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동경하며 멍청이들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는 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멍청이들에게 혈압을 올렸는지 궁금해 밤에 혼자 누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원인이었던 한 일화가 떠올랐다.
나는 서울 금융고등학교 2회 졸업생이다. 서울금융고등학교는 특성화고로, 대학교 진학보다는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학교였다. 나는 금융권 취업에 대한 의지보다는 투자 그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집에서 꽤 멀리 있던 학교임에도 금융고를 선택했다.
고등학생 1학년 때 진로 관련 강연을 하러 오신 강사님께서는 학교에서 취업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금융권 취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의하셨다.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에서는 특성화고를 다니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금융권에 취업시키기 위해 우리가 진심으로 금융권 취업을 삶의 목표로 삼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강사는 20여 명 정도의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너는 꿈이 뭐니?"라고 질문했다. 학교에서 금융권 취업을 원하고, 강사가 그에 대해 강연을 하러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들었던 답은 모두 은행원, 금융계통 취업이었다.
여기서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재수 없고 못된 나의 성격 탓에 다른 학생들의 대답을 비웃듯이 건방진 지적의 뉘앙스를 가득 품은 대답을 했다.
"꿈과 장래희망은 달라요"
그 당시 나의 장래희망은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펀드매니저였지만 당시 나의 꿈은 올바른 투자방법을 가르치고, 성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주식투자로 입었던 상처를 극복하게 해주는 투자 치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내 꿈과 장래희망은 다른 영역이었다.
그 강사는 기가 찬 듯 뭐가 다르냐며 나의 대답을 치기 어린 반항 정도로 취급하고 주위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내 질문을 크게 비웃으며 다른 학생에게 질문을 옮겼다. 별로 나의 말을 귀담아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강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대놓고 지적했음에도 아무런 기색 없이, 그리고 내 주위에서 그를 인지하지 못하고 같이 비웃던 아이들의 모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화가 났다. 내 질문이 어떤 의도를 가진 질문일지 강사도, 학교도 뻔히 알면서도 회피하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나는 직업을 가지는 것 정도로 삶을 행복이 여기고 만족하며 내 존재를 낮추면서 살 생각이 없었는데, 학교와 강사는 모두 내가 야망이라고는 없는 금융권의 부속품이라도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 강사는 대기업, 은행, 금융권에 들어가기 위해선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열심히 노오오오력 해야 한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명강의를 보여주고는 멍청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렇게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정확히 이 비웃음을 받은 경험이 내가 멍청이들을 싫어하고 똑똑한 사람을 찾아다니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비교적 명확하게 핵심을 찔렀음에도 관심종자의 어그로 정도로 치부하는 멍청이들과 나대지 말고 분위기에 묻혀가자고 판단하고 같이 비웃던 찌질이들의 콜라보에 멘탈을 놓고 강의 후 질의응답 갖는 강사의 말을 무시하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똑똑한 사람을 찾아 내가 입학하자마자 만들었던 서울 금융고등학교 투자동아리, FINIS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반 친구들끼리 하던 수준의 작은 소모임에서, 학교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을 모아두는 장소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여 학교에서 원하는 금융계의 부속품이 아니라 그들 자체로 빛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우리 동아리는 매주 모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기업들을 분석하고, 투자했다. 분명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마지막까지 동아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가장 깊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아이들이었다.
강의에서 비웃음 받았던 경험은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내 주변에 둘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스물넷이 된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다행히도 나와 같이 진로 강의를 듣기 위해 앉아있던 아이들보다는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직업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아이들이 부러워 할 만한 일을 해나갔던 나는 그들보다는 조금 더 똑똑하게 삶을 살아나갔던 것 같아 자랑스러워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그 진로 강사에게 강의를 듣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판단을 할까?
강사에게 화를 내고 언쟁을 이어가며 강의를 망쳤을까?
듣기 싫어 밖으로 나갔을까?
잘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멍하니 앉아있던 그들과 같은 판단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D !!
보팅 감사합니다 :)
저도 꿈을 비웃음당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대답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이 목표라고 했었는데.
그분은 이해하지 못하고 비슷한 식으로 웃어 넘기더군요.
충격을 받고 그 이후 다른 얘기는 안들리고, 그 상황만 계속 곱씹은 적이 있습니다.
원하는 사람만 만나기에도 인생은 짧습니다.
이런 꿈같은걸 묻는 시점은 어릴때라 상처가 더욱 심하고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ㅠ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걸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는 꿈이 어렸을 때부터 바뀌지 않았었습니다... '후회 없는 무덤'이죠...
경험상 대다수의 기득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성세대라고 해야 할까요..
무튼 '안정적이고 사회가 가는 방향과 발을 맞춰 가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여정을 부정 받기 싫어서인지 창의적이고 새로운 사고에서
나오는 비판적인 시각을 선택적 수용하더라구요...
같은의미여도 유명인들이 하는 궤변들에는 맞장구 치는 모습을 보이는 등의 모순..
'유명해져라. 그럼 똥을 싸더라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 경우가 아닐런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침부터 글이 길어졌네요!! 결론은.. 본인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겉으로는 '사회가 가는 방향과 발을 맞추되'
시야는 그 너머를 보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부터 '꿈과 장래희망은 다르다'라는 말에서 좋은 느낌을 받아
댓글 남기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덧글을 읽으며 저 또한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팔로우 했습니다. 친하게지내요!
분명히 불쾌한 경험이었을텐데 그 감정을 멋지게 승화해내셨네요.
존경합니다. 우리나라는 주체적인 사고를 못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죠...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다수의 선생님들이 저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ㅠㅠ
빛나는 20대를 썩혔던 제 모습이 자꾸만 회자되서 현자타임이 오려고 하네요...ㅋㅋ
그냥 부족한 저 스스로를 인정하면 되는데 인정하기 싫은 제 자아를 보면서, 이 상황을 정신승리하며 자기위안으로 끝내면 꼰대가 되는것이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그때부터 겸손하게 다시 시작하면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근데 인정이 쉽지 않군요ㅎㅎ)
뭐 사실 제가 했던 대답부터 무례했긴 해서 억울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오기가 생길 때 크게 자극받는 타입이라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멋지게 사는 20대로 표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부탁드립니다!
잘 살펴보지 않고 함부로 재단하고 낙인을 찍는 태도가 가장 문제인 것 같습니다. 누구든 같은 삶의 경험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개인의 삶에 있어서 일반론적인 가치를 설파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가진 기준이라는게 자신의 잣대밖에 없는지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 과정에서 무례한 행동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거꾸로보면 글의 내용에서도 제 가치관대로 강사분의 가치관을 깎아내린 거기도 하니까요. 어렵습니다.
사람은 실수하면서 배우기도 합니다. 실수는 누구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스스로가 그 때보다 좀 더 성장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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