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정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시럽은 필요 없으시죠?”
“네.”
“2층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커피를 갈아 살짝 누르고 에스프레소 머신에 끼운다. 갈색의 액체가 내려오면 일정량의 물을 붓고 서빙. 여기는 참 한가한 카페다. 일하는 입장에서야 좋다. 저기 매일 죽치고 앉아있는 여자 말고 오는 손님은 하루에 열 명 정도. 보통은 테이크아웃. 사장도 정신이 나갔지. 어쩌자고 여기에 카페를 지었을까? 직접 일하지 왜 나를 쓰는지 모르겠다. 하루 매상이 내 일당이 안 되는 곳. 지루하다. 책이나 보자.
사장은 매월 1일에 알바비를 통장에 넣어준다. 김선영이라는 이름 외에는 알 수 없다. 여기 면접처럼 황당한 곳은 처음이었다. 매니저도 아니고 전에 일하던 애가 내일부터 나오세요. 그리고 끝. 내가 커피를 메주로 뜬다고 해도 채용할 분위기였다. 내가 가져 온 바리스타 자격증과 이력서는 꺼내지도 못했다. 그날 밤 전화도 아니고 문자를 받았다.
“알바비 입금할 계좌번호랑 성함 보내주세요.” 하고는 끝. 뭐야 여기는.
덕분에 하루 종일 앉아서 책 보고 스트레칭 하고. 교양이 마구 쌓이는구나. 하지 정맥류도 안 생기겠다.
- 선영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시럽은 필요 없으시죠?”
“네.”
“2층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또각 또각. 내 구두가 계단을 밟는 소리다. 여기는 참 한가한 까페. 내 가게다. 2층에서 내려다 보니 알바생이 커피를 만드는 게 한 눈에 보인다. 하루 매상이 4만 원인 가게에서 일하다 보면 되레 뜨문뜨문 오는 손님이 귀찮을 만도 한데. 쟤도 참 열심이다. 그게 참 맘에 든다. 예쁘다.
이 아이 전에 일하던 주미는 소리 없이 떠나갔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문자를 받았다.
“내일부터 다른 사람 나올 거예요.”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남자가 생긴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주미도 힘들었겠지.
여기 내 가게엔 나와 희정이. 다시 둘이다.
저 아이를 보면 주미와는 많이 다르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던 주미와는 다르게 항상 책을 읽는다. 그러다 테이블 한 번 닦고 스트레칭을 하고 책을 본다. 책을 보다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고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다시 책. 희정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다. 예뻐서.
자, 이제 다시 둘이다.
- 주미
오늘도 취직 실패. 아니 이 나라에 커피숍만 몇 개인데!! 바리스타가 일할 곳이 이렇게 없나, 젠장. 요즘은 그렇다. 그만둔 가게가 그립다가 미친 사장 년만 생각하면 소름이 좍 끼친다. 손님을 가장하고 앉아서 하루 내 지켜보다 저녁 먹을 때 쯤 사라지던 미친년.
아오, 남자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말 해줘 다행이지. 스토커도 아니고 장사 안 되는 가게에 음침하게 그렇게 앉아 있으니 손님이 그렇게 없지. 어쩐지 가게에 카메라가 없다 싶더니. 아오, 짜증나.
알바천국을 뒤지고 또 뒤진다. 한 세 시간 뒤지다 보니 내가 올린 글이다. 얘는 일 잘하고 있을까? 걔도 범상치 않았다. 면접 본다고 잔뜩 차려입고 와서는 꺼낸 책이 ‘내 남친은 공대 짱’ 이라니. 솔직히 말해 좀 깼다. 매일 앉아서 지켜보는 단골손님이 설마 사장이라고는 생각 못 하겠지. 알면 일 못하지. 그래 모를 때 편하게 일 한다고 좋아하렴. 난 좀 바빠도 정상인 사장 밑에서 일 하련다. 교차로나 뒤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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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소름.. ㄷㄷ
그냥 읭? 하는 꽁트같은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
항상 sakra님의 댓글에 용기를 얻습니다 ^^
예상을 벗어나는.
한 사람 말만 들어서는 진실에 가까이조차 가지 못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각자의 '입장'이라는 게 참... 복잡해요 ^^
으앜...사장이 좀..ㅋㅋㅋ
특이하신 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