓글에 $0.008을 보팅해서 $0.015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5223번 $58.393을 보팅해서 $66.419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첫 눈에 반한다는 게 있군요.
그 남자는 얼마나 설레였을까요?
그런 감정을 느껴본적이 언제인지 ㅎㅎㅎ
전 단언컨대 한 번도 없는 듯;; 무슨 기분일까요?
그런 상대(?)가 되어서 무척이나 신기했어요 잠시나마 설레었다면 다행이죠 ㅋ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남자는 제가 볼 때 피하는 게.. (쿨럭..). 본인이 설정한 타인에 대한 기대가 깨지면 무슨 모습이 나올지 모르죠. 안 만나신 것은 역시 고물님의 눈썰미!
ㅋㅋㅋㅋ어떤 사람이었을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호기심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서로 안 맞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 부담스럽기도 했고요;;; 좋은 오해(?)를 깨트리지 않아 잘 한 것 같아요 무척 신기했습니다 ㅋ
어느 사람이건 다양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조차 알지 못하는 매력을 가끔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그나저나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도 있다니... 이거 소설인가요?ㅎㅎㅎ
!!! 파치님 무슨 매력을 발견해서 소스라치게 놀라셨을지 궁금하네요 ㅋㅋ
사실이지만 믿기 어렵다면 소설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저도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ㅋㅋ 너무나 낯선 경험. 그 남자 이상형이 이상해서 벌어진 일 ! ㅋㅋ
아니에요~
사실 저도 처음 본 아이가 이상형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서 며칠동안 걔가 정상이 아닌걸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혼 때여서 아내님에게는 절대 비밀이지만!! 쉿쉿
어억! 무려 신혼 때!!!! 흐음 흠.. 아내님께 절대 비밀로.
진짜 모습은 같이 살아봐야 알지요. ^^ (결혼이 아니더라도, 단체생활이나 여행이나.)
같이 살아도 영원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때 가지게 되는 모르는 사람의 이미지는 허상이나 편견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아 고물님 저도 제가 이상형이라는 소리 딱 한 번 들어봤는데요. 더 가까이 가질 못하겠더라구요.
뭘 보고? 이런 생각도 들었고...그건 환상이야!!!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없었네요.^^)
고물님 글 보고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재밌네요.^^
미미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맞아요 그런 말 들었을 때 흠칫 경계부터 하게 되요 아마 제 자존감도... ㅋㅋㅋㅋ
잠시나마 추억 소환하며 재밌으셨다니 다행이에요 😁
몇몇 글로 유추해봤을때... 고물님 어마어마한 미인!!!!???
어억 ㅋ 그렇지 않고 굳이 말하자면 간헐적 미인(?) 인 것 같습니다 ㅋㅋ 제 생각엔 솔나무님이 더 예쁘신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