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피날레(청춘시대 12화 - 마지막회)

in #kr8 years ago

12회로 드라마 청춘시대가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볼 때 이 드라마를 끝까지 챙겨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다른 드라마보다도 잔잔하게 집중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인기 있는 드라마들은 도입부가 화려하고 흡인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대부분 중반을 넘어서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정리하는 부분이 뻔하게 쾌속으로 흐지부지해서 끝까지 시청자가 집중하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유명한 드라마들도 사실 전반부의 매력 덕에 지속적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지 마지막까지 그 매력을 유지했던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제가 본 드라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결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만족스러운 정도를 넘어선다고 할까요?

드라마는 어쨌든 결말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중심이 되는 핵심 사건이 있고, 종국에는 그 문제에 대한 결론을 제시해야 하는데요. 보통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았다' 라던지 '결국은 슬프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중 하나가 되는 이유는 그 핵심 사건이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 레지던트가 주인공인 드라마라고 해보죠. 아마 도입부는 그 여주인공이 처한 환경이나 주변의 상황 덕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테고, 그런 꼬인 상황에서의 전개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끌게 되겠죠. 하지만, 결국에는 '주인공은 모든 역경을 딛고, 실력 뛰어난 의사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정도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리 복잡하게 끝내려고 해도,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하려면 재미있었던 주변의 꼬인 관계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던 여러 사건들과 그에 관련된 주/조연들이 하나 둘 극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되면 이야기는 점점 싱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조금 다릅니다.

청춘시대는 다섯 명의 여주인공들이 교묘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설정을 배경으로,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서로의 관계를 연결시켜가며 유니크한 스토리들을 이어나가게 되는데요. 절대로 누구 하나가 뚜렷한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그 덕분에 기존 드라마 포맷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초반부에 조금 헛갈릴 수가 있겠습니다.

'대체 누가 주인공이지?'

이렇게 말이죠. 사실 이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꽤 큽니다. 만약 다섯 명의 캐릭터 중 한 명이라도 매력이 부족하게 되면, 그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이 지루해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채널을 돌려버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이런 구조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원톱 배우에만 집중하면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데 그런 위험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청춘시대는 시나리오부터 다섯 명의 캐릭터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반응하면서 각자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으며(쪽대본으로 작업했다면 이 정도로 캐릭터 간의 텐션을 유지하도록 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겠죠. 청춘시대는 이미 슛 들어가기 전부터 극본이 완성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섯 명의 배우들도 탑배우들은 아니지만 각 캐릭터들을 이해하고 이에 적합한 배우들을 고심해서 골랐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가 이 드라마 완성도의 핵심이겠죠?
사실 청춘시대는 중반부까지 던져놓은 떡밥들이 너무 많아 12회로 이 모든 것들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랬었기 때문에 마지막 회를 보고 난 지금은 마치 무슨 마법을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여운을 남겨가며 다섯 명이나 되는 캐릭터들의 사건들을 우아하고 세련되게 정리할 수 있다니 박연선 작가의 내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네요.

모든 연기자들의 연기는 마지막까지 흠잡을 데 없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윤진명과 박은빈이 한예리와 박지원 뒤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연기자이니 당연할 수 있겠지만, 유은재는 정말 끝까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돋보이더라고요.

'뭘 뽑아도 꽝이면 안 뽑으면 되지'

사람들은 내가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그 문제를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잊게 되나 봅니다. 포기를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 해결 방법의 하나인데도 말이죠. 여운이 깊은 마지막을 저 대사로 대신해볼까 합니다. 화영의 단발머리만 아니면 정말 완벽했을 것 같네요.

이 드라마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다시 보고 싶어 질 것 같은데,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정주행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