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원죄와 벗어날 수 없는 고통(청춘시대 9회)

in #kr8 years ago (edited)

'어딘가를 가려고 하니까 길을 잃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표 같은 걸 세우니까 힘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길을 잃나 보다.'

가벼운 사건들로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는 드라마 청춘시대는 9편에서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대한 고민을 강이나와 윤진명의 대비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세월호 같은 재난의 피해자였던 강이나는 사건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밀쳐내며 결국 살아남았지만, 일생에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얻고 말았습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어간 사람의 모습을 마주했던 그때, 그녀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의 본질을 보았거든요. 그 이후로 그녀는 어딘가를 가려하지 않고, 목표 같은 것을 세우지 않은 채, 오늘만을 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불확실한 미래를 앞에 두고서도 하루하루 힘든 삶을 이어가는 윤진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취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의 순간에 행복해하는 진명과 친구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진명을 축하해줄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를 부정하며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할 미래가 없었으니까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녀는 그런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삶의 원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겪어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결과가 그런 것이라면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말이죠. 박연선 작가는 끝내 진명의 희망을 꺾어 버리고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어 버렸지만, 진명은 언제나처럼 다시 일어설 겁니다.

이런 불확실과 고통의 연속인 삶을 고독 속에서 묵묵히 수행하듯 걸어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애처로우면서도 사랑스러워서 살짝 뒤에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후반부의 매니저에게 의심을 받았던 진명이 오열하며 재완에게 안기는 장면은 무거웠던 9회를 보며 힘들었을 시청자를 위한 작가의 작은 선물이었을 겁니다. 지옥 같은 순간을 보낼 때에도 당신을 받쳐주고 위로해줄 존재는 늘 있을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절대 바닥 아래로 가라앉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 가슴 아프면서도 따뜻한 장면은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안녕의 온도'의 '사랑의 한가운데'가 계속 귓가에 맴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