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벨레로폰의 비극 - 3

in #kr-pen7 years ago



[단편] 벨레로폰의 비극 - 3

악사는 타이스의 명상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소녀는 조금 엉성한 실력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타이스가 창녀를 사랑하여 그를 위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작곡을 한 곡, 그러나, 끝내 창녀가 타이스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더욱 애잔한 곡,

나처럼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의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깊은 감동을 한 나머지 눈물을 찔끔 흘렸다.

곡이 절정에 달하면서 음표가 주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이내 사람들의 열렬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이상하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골목에 들어서서 구토했다. 위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음식물이 터져 나오고 콧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강물이 바다에서 일치를 이루듯이 일체가 되어 바닥에 새로운 대륙을 만들어냈다.

어쩌면 내 몸속에서 터져 나온 토사물은 또 하나의 소우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터져 나온 마그마가 층을 이루어 하나의 대륙을 만들어내듯이 나의 내면에서 솟구친 토사물에서도 인간이 탄생하고 그들이 사회를 이루고 지긋지긋한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끼리 좁은 대륙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시기하다가 어느 날 내린 빗물에 휩쓸려 내려가겠지.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희망을 품고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하려는 유기체가 남아있는 한.

지구라는 이 큰 행성에서 희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하고 있는 유기체라면 아까 보았던 걸인 악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남루한 옷을 입고도 사랑하는 딸과 연주를 하는 동안에 그에게 세상은 하나의 천국이다. 그렇담, 객관적으로 그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는 무어란 말인가. 삶은 주관적인 것이라는데, 속에서 끓어오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의 세상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있을까.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과감히 옷을 집어던지고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목각부엉이를 흔들어 깨웠다. 녀석은 여전히 부어-부어-울음소리를 내며 거만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나 같은 소심한 겁쟁이 따위는 결코 자신을 이용할 위인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옳다! 욘석아, 오늘만큼은 네놈의 기를 꺾어주지. 술도 얼큰하여졌겠다. 한 번 붙어보자. 막상 마음을 굳게 먹고 녀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황급히 눈을 돌리고야 말았다.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만약에 태국의 그 할멈의 말이 사실이라면 갑자기 하늘에 우레가 치고 땅이 뒤흔들리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의 흔적이 소리 없이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망상이 나를 덮쳤다.

어쩌면 그건 두려움이라기보다는 기대감일지도 몰랐다. 나는 크게 쉼 호흡을 했다. 들숨과 날숨으로 번지는 공기의 순환을 통해 우주의 강렬한 충만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다시금 용기를 얻은 나는 목각부엉이의 대가리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고 그것에 오롯이 집중했다. 그리고 숨을 셌다.

하나.

둘.

셋.

서른.

아흔 여덟.

아흔 아홉.

또 두려움이 마음속에 일었다. 다리에 쥐가 나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숨을 계속해서 모았다.

백!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