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음악 일기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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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쓴 글은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신도 체력도 바닥인 상태에서 쓴 글이다. 대상포진을 몇 주 째 앓고 있다. 그런 몸으로 평소의 몇 배의 스케줄을 소화했다. 저번 주부터는 감기몸살도 함께 걸려 매일 피할 수 없는 근육통과 뜨거운 몸으로 어딘가에 있어야 했다. 지금도 완전히 나은 건 아니지만, 다행히 어제 쉬면서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어제 있던 중요한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그날 잡힌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요 며칠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질 정도로 버거웠다. 쉬지 않고선 공연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일정을 다 미뤘다. 지금 상황은 공연 연습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연습은 생각도 하지 않고 ' 16시간 자기'를 목표로 하루를 보냈다.


열두 시간 정도 밖에 못 잤지만,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에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간만에 개운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일정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고, 몸 상태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다시 정신을 다잡아본다.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고, 일을 무리하게 벌이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고, 모든 것을 내가 하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요즘은 유튜브 뮤직으로 음악을 듣는다. 유튜브 뮤직에는 다양한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지금은 '카페 분위기 해피 재즈'를 듣고 있다. 내심 별로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역시 별로긴 하지만 나른한 보사노바가 많이 들어있어 멍하니 듣게 된다.


< João Gilberto - Doralice >


유튜브 뮤직에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의 Thumbs Up 플레이리스트' 시리즈를 멈추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플레이리스트가 있잖아?

그래도 글을 쓰기 위해 음악을 추리는 과정이 즐거웠다. '나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도 좋고... 어느 날 아무 일 없었단 듯 다시 연재할 생각이다.


이번 주에 들었던 음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곡이다.



< Peter Shmalfuss - Fantaisie in f minor op. 49 >

버스 안에서 잠결에 처음 듣게 되었다. 도입부가 촌스럽다는 생각에 곡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래서 집중하게 되었다. 고음과 저음의 피아노 음정이 불안했다. 높은음으로, 낮은음으로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바심을 내게 됐는데, 그래서 연주에 더욱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날 것의 연주를 듣는 기분이었다.

조금 지나선 저음역의 연주가 나오는데, 그때 피아노의 현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그 부분에서 스트링이 들어온 건지 피아노의 소리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 갸웃거린 기분이 난다. 일어나서 다시 들어보니 스트링 연주로 들었다는 사실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 부분이 어디였는지는 찾을 수 없다.

며칠 이 곡만 들었다. 음과 화성을 쫓으며 듣다가 한 번은 악보를 펴고 들은 적도 있다. 정작 악보를 보니 재미가 없어져 다시 귀로 집중해 들었다.

어떤 키로 변하는지, 어떤 화성이 중심인지, 어떤 모티브가 있는지 그런 것들을 집중해 들었다. 이 곡은 '모티브를 위한 모티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많이 듣다 보니 그것마저 잊을 정도로 좋아졌다.


< Thelonious Monk - 'Round Midnight >

이 곡은 연주자보다는 곡이 먼저 다가왔다. 'Round Midinight은 리얼북 4권에 있는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헤드가 'Round Midnight이라는 사실에 기뻐 연주자를 확인하니 몽크였다.

델로니우스 몽크는 이 곡의 작곡가지만 투박한 연주가 와닿지 않아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더 즐겨 들었다. 한참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듣게 되어서인지, 몽크의 연주가 무엇보다 아름답게 들렸다. 툭툭 내뱉는 듯한 무심한 연주도, 고집스러운 터치와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나믹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22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도 마음에 들었다.

녹음 현장이 한 곡에 담겨 있는 것도 좋다. 말소리가 나올 땐 잠깐 정신을 환기시킬 수 있었고, 그 후엔 다시 연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몽크가 되어 연주하는 상상을 했다. 몽크의 공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때라면, 이런 정신이라면 몽크처럼 연주할 수 있겠어.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맞이하고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당장 욱신거리는 근육통만 사라져도, 한 번씩 눈을 깊게 감게 되는 피로함만 사라져도 더 환해질 것 같다.

댓글 하나 달지 못하고 와다다다 토해내고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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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修行)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몸이 아주 망가져 있어요. 참 이상하죠? 이론상으론 수행을 하면 할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좋아진다고 하는데 그 반대인 경우가 많거든요.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수행용어에서 정의내리는 집중과 그침(止)의 분간이 잘 안되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중은 바꾸어 말하면 몰입이지요. 시간가는 줄 모를정도로 하나에 마음을 두는 것이지요. 이러한 몰입이 극대화가 되면 천재성이 발휘된다고 하지요. 예술인들도 몰입에는 일가견이 있는분들이 많지요. 그러나, 단명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몰입의 탐닉에 빠지다보니 몰입된 대상이외에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거 같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탐욕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몸도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몰입에는 止(그침)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몰입을 하되 모든 것을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쉰다는 것을 또 관찰하면서 쉬는 것입니다.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되 거기에 매몰되어 버리면 다른 중요한 것을 잃을수도 있지요.

공자할아버지의 중용(中庸)은 때에 맞게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과 그것을 의도하는 마음과 그것을 되게하는 몸, 이 세가지가 잘 조화롭게 굴러가야 온전한 예술가가 되는거 같습니다.

그니까 내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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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도)을 쉬고 보약자셔요.

해당 댓글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바를 잘 풀어 주셨네요

몽크는 한 번 손대면 오늘 하루 종일 듣게 될까봐 조금 미루고 댓글 먼저 남깁니다. 이따 늦은 밤에 들어봐야겠어요. :)

공연이 다가오고 있다보다 무대가 다가오고 표현이 더 와 닿네요.
계획된 공연이 어서 끝나서 홀가분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대상포진이 계속 머물 정도라면 최근 꽤 무리하신게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건강 잘 챙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요"라는 게 욕망과 욕심으로부터 정의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사실 욕심 (야망?)이 상당히 큰 사람이라, 필요로 하는 것들, 혹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 편인데, 사실 이러한 것들은 (긍정적인 측면으로서) 삶의 동기가 되면서도 과하면 좀 무리하게 되더라고요. 여튼, 균형점을 잘 찾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