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 맘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냅다 꽂혀서 그것만 파는 사람들. 그것이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무한 반복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 나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일례로 최근 꽂힌 음악은 블러의 텐더로, 들은 지 얼마 안됐는데 615회로 당당히 많이 들은 곡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 영화가 있다. 올해 3월 초 첫만남을 이루었고 아직까지 맹렬히 빠져있는 영화. 바로 로건이다. 로건을 만나며 나의 시간과 돈은 로건의 몫이 되었다. 내가 번 돈을 내가 맘대로 쓴다는데 쉬이 욕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우리집 모 씨는 나의 취향과 성향을 존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극장에서 로건을 9번 본 것을 알게 된다면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사실 더 보고싶었는데 가난한 나에겐 9번이 한계였다. 포토티켓을 서랍 깊은 곳에 숨겨야겠다.
내가 로건 대장정을 떠나게 된 것은 단순 우연이었다. 여느 때처럼 팝콘 냄새 맡으러 영화관에 갔고 마침 시간 맞는 영화가 딱 하나 있었고 그것이 바로 로건과의 첫 만남이었다. 난 그 전까진 엑스맨 시리즈를 단 한 편도 본 적 없는 엑스맨 무식자였다. 그래서 네이버에 로건을 다급히 검색해 엑스맨 울버린의 마지막 영화라는 정보만을 안고 영화를 봤다. ... 영화가 끝나고 다급하게 뛰쳐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뭐가 마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눈물로 범벅되어 추해진 얼굴을 정리하고 싶었다. 찬 물로 얼굴을 찹찹 닦으며 생각했다. 곧장 집으로 가서 엑스맨 시리즈를 봐야겠다고...
그리고 엄마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밤을 새가며 엑스맨 오리지널과 프리퀄 트릴로지를 모두 해치웠다. 보면서 든 생각은 주로 1) 나 왜 이거 안보고 있었지 2) 흡... 울버린.. 자비에 교수님... 3) 헉 교수님이랑 매그니토 잘생겼어 이런 것들이었다. 특히 2번. 로건을 먼저 봐버렸기 때문에 보면서 울컥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밤을 꼴딱 새어 시리즈를 다 본 후 세수만 하고 집 밖으로 나갔다. 조조로 로건을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볼 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처음엔 아무 배경을 모르니 그냥 보다가 마지막에 눈물 또륵 정도였는데 이번엔 시작부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 머릿속엔 아직도 정정하신 교수님과 건강하고 성격도 드러운 울버린이 남아있는데... 둘 다 너무 초라하게 늙어버렸다. 뮤턴트도 일단 사람이기에 노화와 죽음은 당연한긴 한데... 너무 서글프고 믿고싶지 않았다. 때문에 노안이 와 안경을 껴야하고 쉴새없이 쿨럭거리며 다리도 저는 로건과 치매가 온 찰스를 보고 눈물을 안흘릴 수가 없었다. 그냥 거의 씬 바뀔 때마다 운 것 같다. 처음에 리무진에 쭈구려 자고있는 로건을 보고 눈물이 차올랐고 다리 절며 쿨럭거리는 로건을 보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뒤로도 물탱크에서 헛소리하는 교수님을 보고 주르륵... 발작 일으키는 교수님 보고 주르륵... 로라가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걸 알고 경찰에 달려드는 로건을 보고 콸콸... 이런 식이었다.
매 장면마다 울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 볼 때마다 주먹을 깨물며 오열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후반부에 로건과 로라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대사는 이렇다.
Laura: You had a nightmare.
Logan: Do you have nightmares?
Laura: Sí. People hurt me.
Logan: Mine are different.
Laura: ¿Por qué?
Logan: I hurt people.
로건이 담담하게 아이 헕 피플. 하는데 로건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들을 봐왔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며 눈물이 뿜어져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죽는 걸 모두 지켜보다니 오래 사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적당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하여튼 저 대화, 특히 로건의 대사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콸콸 흐른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유례없는 눈물파티가 시작된다. 저 씬부터 엔딩까지는 호흡곤란 수준으로 오열하게 된다. 가족이라곤 가져본 적 없는, 그나마 아빠처럼 따르던 찰스도 죽고 또 혼자가 된 로건은 존재도 몰랐던 자신의 유전적 딸 로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마지막에 죽어가는 로건에게 대디! 라 하는 로라를 보고 로건이 희미하게 웃으며 마지막 대사를 날린다.
-So, This is what it feels like...
참 많은 게 담긴 대사라 생각한다. 196년을 살며 가족도 갖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봐온 로건이 마지막엔 딸을 지키고 죽는데 그 감정이 저 대사에서 모두 느껴진다. 그래서 결국 나는 소리를 내며 울게되는 것이다.
엑스맨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나온다. 나중에 나올 엑스맨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볼 것이다. 휴잭맨의 울버린은 못보겠지만 흑흑. 그래도 로건은 나의 마음 속과 나의 포토티켓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굿바이...
이 영화가 위대한 점은 수년동안 쌓아올린 휴잭맨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감정을 존중해 주었다는 거죠. 적당한 액션을 버무린 신파극으로 만들었으면 더 흥행이 잘됐을겁니다. 주연배우와 주요 스텝들이 보여준 관객과 함께한 역사에 대한 정중함이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