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가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는 순간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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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악에 대항하기 위하여 능력자들의 팀을 결성하려고 합니다. 팀을 모으는 캡틴은, 소문으로만 들리는 능력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능력자 중에는 능력을 숨긴 채 평범한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이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써가며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능력을 나쁜 일에 쓰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능력자인줄도 모르는 이도 있습니다.

 캡틴은 능력자들을 하나씩 만나 설득하여 한 사람씩 팀에 합류시킵니다. 대게 주인공은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인공은 합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겪고서야 가장 늦게 합류합니다.

 어딘지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요. 동양의 무협 영화, 서양의 히어로 영화 할 것 없이 단골로 등장하는 오프닝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채 살다가 한 팀으로 만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걸어 나갑니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려는 목표 말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는 제각각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순수한 인류애로, 누군가는 복수심으로, 어떤 이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뻔하지만 우리가 늘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들의 오프닝을 처음에 언급한 것은, 글쓰기가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이들은, ‘글쓰기’라는 캡틴에게 포섭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사연을 가지고 글을 끼적이다가, 어느 날 글쓰기를 통해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강렬한 운명에 이끌리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젖어들어, 글쓰기를 삶에서 떨쳐 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글쓰기에게 포섭되는 요건이 되는 그 '능력'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쓰고 싶은 마음'이지요.

 나의 삶에서 글쓰기가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린 ‘순간’은 어땠는지를 떠올려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누군가는 글쓰기라는 것이 아주 예전부터 나와 너무나 밀접하게 달라붙어 있어서, 그런 기억을 더듬거리며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들에겐 그 기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은 글쓰기라는 캡틴이 그 사람을 포섭해버린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작가들은 그 순간을, 혹은 과정을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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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부터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한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에 ‘작가’라고 소문이 납니다. 그래서 글과 관련된 일을 이것저것 요청받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짜 글을 쓰기로 결정하게 된 순간은, 대학 시절 친구에게 빌린 카프카의 단편 소설집에서 ‘변신’의 첫 구절을 읽게 된 때라고 합니다. 변신의 첫 구절을 읽고 이런 글을 쓰도록 허락된 작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진작 읽었더라면 오래전에 글쓰기를 시작했을 거라고 고백합니다. 이 작가는 남미를 대표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입니다. 마르케스는 그 때 ‘글쓰기’에게 포섭되어 버렸고, 즉시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할아버지가 참전한 남북 전쟁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또 아버지가 책을 자주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어린 카버의 가슴 속에 글의 토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가서 뭔가 다른 걸 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집 근처 개울에서 물고기도 잡고 오리나 숲 속의 새를 사냥하게 됩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 생활을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카버는 놓치거나 잡은 물고기에 대해 긴 글을 썼고, 어느 잡지에 투고했습니다. 물론 원고는 되돌아왔고요. 그때부터였습니다. 카버가 글쓰기에 포섭된 순간 말입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글쓰기가 내 삶의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 온 강렬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글쓰기에 포섭되어 글을 써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든, 그저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소박한 말로 표현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런 순간을 떠올려 보는 일은,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답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왜 이 질문이 중요하냐고요? ‘난 평생 글을 쓸 거야. 난 어쨌거나 써야 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의식은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한두 가지 그럴듯한 기술이나 기교를 익힌다고 느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글을 쓰겠다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자기가 보기에 엉터리처럼 보이는 글이라도 계속 쓰고, 글쓰기 책도 뒤적거려보고, 글쓰기의 대가를 흉내 내어 보기도 하지요. 이런 저런 시도를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런 글을 읽고 흥미를 느낀다면, 당신은 우리가 좋아하는 그 캡틴에게 이미 포섭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캡틴이 미소 짓던 그 순간을 떠올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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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저는 그런 순간이 떠오르지 않네요. 저에게 아직 글은 말과 같이 의사전달의 수단에 더 가까운가 봅니다.

대부분 자연스레 젖어들듯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죠. 그런 순간이 인상적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속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죠ㅎ

저는 기억하기 위한 기록의 수단에 가까운 것 같아요.

네 글쓰기 뒤에 자리잡은 동기는 다양하지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ㅎ

저도 글쓰는 능력을 허락받고 싶습니다!

이미 능력자신데요! 가장 큰 능력은 계속 쓰고자 하는 마음이지요^^

그 영감님이 쉽게는 안 오지요.ㅎㅎ
그러나 한 번 안면을 트면
그렇게까지 어색하지 않게 찾아주십니다.

저도 단골 영감님 만나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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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ㅎ

계속 글을 쓰겠다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전 이미 캡틴에게 포섭된듯 합니다..발버둥으로 요새는 맞춤법 공부를 하고 있어요. 쓰다보면 늘 같은 부분을 틀리더라구요 :)

글쓰기에 낚인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치지요ㅎ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시다^^

고무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고무적이었다니 기쁘네요.ㅎ

아하, 그때였군요. 캡틴이 절 찾아왔을 때가..
덕분에 저도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시군요.
캡틴이 어떤 모습으로 찾아왔는지 궁금하네요^^

글쓰기캡틴의 포섭이란 말이 넘 재밌네요 ㅎㅎ
음. 덕분에 돌이켜보니...
글이라곤 하기는 뭐하지만, 짧은 단상을 쓰기 시작했던건,
20대 초중반, 진로고민을 앞두고 제 자신을 스스로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던 것 같아요.
나를 알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를 알기 위해 글을 쓴다! 글쓰기의 좋은점 중에 중요한 한 부분인 것 같아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생각들, 나 자신도 내가 뭘 생각하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정돈하고 일정한 방향을 보여주는 게 바로 글쓰기였던 거 같네요. 글을 계속 쓰기로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쓰면서 신농님처럼 자기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ㅎ

어릴적엔 종종 글을 잘쓰네 ! 이런말을 들었어도 제가 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아휴 칭찬할 일이 얼마나 없으면 이런걸로 칭찬해 라는 생각에 놓았다 결국은 제가 저를 표현하는 일이 글쓰는 일이더라구요~ 너무 거창하겐 아니지만 제 생각, 기억, 느낌을 쓰는 위주로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이곳은 잊혔던 글쓰기의 기억도, 꿈도, 열정도 되살려주는 곳이랍니다^^ gimemi님의 글쓰기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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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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