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항문 부위가 아픈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에 내 동생이 치질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평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 병원이 어딘지 물어서 알려주고 어찌 되었나 궁금할 즈음 다시 전화가 왔다. 근무하는 사무실과 가까워 바로 병원을 갔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병원인데 가까운 시일에 날짜를 잡았다니 잘 되었다고, 수술할 정도라니 많이 아팠겠노라 걱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이 바쁠 때라 그렇게 통화만 하고 끊었는데 퇴근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부위가 부위이다 보니 운전하고 혼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다시 가는 것도 불편할 것이고 간단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수술인데 혼자 가는 것은 맘이 심란할 것 같았다. 이 나이에 어머니께 말씀드려봐야 걱정만 하실 것이고....다시 전화를 했다. 날짜랑 시간을 묻고 내가 시간 맞춰 데리러 갈 테니 집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당일날 친구를 만났는데 전날 밤부터 증상이 매우 심해져 정말 죽을 거 같다고 차에 타서도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이상한 자세를 유지한 채 택시 탔으면 정말 웃겼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병원을 갔다. 수술 전 마지막 검사로 안(?)을 살펴보기 위해 검사실에 들어갔다 온 친구는 검사하던 직원을 진심 한 대 칠뻔했다며 매우 아파했다. "거긴 뭔가 나오는 곳이지 들어가는 곳이 아니니 아플 수밖에.... 검사하는 직원도 그 일이 아주 즐겁진 않을거야" 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술을 받은 친구는 그렇게 잘 회복이 되었다.
거기서 끝이어야 했다. 친구의 고통을 모른 채 하지 않고 주말 동안 거동이 불편할 친구를 위해 가는 길에 죽까지 두개 포장해 집까지 잘 모셔다 드렸으면 그것으로 끝이어야 했다.
5월이 되었고 사실은 그 전부터 기미가 있었지만 모른 척 한 탓이 클 것이다. 위경련이야 엄청 아프지만, 가끔 있는 일이니 그렇다 치고 나는 원래 돌도 씹어 삼킬 소화력을 가진 여자였다. 속이 쓰리고 아플 때는 있어도 소화가 안 되는 일은 잘 없었다. 그런데 소화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고 심지어 체해서 토하는 일도 많아졌다. 사무실에 소화제를 사다 놓고 먹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계속되는 설사....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그냥 가끔 꾸륵거리는 정도여서 좀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그러다 말지를 않았다. 음....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래. 좀 쉬고 오자.
그래서 여행을 갔다. 회사에는 과감하게 생각이 많아(설사가 많아라고 할 수는 없으니) 쉬고 정리하고 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표 구해서 다다음날 떠났다. 잘 쉬고 놀았다. 하지만 돌아오기 전전날부터 다시 아팠다. 심지어 마지막 날은 호텔 체크아웃하고 비행시간이 밤중이라 시간이 많이 비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또 토하고 리셉션 뒤쪽에 대기 공간이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큰 소파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길래 나도 하나 차지하고 누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져서 망고 빙수 하나 먹고 저녁까지 빈둥거리다 비행기를 타고 왔다.
도착 후 이틀 동안 지옥의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이 되자마자 병원에 갔다. 1시간을 기다리고 증상을 얘기했더니 1분도 되지 않아 위염과 장염이 겹친 것 같다고 했다. 의사의 성의 없는 진단을 받고 내 마음속 의구심을 해소하고자 검사 예약을 했다. 위장과 대장 내시경을 다 받는 것으로 하고 대장 내시경에 필요한 약을 타왔다. 드디어 나도 악명높은 대장 내시경을 받는구나. 위내시경은 몇 년 전에 받았는데 대장 내시경은 처음이었다. 어차피 하는 수면 마취 한꺼번에 하고 질병에 대한 걱정 없이 맘 편히 먹겠다는 마음으로 예약은 했는데 막상 검사받기 전날이 되어서야 받아온 약을 제대로 보았다.
자세히 보면 세정제 아닌 세장제
대장내시경은 이렇게 진행된다.(이것은 내가 갔던 병원에서 진행한 방식이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힌다)
1. 전날 점심을 먹고 위장운동을 활성화 시켜준다는 알약을 두알 먹는다.
2. 같은 날 5시경 저녁을 가볍게 먹고 아까 그 알약 두알을 더 먹는다. (점심에 못 먹었을 경우 이때 한꺼번에 4알 복용 가능)
3. 드디어 악명 높은 물약 복용의 시간, 저녁 9시쯤 첫 번째 가루 두봉을 물 500ml에 타서 마신다.
4. 30분 후 다시 가루 두봉을 물 500ml에 타서 복용
5. 1시간쯤 지나자 신호가 오고 그 뒤로는 오롯이 나와 변기와의 외로운 싸움.(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때는 물을 많이 먹어야 좋다고 한다. 그냥 계속 마신다. 나는 500ml 통으로 세통 정도의 물을 더 마신듯....
6. 이 모든 것이 꿈인가 할 즈음 위 3, 4번의 과정을 반복한다. 즉 새벽 4시반에 500ml의 물에 약 두봉 타서 또 마신다. 30분 후 한 번 더 반복. 공허하다. 속이 다 빈 나는 매우 공허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
7. 마지막으로 5시 반에 가스제거제라는 짜먹는 약을 먹으면 나의 위장은 모두 비게 된다.
