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헌에 있어서 가장 중점적인 의제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지방분권'의 문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가을, '지방분권 공화국', '지방분권 개헌'이라는 강력한 표현을 쓰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을 헌법화 하며,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 역시 지방정부로 개칭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몇년 전 일본에서 '지방소멸'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일본의 인구를 분석하면서 도쿄도로의 인구 집중화, 농촌 고령화, 저출산의 문제가 지방 인구의 대폭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결국 지방의 소멸로 귀결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경고인데요.
어떻게 보면 일본보다도 더욱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강하다고 볼 수 있는 한국 역시 지방소멸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30년 내로 전국 228개 지자체 중 1/3 이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보고서가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구요.
지방소멸 위기에 처해있는 지역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최근 제조업의 위기 속에서 공단 지역 일자리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상 역시 이러한 지방소멸에 대한 걱정을 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울산, 거제 지역의 조선업 구조조정 문제나 한국GM의 군산 공장 철수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 도시들이 받는 타격이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방도시들이 겪는 어려움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를 타개할 방책으로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다.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지방정부의 권한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역에 걸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방분권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는 김부겸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면서 지방분권은 더욱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을 목표로 중앙권한의 획기적 지방이양, 강력한 재정분권, 자치단체 역량 강화, 주민자치 강화, 네트워크형 지방행정체계 구축을 지방분권의 로드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헌을 통해 지방분권의 가치를 헌법에 담아내, 국가의 사무를 이양하는 행정적 분권을 넘어서 중앙과 지방의 관계 정립과 지방 상호 간의 연대를 모색하자는 것이 행정안전부가 내세우는 지방분권의 방향입니다.
지방정부와 지역언론들도 지방분권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1월,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의 협의체인 시도지사협의회는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하고, 주민자치권,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 지방정부의 자주재정권, 제2국무회의 등을 골자로 하는 지방분권 헌법개정안을 제안했습니다. 한국지방신문협회의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와 발 맞추어, 지역 언론들이 일제히 헌법에 반드시 지방분권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사설을 내기도 했구요. 강력한 대통력의 권한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라도,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분권 개헌이 꼭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개헌에 대한 공통된 입장인 듯 합니다.
현행 헌법의 경우 제 8장에서 지방자치를 다루고 있지만, 관련한 조항은 두 개에 불과합니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제117조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하여, 중앙정부와 국회가 정하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제약은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하급 집행기관에 머물게 되는 한계로 이어집니다.
이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확대하여 지역 실정에 맞는 조례를 제정하여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연방제 수준의 독자적인 입법권을 인정하라는 의견에서부터, '법령의 범위 안에서'라는 조문을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로 개정하여 융통성 있는 조례 제정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견 등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구요.
혹자는 지역마다 각기 다른 법이 생기면 혼란이 빚어질 것을 우려합니다. 그뿐 아니라, 가뜩이나 엉망으로 운영되는 지방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령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이듯이, 지방의회 역시 지역 주민의 대표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역의 문제는 지역을 구성하는 주민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함은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전체 국민의 이익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해야 하듯이, 지역 주민과 관련된 지역의 문제는 그 지역을 구성하는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2016년, 서울시 청년수당 사업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던 것은 엄연히 서울시민들의 선택으로 구성된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에 대해 중앙정부가 억지로 개입한, 지방자치권에 대한 대표적인 침해 사례였습니다. 지방분권 개헌의 목표는 이러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죠.
아직까지 시민들에게 지방의회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방의회에선 여러 우려할 만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기도 하구요.
재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자치권은 지방재정이 독립되지 않는 이상 무용한 것이 됩니다. 현행 헌법에는 지방재정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지방재정에 대한 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운영은 지방세에 의존하게 되는데, 그 지방세의 세목과 세율이 모두 중앙정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에 맡게 과세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지방세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독립된 재정을 가지고 사업을 하기 보다는 국비보조사업을 자기 지역에 끌어오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이 발생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성은 훼손됩니다.
역으로, 국가가 결정한 사업을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 소요를 감당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2016년 떠들썩한 문제가 되었던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누리과정을 시작할 당시, 박근혜 정부는 누리과정에 필요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증액하기로 했지만 이 것이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지역 교육청이 막대한 예산을 끌어안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중앙정부의 사업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사업은 지방정부가 비용을 책임져야 하지만, 역으로 중앙정부의 사업 예산을 지방정부가 떠안거나, 지방정부가 국비 보조로 사업을 가져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지방분권, 말은 좋지만 사실 상 지역을 토호들의 놀음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지역 유지들의 힘이 강하게 작용되기 마련인 기초단체에 대해 이런 우려가 큰 상황입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권한 강화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주민투표권, 주민발안권, 주민소환권 등을 헌법에 명시해 주민들이 직접 지방 의정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제안도 지방 분권 개헌의 핵심 의견 중 하나입니다. 헌법 상 기본권으로 주민자치권을 신설하고, 그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여 풀뿌리 주민자치를 현실화시키자는 아이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밖에, 경찰소설 매니아(...)로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는 분야는 자치경찰제도의 도입입니다. 이 역시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이기도 했는데요, 현재 제주도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도를 지방분권과 발맞추어 전체 경찰로 확대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중앙정부의 강한 영향력 아래 경찰이 친정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 통제 기구로 활용되었던 역사를 바로잡고, 지방의 특성에 걸맞는 치안 활동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치경찰제도와 관련해서는, 조만간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
글에서 주민투표권, 주민발안권, 주민소환권을 토호에 대한 해결로 언급하셨지만 소멸을 눈앞에 둔 지자체들의 비중이 저리 높은 상황에서는 그다지 해법이 될 것 같지 않단 생각이 듭니다.
신규 유입이 될 만한 매력이 문제 해결의 시작일텐데, 이미 지역 토호가 권력을 잡고 있는 대다수의 지자체에서 그것이 가능할런지.. 신규 유입자에 대한 기존 지역사회의 대응을 보면 더 걱정이 되구요.
젠더 문제 등의 문화적 문제도 그렇구요..
오히려 중앙에서 드라이브를 걸어 환경을 마련한 후에야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문제가 계속 우려가 되는 상황인데요,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다음 글로 한번 다시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해서는 주체의 역량 강화도 필요할텐데, 지금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
민방위 교육이라도 잘 활용해야할텐데....(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