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때가 있다. 구악성서 코헬렛서(전도서) 중에는 다음과 같은 훌륭한 구절이 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돌을 던질 때가 있고 돌을 모을 때가 있으며 껴안을 때가 있고 떨어질 때가 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간직할 때가 있고 던져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3년 쯤 후에 만났더라면 인연이 닿아 결혼했을지도 모르는 상대를 조금 일찍 만나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다. 같은 매화나무에서 자랐더라도 덜 익은 열매는 먹지 못한다. 같은 상대임에도 때가 무르익기 전에 섣불리 조우하게 되면 사랑이 진전되지 못한다.
유난히 나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비난이 신경 쓰여 한동안 헤어나지 못한 날도 있었다. 내 안에서 강렬한 악의가 싹텄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서로 치고받는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든 기호가 찾아왔을 때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 말들을 해왔는지 온 세상에 알려주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 부터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전도서에 따르면'말할 때'가 지나 '침묵할 때'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 또한 지난 시절 나를 괴롭혔던 그 사람의 비난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잊어 버릴 때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사람은 오랜 세월 헤매야 하며,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때로는 최고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눈이 내리고 새싹이 움트고 작렬하는 태양이 시들어 비로소 단풍이 빛나는 가을이 찾아오는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이치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