약과 함께 주는 설명서에 이렇게 나와 있었다. '대변이 소변같이 나와야 완전한 장청소가 된 것입니다' 난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러나 저 과정이 다 끝나면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다. 역시 예상만 하는 것과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알게 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다른 경지랄까? 이 또한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저 약의 맛은 미세한 점성이 있는 포카리스웨트에 소금을 더 넣은 맛?
모든 과정이 끝난 나는 기진맥진이다. 8시 10분까지 병원에 가야 하는데 다시 잘수도 안잘 수도 없는 애매한 시간만 남아있을뿐. 그마저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내게 주어진 평화는 고작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깜빡 잠이 들어 알람을 맞춰놓고 잤음에도 가지 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허무를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일어나서 나간다.
주차장에 이중주차 되어있는 차를 밀 기운이 없다. 출근 시간이라 택시도 잘 없고 버스를 타기로 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출근 시간에 츄리닝 바람에 쾡한 표정으로 버스를 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내려서 비척비척 병원을 간다.
탈의실에서 말로만 듣던 뒤가 터진 곳을 천으로 간신히 덮은 바지를 받는다. 잠옷같은 분홍 가운과 뒤가 터진 바지를 걸치고 나와서 기다린다. 내가 간 병원은 건강검진 센터가 아니라 일반 내과라 검진받는 사람을 위한 대기실이 따로 없다. 이쯤되면 될데로 되라의 심정이다.
어찌어찌 검사를 마치고 나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수면 중 내가 혹 헛소리나 욕을 심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으나 간호사들은 내색이 없었고 터진 바지가 약간 젖어있는 것을 보고 애써 물일 거야 다독이며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검사를 받고 나와 전날 사촌 동생이 농담 삼아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나 검사를 받은ㅇㅇㅇ(나)을 마주치면 접촉을 피하고 당황하거나 대화를 시도하지 말고 가까운 보건 당국에 신고하라는 공지를 해야하는것 아니냐며.... 평생 내 위와 장이 동시에 이렇게 빈 적은 없었다. 속이 비면 배가 홀쭉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또한 기대뿐이었다. 남은 것은 근원적 허기와 수치심뿐.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꽤 아팠다. 별일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몸이 안좋으니 만사 귀찮고 설마 싶었지만 그 설마를 확인하고 싶었다. 몸이 자꾸 아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끼치는 것도 싫은 일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검사 결과는 위염과 장염이었다. 위는 그렇다 치고 장에도 염증 때문에 상처가 있었는데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거라 했다. 그렇다니 믿어야지.(믿고 맘편히 먹고 마셔야지...ㅋㅋ)
사실 이 글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나도 대장 내시경에 대해 힘들다 말로만 대충 들었지 너무 짧으면 하나마나고 자세히 쓰자니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일(?)을 알게하는 것 같아 그 선을 정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 줄 몰랐기에 검사를 갓 마친 내가 정보를 전달하고자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나서 보니 이건 자폭기 인가 싶다.
건강검진이라는 것이 아무 이상없다고 하면 괜히 돈만 버렸네이고 그렇다고 이상이 있길 바라는 것도 아닌 이상한 것이지만 그래도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짧은 시간에 다시 떠올린 나에게 위안이 될 것 같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정기적으로 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전 아직 안해봄 ㅎㅎ;;
저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음....적어도 몇년간은 해야하는데 라는 고민은 안하겠죠..거기에 의의를 둬보렵니다..ㅋㅋ
대장내시경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이 글을 보니 더 무서울 것 같습니다.
여행가서 아프면 정말 힘들던데...용케 잘 참으셨네요.
참았다기 보다는 방법이 없어서....제가 좀 미련한거같기도 합니다..ㅋㅋ
무서우라고 쓴 글이 아닌데 본의 아니게 겁을 먹게 했나봐요. 약간(?)의 수치심과 허기만 참으신다면 하실만 해요. 수면내시경이라 직접적인 시술과정은 기억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위염과 장염...둘 중 하나만 있어도 힘든데, 그게 겹치다니 정말 고생하셨겠네요..! 얼른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약먹고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많이 좋아졌어요. 카일님도 여름철 건강 조심하세요..^^
소변같이 나오면 잘 된 것이군요, ㅎㅎ 저는 숙변제거를 위해서 일년에 한 번씩은 꼭 장청소를 하는데, 지금까지 아주 잘 해왔었네요. 장청소하면 쉴새없이 소변처럼 쭈~~욱 잘 나오거든요.
내시경 안내서에 그렇게 적혀있더라구요. 양목님께서 지금까지 잘 하고 계셨나봅니다.^^ 건강을 챙기는 건 역시나 중요한 일이라 저도 더 신경 써보려고 합니다.
해야지 해야지 올해야는 해야지 결심하고 나서도,
유경험자들 이야기 들으면 못하겠어옄ㅋㅋㅋ
저도 매번 그러다 이제서야...ㅋㅋ
한번 해두면 몇년은 마음 편할거 같아서 도전!!
clubsunset님도 도전??ㅋㅋㅋ
올해는 일단 패...스...ㅠ
어휴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건강하다는게 확인되었으니 좋은일이죠^^
감사합니다. 며칠 약 먹으면 된다니 다행이죠.
괜찮다는 확인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편한 맘으로 맘껏....
과식은 지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