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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7] 박물관에서 본 개 모자이크
로마에 도착해서 바로 나폴리로 온 건 폼페이 때문입니다. 라틴어 교재에 사진으로 실려 있던 모자이크를 직접 보게 되었어요. 별생각 없이 여행을 시작해서 이탈리아 하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라틴어 교재 속 사진 뿐이기도 해요. 폼페이에서 나온 유물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놓여 있습니다. 나폴리 역 근처 숙소에 짐을 놓고 일단 박물관으로 곳으로 갔습니다.
오로라 보는 걸 빼면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일정입니다. 나폴리는 로마에서 고속철로는 1시간 일반 열차로는 2시간이면 올 수 있고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1시간이 안 걸리니 로마에서 폼페이를 들른다면 나폴리 박물관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폴리에서 하룻밤 묵어야 했어요. 이탈리아에 있는 중간에 나폴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나폴리에서 하루 보내고 나머지를 로마에서 연박하는 게 여러모로 편했는데 처음 새워본 일정상으론 나폴리에 도착하는 날이 박물관 휴관일이어서 전체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폼페이는 여행 가기 전에도 언젠가 한번 가보려고 했지만 나폴리 박물관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폼페이에 대해서 대충 찾아보는데 폼페이같이 베수비오 화산에 파묻힌 동네의 유물이 나폴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말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유물을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해서 폼페이가 휑하게 비어 있는 건 아니에요. 옮기지 않은 유물도 있고 복제품을 놓아두기도 했습니다.
원본을 보고 싶어서 나폴리 박물관에 혹한 건 아닙니다. 차라리 아주 잘 만들어진 복제품이 원래 있던 자리에 놓여 있는 게 더 많은 의미를 보여줍니다. 액자에 넣어져 그림처럼 걸려 있는 진품 모자이크는 미적 대상일 뿐이에요. 잘 복제해서 현관 바닥에 놓여 있는 모자이크를 보면 주위와 관계와 쓰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어떤 개 모자이크를 봤을 때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만 했는데 폼페이에서 이 모자이크의 복제품이 건물 현관에 놓여 있는 것을 보니 개 조심하라고 만들어 놓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개 조심 표지라는 쓸모를 알게 되면 개의 표정이 더 사나워 보이고 느슨해 보였던 목줄이 금방이라도 풀릴 거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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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8] 폼페이에서 본 개 모자이크
나폴리 박물관에는 중동 유물도 전시되어 있어요. 미라가 담긴 관이나 이집트 상형 문자가 쓰인 비석 같은 거죠. 이건 순전히 제 상상인데 박물관과 놀이동산은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인터넷도 없고 통신의 폭과 속도가 느렸던 시대라면 박물관은 정말 깜짝 놀랄만한 물건들로 가득 찬 신비한 곳입니다. 지금도 판타지 영화에서 신비한 소재로 등장하는 미라 같은 건 차차 하고 이야기로만 듣던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물은 시각적으로 큰 자극을 줬을 겁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인터넷에서 하릴없이 재미있는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는 것처럼 박물관 둘러보는 일도 시간을 때우고 자극을 찾는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바 없어요. 박물관의 일반 관람 동선에서 벗어나 보면 여러 학술적인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곳은 한 번 훙 둘러보는 사람에게는 별로 유의미한 공간이 아니지요. 그냥 관람해도 얻는 게 있기야 하다만 그렇게 얻는 거나 심심해서 열어본 웹 페이지에서 생각지도 않게 뭔가 배운 거나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다른 일보다 더 고상하게 느껴집니다. 포털에서 본 사진이나 글은 시시하고 박물관 돌아다니는 건 좀 있어 보여요. 그래서 나폴리 박물관에 간 겁니다. 있어 보이니까요. 뭘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다면 갔으면 공부를 충분히 하고 갔겠지요.
그래도 애매모호하니 앞에서 말한 있어 보이는 게 뭔지 더 따져 봐야 합니다. 객실에 처박혀서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시간 때우는 것보다야 머리라도 감고 박물관에 간 게 더 있어 보이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고급 자동차나 정장 광고를 보며 느끼는 순전히 외적인 있어 보임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뭐 대단히 배운 사람이 된 느낌을 받으려고 간 건 아니란 말입니다. 모르는 도시에 갔을 때 본전 생각에 뭔가 해볼 거리 목록을 만들면 박물관 가기가 상위에 있어요. 있어 보이는 박물관 가기는 제 눈에 익고 귀에 익은 행동입니다.
낯선 동네에 가서 여유가 있다면 작은 길이라도 어느 정도 걸어보는 편이에요. 어떤 건물이 있는지 간판은 어떻게 놓여 있는지 사람이 몰리는 곳은 어딘지, 이런 것들을 보면 이 공간에 묻은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부동산에서 동네를 물어볼 수도 있고 술집에서 동네 사람들과 살 부딪칠 수도 있지만 제가 마주하고 싶은 세상은 이렇게 개인적으로 깊은 수준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홀히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 동네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그냥 직접 그 동네 사람을 마주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뭔가 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어요. 동네 사람을 직접 마주하는 행동, 그러니까 그 동네의 세부사항을 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지만 몇몇 세부사항만 아는 건 되려 잘못된 인식에 이르게 합니다. 여행 가서 택시비가 우리나라보다 비싸다고 택시 기사에게 덤터기 씌었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 사람이 모두 사기꾼이라고 믿는 건 용감하게 무식한 겁니다. 적어도 그 나라 택시비는 찾아보는 노력은 필요해요.
박물관은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걸 정제해 놓았습니다. 설명과 관람 동선이 있으니 중요한 건 강조되기 마련이에요. 거리에서라면 잘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 잘 정제된 박물관 안에서는 명확히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 국가의 대표 공항은 그 나라의 현대 박물관이라 해도 돼요. 보통 공항은 이름부터 그네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따오기도 하고 자랑하고 싶은 최선 건축 공법을 사용하지요. 건물의 운영 측면에서도 가능한 잘 갖추려 합니다. 예컨대 공항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면 그 나라의 외국인을 위한 배려는 안 봐도 알 수 있어요. 공항의 안내 표지는 여러 사람의 생각 모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통의 생각을 보여주는 거니 불친절한 택시 기사 한 명을 만난 것과는 다르지요.
폼페이 유물이 나폴리 박물관에 있었군요. 저희는 폼페이보고 바로 시칠리로 넘어갔었는데...
그것도 몰랐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려나.
여행, 사진을 보면 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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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 같아요. @happycoachmate님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곧 찾아오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