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기록하다[記夢]
오늘밤 꿈에서 정녕 어머니를 뵈니
얼굴 모습이며 살쩍이며 머리카락이 생전과 같았다
그 무릎을 베고선 이를 잡아 달라 하고는
어렸을 때처럼 누워서 장난치며 웃었다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고는 빗질을 해주며 말씀하셨다
“머리가 짧고 듬성한데 이가 어디서 생겼지?”
손톱으로 꾹꾹 이 잡는 소리가 작게 나자
머리가 가려운 곳 없이 개운해졌다
무릎을 벤 채 기분이 좋아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드니
내가 어머니 곁에 누워 있는 게 믿어진다
아아, 어이하면 오래도록 오늘밤 꿈과 같을 수 있을까
깨고 나니 접이 의자에 눈물이 방울져 있구나
夜夢丁寧見阿孃야몽정녕견아양
顔貌鬢髮宛如常안모빈발완여상
枕母之膝請獵虱침모지슬청렵슬
偃卧戲笑如兒嬰언와희소여아영
阿母撫頂梳髮語아모무정소발어
短髮疎踈虱何生단발소소슬하생
指爪微有獵虱聲지조미유렵슬성
頭無癢處頭爲輕두무양처두위경
枕膝怡然仍就睡침슬이연잉취수
秖信身臥阿孃傍지신신와아양방
嗚呼安得長如今夜夢오호안득장여금야몽
覺來淚痕濕繩床교래루흔습승상
- 신국빈(申國賓, 1724∼1799), 『태을암집(太乙菴集)』 권1 「시(詩)」
신국빈이 74세가 되는 1797년에, 돌아가신 어머니 꿈을 꾸고 지은 시이다.
그의 어머니 벽진 이씨(碧珍李氏)가 별세한 때는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그가 1772년 사위인 이준상(李駿祥)에게 보낸 편지에 노모가 무더위 속에서 심한 학질을 네 차례나 앓은 나머지 원기가 다 빠져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이 있고, 1781년 조영진(趙英鎭)에게 보낸 편지에 모친상을 종전에 당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오랜만에 뵌 어머니의 모습은 생전이나 다름없었다. 산 사람은 나이를 먹으니 그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남지만 죽은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니 늙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이미 일흔을 넘긴 자신의 나이도 잊은 채 어릴 때처럼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부비며 어리광을 부린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70세의 나이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옛사람의 일이 있거니와, 부모님이, 특히 어머니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리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을 전공한 전문가이다. 자신의 뱃속에 품고 있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자식이 편안해 하는지를 늘 간절히 연구하고 공부해서 알아내고야 만다. 꿈속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 연로해서 짧고 듬성한 아들의 머리를 보며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걱정하고는 이내 이를 잡아 준다. 아들은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이 한없는 편안함을 느끼며 그제야 비로소 그토록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존재를 실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을 꿈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꼭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현실인 줄 알고 한없이 기뻐하다가 꿈에서 깨고 난 때의 그 절망감을 아는가? 희망이 절망으로, 기쁨이 슬픔으로, 웃음이 울음으로, 충만함이 공허함으로, 반가움이 서운함으로 바뀌는 그 기막힌 순간을 시인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이유는 그 분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온전히 나만 생각해주는 사람이 험난한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어서인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하늘까지는 들리지 않을 사모곡을 이 세상의 수많은 어미 잃은 사람들이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란 말도 참 따뜻한 것 같아요. 울 엄마가 나이 드시고는 철이 없지만 여전히 나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철철 흘러넘치시죠.
간혹 별거 아닌건데도 막 챙겨주시면서 "엄마니까 이런거 챙기는거지~ 누가 챙겨주니? 국물도 없어.." 그러시거든요. 정말 엄마니까 그런거죠.
그리고 제가 아이의 엄마가 되자 그 마음을 살짝 알겠어요. 너무 어여뻐서 좋은 것을 주고 살피고 싶은 마음을요..
오늘 엄마한테 전화해야 겠네요~
맞습니다 모친이 생존해 계실때 아무리 잘해드려도 .미래에 작고하시면 부족했다고 자책감이 들겁니다.
그러니 최대한 생존해 계실때 잘해 드리고 모시세요.
생존해 계실때 잘 모셔드리는 것이 의미가 있지
미래에 작고하신 후에는 제사등 근사하게 차려놓고 아무리 잘해 드려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