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한 언론사의 손녀 얘기로 여론이 들썩거렸다. 열 살 먹은 아이가 자신을 학원으로 태워주는 할아버지뻘 운전기사에게 3개월 동안 해고 협박, 인신공격성 막말을 했던 것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아이의 갑질성 발언에 공분했다. 나 역시 3학년 아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하고 놀랐지만 한편으론, 그 아이도 결국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가장 큰 잘못은, ‘나를 위해 일 해주는 사람’을, ‘내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토양에서 자란 것이다. 보고 들은 것을 거울처럼 비추는 아이들의 특성상 그 아이의 잘못은 그 부모와 가정에 있는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국, 영, 수 교과뿐 아니라 예체능까지 아이에게 좋다는 건 다 시킨다. 매일 방과 후에 학원 몇 개를 돌면 어둑해진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얼마나 무관심한가 하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같은 ‘교육’이라는 말을 썼지만, 부모가 주려는 ‘교육’과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교육’ 사이의 간극은 크다.
교육의 의미에서 생기는 간극은, 이미 많은 가정에서 벌어져 있는 상태다. 문제는 아이를 챙기고 교육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대부분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에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많은 걸 배운다고 하지만, 정작 부모와 눈을 맞추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하거나, 다른 친구나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말하고 듣는 여유는 가지지 못한다.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매년 맡는 학급에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있다. 문제 행동의 요인은 다양하다. ADHD 증후군 같은 정신적인 질환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의 원인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2013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직장과 가정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료타가 병원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6년 전 병원에서 출산한 직후 아이가 바뀌었으며, 6년간 키운 지금의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료타의 가족은 삶의 모습과 방식이 전혀 다른 친자의 가족과 만나면서,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 핵심 주제와도 관련이 있는 대화 장면이 있다. 주인공 료타와, 친자를 길러온 아버지 유다이의 대화 장면이다
영화, <이렇게 아버지가 된다> 중. -출처:daum 영화
“료타씨는 나보다 젊으니까 애랑 같이 있을 시간을 더 만들지 그래요.”
(중략)
“시간만 중요한 건 아니죠.”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죠.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한 아이를 보면서 그 집의 가정교육이나 분위기를 판단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모든 가정의 상황이 다 다르고, 가정마다 겉으론 알 수 없는 개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많이 접하다보면, 큰 범주에서 공통적인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맞벌이나 부부간의 불화 등으로, 아이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현저히 적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조건에 있는 아이 모두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구조적으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거나, 부모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가정에서 비롯된 본질적인 병이 치료되지 않는 한, 증상은 지속된다. 많은 경우, 학교에서는 그 증상을 완화하는 일 밖에 해줄 수가 없다. 병의 바이러스는 손을 못 대고, 통증만 완화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바쁘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이 상식처럼 되었지만,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다. 그걸 깨닫고 노력한 부모덕에 문제 행동을 하던 아이가 변하는 걸 나는 본적이 있다.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죠.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부모)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살기도 어려운 이 각박한 세상에 ‘뭘 모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동화 같은 금언이 이 사회에서 앞으로 점점 더 큰 무게를 지니게 될 것이다.
P.S.
예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중심에 놓고 비슷한 논지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쓴 적이 있습니다. 요 며칠을 뜨겁게 달군, ‘조선일보 손녀’ 이슈를 보며, 아이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기고하기 위한 형식과 분량으로 다시 썼습니다.
아이를 괴물이라 말하는 걸로 판단을 끝내선 안 됩니다. 이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그리고 교육에 대한 고민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고민할 때 고민하더라도, 오늘은 다들 가볍고 즐거운 불금되시길.
fur2002ks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fur2002ks님의 겨울이네요! 첫눈! (뻘짓 진행사항)
생유ㅎ
그래서 가볍게 책을 들었습니다.
책 좋네요. 잘하셨습니다^^
전 아까 못본 청룡영화제 짤방으로 봅니다.
아이에겐 시간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함께 보내는 그 시간이 그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추억이 되겠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에게 시간을 쓸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되지 않더라구요. 머리가 굵어지면 따로 놀려고 하죠. 기껏해야 초등학교 시절까지죠.ㅎ
좋은 주말 보내세요^^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의 쓰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디디엘님처럼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된다는 겁니다^^ 다들 그렇게 하면 문제 행동이 줄어들텐데요,,
저도 내용보고 깜짝 놀라면서 첨 드는 생각이 어떤 부모이길래였습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겠지요
아이에거도 부모에게도 가장 중요한건 시간이니 그 시간을 다시 들인다면 저 아이도 잘 클거라 생각하지만... 그 부모가 믿음직하진 않네요 에효...
세상에 놀랄 일이 참 많죠~~ 이번 일은 자신들을 특권층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을거 같네요. 그 부모에 그 아이,, 그 아이가 자라서 또 그런 부모가 되겠죠. 서글픈 일입니다.
아이한테는 시간이라는 말...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모든 부모들이 새겨야 할 얘기지요,,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스팀잇을 시작하시는 친구들에게도 널리 알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ㅎ
아이들의 공부나 예체능은 학교나 사교육이 담당할 수 있지만
인격과 인성은 가정에서 형성되는거라 생각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네 가정에서만 길러지는, 학교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지요. 요즘은 너무 남의 손에 교육을 다 맡기려고 해서 우려스러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게 부모역할 이란것에 새삼 공감합니다.
부모는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잊을 때가 많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이에겐 시간이죠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팥쥐님처럼 아이랑 함께 해야하는 거죠ㅎ
그 시간 더 많아지시길 바랍니다^^
그 뒷 이야기도 카더라 통신이라 정확하지 않을수는 있는데,
운전기사가 녹취록을 부모에게 보여주며 얘기하자, 부모는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라면서 가볍게 훈계하고, 운전기사는 해고됐다네요
-> 카더라 통신입니다.
네 카더라가 아니고 뉴스에 보도된 부분이죠^^ 아이에게 사과하도록 한 그 날 바로 해고했다죠.
씁쓸하기 그지없는 가진자들의 단면입니다.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ㅠ
이번 주말은 간만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로 가야겠네요ㅋ
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는 잔잔하지만 많은 생각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좋은 주말되세요^^
환경을 만드는 건 어른들의 몫이죵.
좋은 아이를 만들기위해선 어른들이 먼저 좋은 어른이 되야 하나봅니다 ^.^
네 옳은 말씀입니다. 좋은 어른을 보고 자란 아이가 좋은 어른으로 자라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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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잘못이죠. 참 슬퍼요. 무섭기도 해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글픈 현실이죠. 부모들이 책임을 더 무겁게 느껴야 할 거 같아요. -,-
잘읽고갑니다. 아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이란 것에 인성이나 태도보단 어떤 학교와 어떤 직업인으로 키울것인가에만 집중되다보니 놓치는게 많아지는 것 같아요.
네 교육이 그 자체로 기능하기보다 뭔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죠. 필요한 개혁은 아직도 요원하구요.
그렇다고 그 부모가 반성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돈은 있어도 격은 없죠..
네 특권의식을 가진 계층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게 자란 애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겠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어른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요.
네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한다는 건 상식이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거 같아요.
살다보니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은 없는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군요.
출근길 우리 아이들을, 아버지로서의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쏠메님~~^^
네 아버지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 상식같은 얘기지만, 저를 포함해 많은 부모들이 잊고 지내는 사실인 거 같아요. 아이 아빠 호돌박님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얘길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