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지만 자주 연락하진 않는 친구가 며칠 전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왔다.
‘너 보면 오열할 짤’
‘?’
‘사진’
그리고 난 오열했다.
사진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이었다. 정확히는 영화 1시간 13분경에 나오는 그 장면... 빙봉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먼저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인사이드 아웃 영화 자체는 좋아하지만 그 영화에서 좋아하는 캐릭터는 단 하나, 빙봉밖에 없다. 내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라일리도 기쁨이도 슬픔이도 아닌 빙봉이다. 감정들은 다 너무 비호감이다... 물론 걔네가 좋은 애들이란 사실은 아는데... 싫어... 그 중에서도 최고봉은 당연히 기쁨이이다. 물론 그 목적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함인 건 아는데 그렇다고 지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다른 감정들 무시하고 짓밟는 그런 이기적인 작태를 존중하긴 어렵다. 특히 원 안에 슬픔이를 가두는 장면, 기억에 슬픔 옮는다고 혼자 나르는 장면은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슬픔이도 잘한 건 없지만... 한 명은 적극적으로 짜증나고 한 명은 소극적으로 짜증나고... 그래서 둘이 잘 맞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짜증짜증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명체가 튀어나왔다. 코끼리와 고양이, 솜사탕과 돌고래가 섞인 흉측한 핑크 괴물이 기억 구슬을 훔치고 있었다. 아, 비쥬얼과 행동을 보아하니 쟤가 악역이구나 싶었다. 주인공도 짜증나는데 쟤는 얼마나 더 망측한 행동들을 할까... 걱정이 됐다.
역시 겉으로 무언가를 평가해선 안된다. 편견은 위험한 것이다. 빙봉의 첫인상은 해괴망측하였으나 점점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라일리가 3살 때 만들어낸 상상의 친구라 그런 건지 하는 행동이 딱 그 즈음의 애기들 같다. 숨는다고 자기 눈만 가리고 있고... 심지어 눈물도 사탕인데 어떻게 안귀엽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친구도 좀 짜증나는 행동을 하긴 한다.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서 망치고... 위기에도 빠지고... 그래도 얘는 왠지 ‘그래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빙봉과 기쁨이, 슬픔이 셋이 본부로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이기주의 끝판왕 기쁨이가 혼자 가겠다고 나대다 떨어진다. 거기까지는 기분 좋았다. 아이고 꼬숩다 키득키득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빙봉아 위험해... 뛰어 빙봉... 빙봉...?
빙봉이도 떨어졌다. 기억의 쓰레기장에 떨어진 빙봉이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수레가 있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올라가는 족족 문턱에서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반복하다 기쁨이도 지쳤을 무렵, 빙봉이 딱 한번만 더 시도해보자고 한다. 이번엔 될 것 같다고... 빙봉이 저 대사를 할 때 눈치 챘지만 아니길 바라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빙봉은 수레에 타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데 빙봉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이의 성공에 기뻐했다. 그리고 Take her to the moon for me, okay? 하더니 사라져버렸다.
과거에 너무 얽매이면 성장할 수 없다. 이 명제를 의인화하여 사람들을 울리다니 픽사는 너무한다 정말... 심지어 기쁨이가 떨군 것도 아니고 빙봉이 스스로 희생을 하게 하다니 이건 관객들에게 ‘자 울어라’ 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심지어 희생도 불사하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걔네가 그렇게 하기에 라일리가 행복할 수 있는 거겠지 싶다. 근데 생각해보면 내 몸에 있는 세포들도 다 나를 위해 일하고 있을텐데... 적혈구 백혈구 등등... 새삼 맨날 안좋은 거 먹고 커피 마시고 그래서 미안해진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내 세포들도 기쁨이마냥 열일해서 내 행복을 위해 힘써주길 바란다.
저의 추천을 받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