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어느 멋진 날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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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X가 바지 왼쪽 주머니에 없었다.

철렁,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나는 출시 전 예약해서 산 아이폰X를 약 30일 만에 술처먹고 잃어버린 전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 두 번째 아이폰X 였다. 나는 두 번째 아이폰X을 분실한 것이었다. 야상 바깥의 주머니 네개를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애초에 내가 거기 전화기를 넣었을 리가 만무했다. 머릿속이 하얬다.

‘제2차 아이폰X 분실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멋진 하루였다. 나는 큰놈과 단둘이 데이트를 했다. 놈이 좋아하는 당근 케잌과 아이스초코를 먹였다. 그리고는 키즈카페에 갔다. 한 일년 전쯤 놈이 신나게 놀았던 곳이었다. “내가 데려가면 좋아하겠지”라고 나는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놈은 키즈카페에 입구에서 홱 돌아서면서 “나 여기 싫어”라고 했다. 나는 “아냐 OO아 들어가서 한 번 보자.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나오자”라고 했다. 큰놈은 “싫어. 안 갈래”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 단전 저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랐다. ‘짜증’이었다.

나는 애써 그것을 누르고 “OO아 저기 봐. 자동차도 있어. 자동차 타자”고 했다. 놈은 “그럼 자동차만 탈래”라고 했다. 내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실내화로 갈아신었다. 그리고 놈을 내 무릎에 앉히고 놈의 신발을 벗겼다. 놈이 말했다. “쉬 마려”

뜨거운 것이 나의 누름을 뚫고 삐져나왔다. “야, 너!”라고 소리쳤다가, 다시 짜증을 억눌렀다. 내 기억엔 키즈카페 내부에 화장실이 없었다. 놈과 건물 공용 화장실에 갔다. 놈은 아직 성인용 소변기에서 소변을 보기 어려워한다. 놈을 좌변기에 앉혔다. 불이 안 켜졌다. 휴대폰 조명을 쓰려고 두루마리 휴지 보관함 위에 폰을 올렸다. 문을 닫으니, 비로소 불이 켜졌다. 핸드폰 조명은 필요가 없었다.

놈의 옷을 다시 입히고 손을 닦이고 다시 키즈카페에 갔다. 선불이었다. 성인은 식음료를 별도로 주문해야 했다.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안 놀겠다는 놈은 신이나서 뛰어다녔다. 나는 자리에 앉아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려 했다. 꺼낼 수가 없었다. 전화기가 없었으니까.

아뿔싸. 화장실에 두고 온 것이었다. 길어야 10분 전 일이었다. 급히 건물 공용 화장실에 갔다. 아들과 들어갔던 칸에 사람이 있었다. 문틈 사이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염치불구 거기 핸드폰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키즈카페 직원의 전화기를 빌려 전화를 한 10통쯤 했다. 안 받았다. 못난 나는 용변 중인 그를 의심했다. 직원의 전화기로 화장실 앞에서 다시 전화했다. 벨소리도, 진동음도 없었다. 못난 나는 또 속으로 큰놈을 원망했다. 큰놈이 내 정신을 빼놓아서 전화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아니다. 내가 덜렁대다가 분실한 것이다. 큰놈을 탓할 수도 없고, 탓해서도 안될 일이었다. 나는 마음을 접었다. 그것은 내 손을 떠난 물건이었으며 다시는 찾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나는 아들과의 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나는 문득 “어휴 내 돈”하면서 한숨 쉬었다. 큰놈은 “아빠 전화기 때문에 그래? 찾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응.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겨우 웃었다. 직원 전화기로 아내에게 내가 또 전화기를 잃어버린 사실을 전했다.

2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착찹한 마음으로 큰놈을 카시트에 태웠다. 차 대시보드 중앙 휴대폰 거지대에 우뚝, 내 아이폰X가 서 있었다. 종일 쌩쇼를 한 것이었다. “에라이 등O아”라고 속으로 말했다. 아이폰X를 찾기 전까지 나는 “아이폰XS는 언제 상륙하지? 잃어버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따위의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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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이네요~ㅎㅎ

예 참으로 다행입니다~ㅎㅎ

다행이지만 에너지 소비가 어마무시했을 듯한...

예... 그래서 밤에 뭘 시켜먹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

아오... 크...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이해가 되면서도 헛웃음이 나오네요. 아무튼 여러모로 다행입니다.

ㅋㅋㅋ 저도 이제 다 됐나 봐요...

아, 대체 내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식은땀이 바짝바짝 나는 상황...아으..

식은땀부터 눈물까지 줄줄... 흑흑. 그래도 찾았으니깐요 ㅋㅋ

두루마리 휴지 보관함 위에 올린건 무엇이었을까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ㅎㅎㅎ
즐거운 하루 되세요

참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했어요.

분.명.히. 휴지 보관함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았는데 말입니다...
보관함 위에 제 폰이 올라가 있는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한데 말입니다...
심지어 뒤집어서 올려놓은 것까지 떠오르지 말입니다...

ㅎㅎ 저도 그런적이있습니다 ㅎ
즐거운한주되세요

너무 안타깝다가 마지막 반전에 다행!
이토록 생생한 에세이라니; 함께 화장실에가서 벨소리를 훔쳐듣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하루가 있죠;; 운수좋은날같은 ㅋ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도 뭐 결국에는 무탈하였으니 만족하면서...

만약에 핸드폰을 누가 찾아줬으면 사례금 한 5만원은 주었겠지. 그렇다면 5만원 굳은 것이 아니냐. 내가 찾았으니 내게 5만원을 줘야 한다

따위의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다가 아내에게 등짝을...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요. 아이폰XS 탐내셨던 것도 너무 웃겼는데 ㅋㅋ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은 정신없음의 연속이군요..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ㅠㅠ
그 와중에도 짜증 안 내려고 하시는 것이 정말 멋집니다!

무사히 폰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진짜 어휴... 매번 다짐만하지 어젯밤에도 짜증을 내곤 말았습니다 ㅠㅠ

선불 키즈카페에 화장실이 없다니요.... -ㅅ-
보통 다 그런가여 ㅎㅎ

심지어 카페 내부에 있더라고요. 아아 대체 저의 기억력이란...

사실은 아이폰 XS가 사고 싶었다는 무시무시한 결론... -ㅁ- 왠지 찾았을 때 아쉬우셨을지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닙니다.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ㅋㅋㅋ

그래도 다행입니다. 정말 어떨 땐 손에 들고 어디 있나 찾아요. -_-;;

아이폰을 마주했을 땐 기쁨과 동시에 끝모를 자괴감에 ㅋㅋ

가슴이 서늘해 지는 해피엔딩이네요. 스마트폰 잃어버리면 충격이 보통이 아니죠.

예 돈도 돈이지만, 그 안에 저장해놓은 각종 정보며 메모며 등등. 후아. 아찔했습니다.

그래도 차량에서 그 폰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ㅋㅋㅋ 가즈앗!!!

그렇습니다! 기쁨의 춤을 추면서. 둠칫둠칫. 가즈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