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또 바쿠닌이 나오는군요. 음..
전통적인 좌파입장에서 볼 때 국가를 지배계급에서 분리해서 볼 수는 없죠.
계급지배의 도구라는 기계적 도구주의적 입장에서 해석하던, 알뛰세의 중층결정적인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진 것으로 보는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보던, 또는 동의와 강제라는 두 몸을 지닌 헤게모니 켄타우로스로 보던 다 지배계급의 계급이익의 실현을 제외하고 국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이런 계급지배의 부정과 국가의 폐지를 궁극적으로 같은 목표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마르크스 자신도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지금까지의 국가의 개념은 사라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공상적인 이상론적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낭만성에 대한 비판이 과학적 사회주의 전략으로 발전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레닌에 이르면 프롤레타레아 독재가 제국주의 자본주의 국가의 포위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전략으로 인정되면서, 무정부주의자들은 오히려 반사회주의적 기회주의자들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좌파의 전유물 같던 무정부주의가 지금은 오스트리안 이코노미스트들에 의해 매우 우파적인 탈을 쓰고 재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자본의 지배를 인정하면서, 국가를 부정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좌파적 관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일단은 현재 주류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국가의 축소는 매우 위선적인 전략의 변화이지 국가 자체의 부정은 아닙니다. 핵심은 자본의 운동에 방해가 되는 국가의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시키되, 국가의 자본주의 시스템 보호의 기능은 더욱 강화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아가서 적극적으로 대부분의 국가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아나코 자본주의자들은 주류 신자유주의들에게도 거북스러울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완성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도 좀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오스트리안 이코노미스트들의 원전도 좀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