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리온 스트리트의 계단에서

in #kr8 years ago

오랜만에 프리시디오의 스타벅스에 왔다.

이 곳은 다른 스타벅스와는 달라서 전원을 쓸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두리번거리면서 꼼꼼하게 찾아야 한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숲을 마주할 수 있는 야외 자리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원을 찾는 게 힘들지 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어 금방 앉을 수 있다. 싸들고 온 짐을 풀고는 작업해야 하는 자료들과 씨름하다 보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오늘 샌프란시스코는 더할 나위 없이 맑다. 요새 며칠 내내 흐렸어서 밖에 나가기도 싫었었는데 말이다. 버릇처럼 늘 쓰고 있는 헤드폰에서는 ‘추억은 사랑을 닮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때는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듣고 다녔던 곡이다. 가사도 예쁘고, 멜로디도 예쁘고, 박효신 목소리도 예쁜 곡. 내 목소리랑은 어울리지도 않고 제대로 부르려면 한 음이나 낮춰야 했지만, 부를 기회가 되면 용감하게 불러 댔었다.

'추억은 바람을 타고 언젠가 흩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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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스트리트를 따라 프리시디오로 내려가는 계단은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계단 위쪽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며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바로 '하나 둘 하나 둘' 아랫 쪽으로 성실하게 걸어 내려가면 된다. 내가 올 때 마다 이곳은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흩어지고, 햇빛이 나뭇잎 위에 부서졌다.

‘프레임 드래깅’을 눈 앞에서 본다면 이런 느낌일 거야.

계단과 발 끝만 보며 시공을 초월하듯 걸어 내려가다 보면 이내 프레시디오 입구 앞에 도착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먼저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곳이라면 노래 가사 대로 추억을 흩어 보내기에 딱 좋은 곳일 거다.

기회가 된다면 박효신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