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한 잠 버릇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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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스팀잇을 떠나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참 오랜만에 김리@kmlee님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부리나케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 본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며, ;)


난 줄곧 2월에서 4월사이에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잘 걸리지도 않은 감기임에도 유독 걸렸다 하면 그맘때였고, 입안 가득히 구내염이 창궐한 때도 그때였다. 그 중 3월경에 두드러졌는데, 누가 보더라도 혹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심각한 ‘봄 병’을 앓았다. 사람들은 이런 고충을 털어놓을 때 마다 신기하게 여기다가도 별일 아니라는듯 한곁같이 ‘식곤증’ 내지 ‘춘곤증’으로 결론지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로 알았다. 잠이 덜 깬 아이의 마지막남은 잠을 청하는 잠투정처럼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불속으로 머리를 처박은 것 같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잘 놀다가도, 티브이를 보다가도 고개를 고꾸라뜨리며 잠이 든 경우가 여러 수백일은 되지 싶다. 노래방이며, 게임방이며, 영화관이나 몇번되지는 않지만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그런 일은 왕왕 벌어졌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일을 하다가도 잠이 들어서 중요한 미팅 시간을 놓치는 어이 없는 일도 있었고, 팀장님 주재의 레드 팀 미팅에서 정작 나의 의견이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도 나는 잤다. 싫은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번이 아님은 말해서 무엇하랴. 그뿐만일까. 평소에 극한 운동을 하는 경우는 소원했고, 일년에 고작 소주 두어병을 마시는 내가 운전을 하다가도 몇번에 걸쳐서 아차싶은 상황을 경험했으니, 여간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대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밥을 먹고 난 후나, 전날의 숙취 또는 일찍 일어나서 잠이 부족할 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식곤증이나 춘곤증의 경우에. 설령 그렇더라도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앉으면서 고개를 떨구어 잠에 들텐데, 나의 경우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내가 생각해도 금방이라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냥 ‘푹!’ 하고 꺼져버린다. 마치, 누군가 잘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 본체의 전원 플러그를 뽑아버리기라도 한 듯, 그냥 그렇게 ‘위이잉~’ 하는 쿨러의 마지막 남은 외침을 들을 사이도 없이, 나는 꺼졌다. 때때로, 영화가 최고조로 달려갈 즈음 어디선가 나타난 주인공의 손가락 하나로 중앙 통제 장치에 의해서 제어되는 로봇들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괴상한 잠 버릇이었다.

이 때문에, 몇번의 병원 진료와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그때 마다 ‘소견 없음’.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던 나로서는 그냥 살자 싶었고, 봄이 오면 오는대로 그런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또한, 팀장이며 사무실의 동료들 역시 ‘또 그런가 보다’ 하고 우스갯소리로 ‘전원 꺼짐’이라고 히히덕 거리는 일은 일종의 덤이자, 뜻하지 않게 그들에게 제공한 나의 몸 개그였다고 할까.



결혼을 하고 난 후, 첫해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올해 봄은 그런 것도 거의 모르고 지나고 있다. 이런 나를 보며 심히 걱정을 하던 아내의 입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그녀도 잊어버릴만큼이나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런 경우는 몇차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꾸준히 피웠던 담배와 영양가 없는 인스턴트 위주의 식단이 원인인 것 같다. 기숙사와 회사를 오가며 운동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고, 기껏 먹는 음식이라고 해봐야 맛없는 구내 식당의 식사였는데, 그마저도 잘 입에 대지를 않았다. 배는 고파도 맛 없는 것은 죽어도 못먹겠다는 심산으로 차라리 몸에 좋지도 않은 컵라면이나 먹어댔으니 몸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더 이상 혼자의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지 않아도 된다. 입맛이 떨어지기라도 할 때면 맛나는 음식을 해주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새벽 같이 출근을 해야하는 주간에는 어김 없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뜨거운 가스렌지 앞에서 묵묵히 주걱을 젓는다. 뒤이어 늑장을 부리며 일어난 나를 보며 ‘안녕!?’ 하고 반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한 아침 밥을 선사하는 아내 덕분에 예전 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 내 마음 가득히 들어찬 풍요와 사랑만큼이나 살을 찌웠다.



나는 결국 글의 마무리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고, 글의 종착지 또한 이곳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것은, 글의 끝 문단을 써내려가려던 방금, 아내가 서재문을 열어 젖히고는 고개를 빼곰히 내밀어 내게 물어 온다.

“여보, 밥 언제 먹을거야?”



글; 우유에 퐁당
사진; Photo by Mik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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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분이 명의시네요. 원인불명의 잠병을 치료해주셨네요.ㅎㅎ 우유가 아니라, 아내에퐁당! 입니다.ㅋ

ㅎㅎㅎ 푹 빠져서 산답니다!~

기승전 자랑! 이네요.
식생활이 건강에 차지하는 부분이 정말 큰 것 같아요. 이번 봄은 몸과 마음 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내 분과 행복한 저녁 식사 하셨기를^^

애정을 쏟아 부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어떤 영양제보다 훌륭한 보약인 것 같습니다!

으히히히 종착지는 헤헤 역시 짝궁의 사랑이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게 방문을 했어요.
행복하셔서 너무 좋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두손 모아요~ 많이 많이 행복하세요~

언제나 고맙습니다. 죄송하다니요.
주말 잘보내고 계신가요?

