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님에 대한 기억 (2): 소설들, 음식, 그리고 담배
1- 소설들
마교수님의 수업은 '연극의 이해'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대략 1)마광수가 왜 야한 책을 썼는지 2)마광수가 어떤 탄압을 받았고 그게 왜 후진 일인지에 대한 내용을 강의했다. 놀랍게도 매 수업마다 1)과 2)가 비슷한 비율로 강의되었다.
TV도 없는 병실에 누워 있던 시절이라, 수업준비 겸 해서 마교수님의 '권태'와 '즐거운 사라'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대여하니 중간중간 뜯겨나간 부분과 종이에 알수없는 액체가 묻은 탓에 종이끼리 붙어 있는 장이 많았지만 내용 이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이건 뭐지?' 였다. 솔직히 정말 유치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놓고 본인, 즉 마르고 힘이 약하고 허여멀거름하고 손이 예쁘고 존 레논을 닮은(!) 문학 교수였다. 그리고 펼쳐지는 온갖 페티쉬들에 대한 묘사는 야하다기보다 기괴했고,
모든 여자들은 교수를 사랑하고, 유혹했고, 근육 없음/ 힘 없음/ 발기가 잘 되지 않음 같은 특질들을 칭송했다. 소설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자위행위 같았다. 그론데 묘하게 그 야하고 기괴하고 유치한 소설이 뭔가 논문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나중에 수업을 위해 마교수님의 수업교재인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를 보고서야 '마광수 소설'의 의미를 알았다. '문학과 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론으로부터 시작해서 프로이트, 마조흐와 사드 등으로 이어지며 '문학은 일종의 상상, 자위행위, 배설'임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로 등장하는 각종 페티쉬들을 그대로 묘사로 옮긴 것이 마교수의 소설이었다.
마치 공식에 따른 것처럼, 마교수의 모든 소설은 자신이 말하는 인간관과 문학관, 이론들을 소설화한 것이었다. 어딘가 모르는 논문스러움은 거기서 나온 것이었다.
마교수님은 늘 '재미있는 소설'을 말하고 '먹물스럽지 않은, 야한' 소설을 말했지만, 실제 그의 소설은 굉장히 먹물스럽고, 문학 이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서 사실 많이 야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노골적 야설이 '19금'도 없이신문에 연재되던 그 시절, 마광수만이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리라.
2- 음식, 그리고 담배
어쨌든 ‘레포트’사건으로(기억 1편을 참조) 교수님은 나를 기억했고, 나는 친구도 없는 제대 후 첫 학기에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남들처럼 공부를 하기보다는 마교수님 방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는 길을 택했다. 대충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놀러갔던 것 같다.
처음에는 밥도 사주겠지 싶은 기대가 있었다. 마교수님은 늘 ‘교수들 꼴보기 싫어서 교직원식당 안 가고 방에서 짜장면 시켜먹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짜장면을 매우 좋아했기에, 방에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마교수는 한 번도 밥을 사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마교수님이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늘 카스테라 하나와 사과 반쪽 정도를 싸와서 거의 이가 없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다람쥐가 도토리를 갉아 먹는 것처럼 조그만 조각을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소화가 잘 안돼. 얼마 전엔 그래도 계란도 하나씩 먹으려 했는데 지금은 그것도 잘 안들어가’ 라고 오물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물론 어쩌면 나나 다른 학생이 없는 곳에서는 짜장면을 잘 시켜 드시는데, 그냥 학생에게 밥 사주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시에도, 교수님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 남보다 20년은 빨리 늙은 마교수가 적어도 짜장면이나마 맛있게 먹었던 시절이 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마교수를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담배’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어디서 파는지도 알 수 없는 ‘장미’를 어디선가 구해 와서 정말 맛있게 피우곤 했다. 저 작은 카스테라 반쪽을 먹으면서도 담배를 두 대는 피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종종 긴 담배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담배는 배설이야. 연기가 눈에 보이니까 피우는 거야.’
언젠가 내가 여기에 대해 구하기도 힘든 장미 말고 길고 가늘고 남들 다 피우는 에쎄는 어떠냐고 권하자, ‘야 그건 너무 가늘어. 담배는 자x야. 내가 길고 곧은 담배를 피우는 건 그게 없으니까 그러는 거야. 길고 가는 건 좋지만 그건 너무 가늘어서 초등학생 같잖아.’
나는 그때까지 어쩌다 한번씩 던힐이나 피워 보던 실질적 비흡연자였기에 마교수님이 아무리 맞담배를 피우라고 해도 그냥 마교수님의 줄담배를 물끄러미 보곤 했다. 그러다 궁금해서 ‘장미’를 딱 한 번 얻어 피워 보았다.
담배는 정말 많이 독했고, 연기가 많이 났고, 길었다. 눈이 매워서 눈물이 왈칵 났다. 그리고 마교수님의 부음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 담배 연기였다. 그때처럼 눈이 매웠다. (계속)
마교수님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글이 반갑네요.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워낙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으신 분이라 ㅋ 지나고 보니 강의 한 번 들어볼 걸이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가자! 장미여관으로!
네.ㅎㅎ 돌아가셨을 무렵 써서 꽤 호평받았던 글인데 이 글부터 올리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입 벌리고 읽었어요!
(계속) 두 글자가 이렇게 아쉬울 수가!
헤헤.. 써놓았던 글이니 금방금방 올라갈 겁니다.ㅎㅎ
글솜씨가 대단하세요,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광수 교수님이 유럽에서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이 글을 보니 마광수 교수님은 못다핀 꽃 같네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했던 지식인,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피기도 전에 꺾인 분이라는 느낌입니다.ㅎㅎ
네 ^^
장미 맛이 궁금하군요. 저는 그래서 말보로만..
ㅎㅎㅎ 장미 맛은 아름다운 이름과 멋진 포장과 달리... 굉장히 컨츄리한 맛이 났습니다...
하하하....담배는 자지야^^/참 맛있게 쓰십시다.
네 가끔 그 말을 생각하면 그 매캐한 연기가 자동으로 떠로으곤 합니다...
기한이 지나 이 댓글에 대신 보팅 드립니다 ^^
와, 감사합니다 다크핑거님!
이런 흥미로운 글이 초기에 이곳 생태를 잘 모르신 바람에 묻히고 말았군요. 안타깝네요. ㅋ
ㅎㅎㅎ 다크핑거님 감사합니다. 보팅으로 찍힌 돈보다 누군가 제 글을 재미있게 보아 준다는 점이 더 가치있고 기분좋은 일이네요. 다크핑거님께서 칭찬해주신 덕에 기분이 좋아진 밤입니다.ㅎㅎ
제 입장에서는 가장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던 글중 하나여서 스팀잇 시작과 함께 포스팅했습니다. 스팀잇 생태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만 언젠가 생태를 좀더 알게되면 그때는 더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