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지금보다 어쩌면 훨씬 더 준엄한 힘의 질서에 의한 국제질서가 있던 시절이고, 국왕이 의주까지 피신하여 더는 갈곳이 없어 나라의 존망을 우려하던 시기이기에, 필요하다면 중용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유교가 강했지만 김충선도 아마 일본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음도 고려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조선인을 살생하는데 앞장서지 않고 초기에 바로 투항한 점도 그를 참수하지 않고 귀화시키고 믿고 썼던 것 같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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