네, 늘 짧고 아쉬운 주말을 잘 보내고 있어요. ㅎㅎ 퐁당님도 편안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해요~ :)

기면증...아닌가요?
전원꺼짐이라니 ㅠㅠ 그 컴퓨터 전원 꺼질 때 들리는 '띠디디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요. 일상생활이 힘드실 것 같은데...아내 분이 있어 그 불안한? 부분을 해소해주시는군요. @plop-into-milk님의 이야기를 듣게되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고맙습니다. 다시 돌아와주셨으니까요^^

이야기를 듣게되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고맙습니다. 다시 돌아와주셨으니까요^^

Q씨의 이야기를 들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답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제법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답글을 드리게 되었네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꼭 그럴 것이고요.

글을 쓴다는 자체가 가져다 주는 일종의 강박 따위 때문에, 스팀잇에 글을 포스팅 하는 일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하도록 해보지요. 글을 통해서 저를 조금 더 많이 드러낼 수 있는 계기를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저의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과도 많은 소통을 이루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고맙습니다.

저는 사실 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갑자기 잠에드는 경우는 없었어서, 그러한 상황이 잘 상상은 가지 않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만, 무척 두려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서 좋은 가정을 꾸리셔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항상 활기차고 꾸준한 오늘과 내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

맞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여정중에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The Tree of Life, or Etz haChayim (עץ החיים) has upvoted you with divine emanations of G-ds creation itself ex nihilo. We reveal Light by transforming our Desire to Receive for Ourselves to a Desire to Receive for Others. I am part of the Curators Guild (Sephiroth), through which Ein Sof (The Infinite) reveals Itself!

기승전 스윗!! 해요ㅎㅎ

네, 그런 것 같아요. ㅎㅎ

배는 고파도 맛 없는 것은 죽어도 못먹겠다는 심산으로

와 저도 그런데. 봄이 괴롭히는 사람이 또 있었군요 ;ㅁ; 제가.. 제가 미안합니다 ㅎㅎㅎ 그런데 역시 종착지는! 히힣ㅎ히힣히. 역시 사랑이, 짝꿍이 최고예요 :)

맞아요. 내 짝지가 최고지요. ㅋㅋㅋ

와~ 아내분이 음식이 솜씨가 대단하신거 같아요^^
정말 부럽습니다^^ 전 음식솜씨가 많이 부족해서 ㅠㅠ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시네요^^
달달한 냄새가 코끝을 진동하는군요^^

결혼하기 전에는 사실 기대를 안했거든요. 기대도 하면 안될 것 같은 음식 솜씨를 경험해서가 아니라, 괜한 욕심 같기도 해서, 단지 저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에요. 그런데, 뜻밖의 음식 솜씨는 저를 행복하게 한답니다!

저도 올봄은 평소보다 건강한데 무슨 일일까요? 이렇게 밝은 글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행복하세요!

매번 큰 도움과 위안을 받습니다. 고마워요. ;)
김리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헉 부럽... 부럽.. 부럽.. 졌습니다..ㅎㅎ
처음 글은 살짝 무서웠는데.. 끝은 너무 따뜻하네요
챙겨주는 사람 없으니 알아서 잘 먹고 살아야겠습니다.ㅋ
정말 음식은 마음을 담는 거 같아요 ^^

;) 잘 챙겨 드셔야 합니다. 건강. 건강할 때 지키고 꾸준히 관리 해야 합니다.

신기한 춘곤증 얘기에 빠져 읽다가
마지막엔 반성을...;;ㅎㅎ
저도 매일 아침을 챙겨주려 노력하는데요 ㅎㅎㅎ
3일정도는 그래도 챙겨주는 편인데
하루정돈 둘 다 늦잠을 자고 하루는 제가 늦잠자고 그래요 ㅎㅎ
결론은...! 정말 쉽지는 않은 일인데 아내 분 정말 대단하세요 ㅠㅠ!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죠. ;)
방문 고맙습니다!

아내를 만나 축 처졌던 고개를 들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며..
솔로들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보기 쉬운 글을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잘 보고 가요

솔로들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보기 쉬운 글을 아니겠구나

ㅋㅋㅋㅋㅋㅋ 낭창스러울 수도 있는 말을 참으로 점잖게 말씀하시는군요!

완전 심각하게 봤는데 러브러브하게 마무리되서 다행이에요~! 밀크님 넘나 멋진남편~:)!! 이런글 너무 좋아요~~~!

;) 고마워요. 언제나.

와아- 역시 건강한 식단을 잘 챙겨먹는 게 중요하네요! ㅎㅎㅎㅎ 저도 뉴질랜드 와서 갖가지 채소에, 과일에, 빵보다 더 싸기도 한 고기들도 잘 먹어주고, 그렇게 지냈더니 얼굴빛이 달라졌어요. 잡티도 안 올라오고, 몸이 맑아졌달까요. :-) 챙겨주는 사람의 소중함- 따뜻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퐁당님!!

다녀 가신 흔적, 고맙습니다. ;)

아.. 부럽습니다.
부러워하면 지는거라지만, 이렇게 지는건 몇번이고 져도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아내를 만나게 된다면.. 전 불면증이 좀 나아지려나요? ^^;

외람되지만 아내보다 여친이 먼저 아닌가요? 쿨럭! ㅡㅡ,;;

그쵸..ㅜㅠ
근데 그게 너무 힘드네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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