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행동 중 하나인 양치질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내가 쓰고 있는 천연성분의 은은한 향을 지닌 적당한 가격의 이 치약이 누군가에게는 느끼해서 차라리 마트에서 산 아무개 치약을 쓰는 게 낫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쩌면 나는 하얀 패키지와 새카만 칫솔의 산뜻한 조합이 좋아서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개 치약에서는 풍선껌 맛이 나는데, 아무리 써도 그 불량식품 같은 향이 적응되지 않는다.
사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저 주관적인 것과 동의어이고 객관적인 것의 반대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일까.
사적인 영역
회사에서 만난 이들에게 친구와의 일화나 가정 내의 속사정 같은 것들은 너무나 개인적이기 때문에 적당히 걸러내서 이야기하게 된다. 가끔 이 영역에 무자비하게 들어와 쓸데없는 질문을 불쑥 퍼붓는 폭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답 안에 그럴싸하고 내세울 만한 무언가가 있으면 치켜세워주고, 그렇지 않으면 내팽개치듯 관심을 거두는 태도를 보였다. 그 폭력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대부분 정작 그 질문 대상자와는 상관도 없는 따분한 요소들이었지만, 세상의 이해관계를 주름잡는 절대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새 적당히 둘러대거나 포장하고, 아얘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반대로, 가족들에게도 숨기게 되는 사적인 영역이 있다. 대부분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듯 하지만, 오직 나에게만 중요한 것들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이나, 현실적인 것들과 관계가 없는 사소한 고민들, 두리뭉실한 꿈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가족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를 책임져주는 피로 맺은 강력한 유대감의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역할에 따라 각자의 입장이 달라지고, 같은 시대를 겪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세대의 간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렇게 사적인 영역은 가정의 바깥에 머물거나,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내 안에 머문다.
새로운 경계
멀쩡한 이름을 두고 닉네임이나 가명을 쓰는 것의 쓸모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오래도록 쓰던 블로그의 타이틀은 지금 내가 이름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나의 이름이 되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경계를 나눌 수 없는 활동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 닉네임은 나의 본명보다 더 강력히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가정 안에서의 어떤 역할이나, 나이, 학벌, 직업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나를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감투인 것만 같아서 나는 이것이 꽤 만족스럽다.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다. 다수에게 나를 전체공개로 내어놓는 활동들이 사적인 것인지 공적인 것인지 판단하기가 애매모호하다. 나의 닉네임과 내 활동들에 대해 소개를 했던 어떤 자리에서 '이렇게 사적인 부분을 다 오픈해도 괜찮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적인 부분을 제외한 오롯한 나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적절한 수식어는 없다고 여겨져서 소개했던 것인데, 그것이 사적인 것이라고 여겨질 줄은 몰랐고 그래서 나는 잠시 멍했다.
어쩌면 그냥 또 하나의 영역이 생긴 것이고, 집이 아닌 또 하나의 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다녀갈 수 있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섬.
비밀의 방이 아니다.
일상에서의 나의 생각들을 탈탈 털어 글도 쓰고 말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적이라는 것이 아무도 모르는 개인적인 비밀처럼 표현될 때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과연 비밀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 비밀을 모두 말해버렸다면, 나에게 사생활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는 걸까.
누군가가 무례하게 나의 영역을 침범하려 할 때 방어막으로 '사적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비밀인 경우도 있지만, 꼭 비밀이거나 판도라의 상자여서 벽을 치는 것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내면에는 수많은 자아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간섭받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을 뿐이고,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타인이 공개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 함부로 발을 들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하고, 그가 보여준 자아의 일부를 보고 전체를 가늠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은 보호받아야 마땅하죠.
그렇기에 보호되던 사적인 것이 드러났을 때 (혹은 그것을 드러낼 때) 그 힘이 더 막강한 것 같아요. 파괴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누군가의 사적인 것을 일부러 들추면(사생활 침해라든가..)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가 자신의 사적인 것을 내보이면(자신의 경험등..) 큰 공감을 얻기도 하고요.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내면서 살아야하는 환경이 되다보니 더 그 경계를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 말씀하신대로 더 긍정적일 수도 더 파괴적일 수도 있으니 더 아슬아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일부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켜주려고해도 안되더라구요 그런분들과는 각자의삶을 살아야할듯 싶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그 필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는 정말 서로 다 다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