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t:  

아, 그랬다. 그 날도 이렇게 사나운 바람이 불었었다.
조선팔도에 그 누구도 내가 강릉 앞바다에서 이무기를 보았다는 것을 믿어주는 자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말했다.
"아니 이무기를 만나고도 무사하다는 말이오?"

나도 들은 얘긴데
이무기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다고 하거든
그래서 자신을 해치려 들지 않는 사람에겐
이무기가 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고 했어.

"이무기가 뭐 바라는거 없던가? 이무기의 소원을 들어주면 큰 재산으로 보답한다던데..."

나무가 휘청거리며 부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춤을 추었고, 어느 집 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모자가 날아갈까봐 벗어서 손에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찢어졌고 휘청이는 나무들 사이로 뭔가 휙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엄마, 저게 뭐야?"
"쉿! 쳐다보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
다른 사람들도 뭔가를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새 어둠이 낮게 깔리고,
길을 걷던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이 거의 남지 않은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어쩐지 오금이 저려왔다.

이 곳의 지박령이 혼자 길을 가는 여행객들을 해코지 한다는 노파의 이야기가 계속 신경쓰였다.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이가 없다는 말도 꺼림직했다.

아, 나는 무엇때문에 이 곳에 왔던걸까? 어제 있었던 일을 천천히 되짚어 본다.

어제까지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다른 날들 처럼, 아침을 대충 때우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 했었다.

"베짱이씨, 오늘 강릉으로 출장 좀 가야겠는데? 이번에 강릉지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들 교육 좀 맡아줘. 내가 거기까지 갈 짬은 아니잖아.ㅎ"

딱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바람도 쏘일 겸 해서 강릉으로 출발했다. 적당히 하고 좀 쉬었다 와야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