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발레단이 공연하는 '지젤'을 관람하고 왔다. 지젤에 관한 내용은 @wonderina 님께서 잘 정리해놓았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https://steemit.com/kr-newbie/@wonderina/kr-ballet-giselle-part-1
https://steemit.com/kr-newbie/@wonderina/kr-ballet-giselle-part-2
지젤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연인에게 버림받은 한 처자가 귀신이 되었으나,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함께 춤을 춤으로써 연인을 구해준다는 이야기이다. (정말로 한 줄 요약이니, 감동을 느끼고 싶으면 작품을 보라.)
또한 최근 @kimhama94 님의 지젤 관람 포스팅을 참고해도 좋겠다.
https://steemit.com/kr/@kimhama94/5dr2lp-kr-art
개인적으로 1막의 발랄함 보다는 2막의 하얀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샤방샤방하고 밝은 작품보다는, 삶의 비애나 사상을 담은듯한 작품을 조금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와 열을 제대로 맞추어가며 군무를 군무로써 아름답게 그려내는 장면은 굳이 줄거리나 메세지를 고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는데, 대체로 우리의 시선은 주인공 혹은 그에 준하는 무용수들에 집중되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 작품은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이 단지 one of them 을 넘어선 역할이 강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쪽 업계는 괜찮은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고, 발레단에 들어가서도 주목받은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겠냐만은.) 특히 현대 무용이나 다른 응용(?) 장르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롯이 발레라는 장르만 추구하는 무용수들로서는, 주목받는 위치에 선다는 것 자체가 꿈의 일환일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취미로서 발레를 배우고, 단지 관람객으로서 작품을 감상하는 나로서는, 종종 배경으로서 존재하는 다른 무용수들의 몸짓과 자태를 살펴보게 된다.
발레를 배우면서 처음에는 기교를 얼마나 잘 연습하느냐에 집중하게 되다가, 조금 익숙해지면 이러한 기교에는 여러 다층적인 감정선이 숨어있음을, 같은 기교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나타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음을 깨닫곤 한다. 사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고, 이러한 디테일의 차이가 감정의 깊이의 차이를 빚어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언어로서의 춤을 바라보곤 하는데, 시(詩)가 발화의 노래 언어라면, 춤은 행위의 노래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비언어적 의사소통에서 쓰이는 '언어적'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비언어적인 소통은 각자의 노래를 몸짓을 통해 부르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체로 우리는 살면서 노래를 하기보다는 연설과 설명을 하곤 하지만.
고전적인 작품을 어디까지 재해석할 수 있을까. 이번 국립발레단 지젤을 보면서, 여기서 나타난 낭만과 사랑의 고전적인 관점을 즐겁게 살펴보고 인간 본연의 감정들을 일깨우는 감각적 몸짓에 마음 울컥하기도 했지만 - 그래서 고전은 고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마음들은 사실 몇백년이 지난다고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 , 한편 마츠 에크가 재해석한 변종 지젤과 같은 작품도 한번쯤 보고 싶어진다. 감정의 변주에 대해, 고전과 현대로 나누고 고전의 틀에서 허용되는 범위과 현대로 넘어가는 범위에서 우리는 어디까지를 허용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않는 범위로 나누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일반인들이 인지하기에 다소 어렵고 고루할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발레의 무수한 변주들에 대한 감정들을 어떻게하면 잘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감정들이 발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잘 향유될 수 있을 것인가.
멋진 작품을 보면서도, 함께 든 생각이었다.
진짜 고전의 고전이죠, 지젤은.
저는 굉장히 파격적인 지젤도 외국에서 티비로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2막의 비애는 똑같더군요.
실제 관람은 처음이었는데, 정말로 좋더라고요. 왜 지젤을 고전의 고전이라고 하는지 드디어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2막의 비애에 방점을 둔 작품 같았습니다. 1막과 2막 분위기는 차이가 좀 도드라지는데, 확실히 2막에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어요.
허걱 저는 발레를 직접 관람한 일은 없어.... 어떤것인지 잘 모르네요.... 그래서인지 글을 정독해 보게 되네요..... 저더 나증에 관람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
저도 발레의 세계에 빠져들기 전까지는 직접 관람한 적이 딱 1번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에도 그냥 뭔가 괜찮네- 정도의 느낌만 가졌던지라, 아무래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틈틈히 공연이 열리니 한번 관람해보셔도 좋고, 아니면 아예 한 2-3달 정도 한번 직접 배워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저도 금요일 리회님 주역 공연으로 봤어요!!!!!!!!! 몇달(?) 전에 쓴 글인데 이렇게 링크해주시니 왠지 민망(?)하네요 ㅎㅎㅎ 한줄 요약 매우 적절하네요 ㅋㅋㅋ
라고 하시니 갑자기 또 떠오르는 작품이 있는데..(일반적인 발레 작품은 아니에요 ㅎㅎ) 기회가 된다면 그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한번 적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보통 발레가 일반인들에게 어렵고 고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를 변주한 작품이나 현대무용 작품들이 어쩌면 더더더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생각합니다. 더구나 고전을 변주한 작품들은 원래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 자체로는 어떤, 혹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결국 그 작품 자체만으로 오롯이 존재하기는 어려운 것 아닐지.. 물론 저도 아직 현대쪽은 잘 모르고 어려워서 이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요^^;;
암튼 이번 공연은 오랜만에 오케도 만족스럽고 오케와 춤의 호흡도 만족스럽고 무용수들의 춤과 연기도 좋고 무대연출도 좋고 다 진짜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신경을 거스르는 것 없이 모든 조건이 다 너무 좋아서 작품에 정말 한껏 빠져들어 몰입해서 본 공연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정말 여운이 길게 갈 것 같아요. 너무 좋은 공연이었어요. 발레글이라서 제 블로그로 리스팀해갈게요. 그리고 다른 많은 분들도 보시라고... @홍보해
추가적인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해주시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사실 발레 작품은 이름을 들어보았어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물론 센터 연습하면서 동작들을 해보며, 실제 작품들과 결국 매치하게 되기도 하지만, 작품의 시퀀스를 파악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저도 현대 무용 쪽은 잘 모릅니다. 다만 현대 무용이 가지고 있는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듭니다. 발레가 약간 예전 시선과 가치에 머물러 있다면, 현대 무용에 오면서 뭔가 인간이 좀 더 자유로워졌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현대를 살고 있고, 현대 무용 또한 결국에는 20세기 후반의 무용/21세기 초반의 무용 정도로 정의되겠지만요.)
저는 사실 음악 알 못이라서, 오케의 조화를 잘 파악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조화로웠다는 측면에서는 제대로 보신 것 같습니다. 무대 연출은 생각보다 많이 화려해서 놀랐어요. 여튼 고맙습니다.
아, 제가 댓글에서 말씀드린 작품은 일반적인 고전발레나 낭만발레 같은 작품은 아니라서 말씀하신 것 같은 그런 생소하게 느껴질 법한 동작들이 주가 되고 이런 작품은 아니어요! 그치만 어쩌면 qrwerq님은 그 작품을 더 인상깊게 보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그리고 공연 보실때 작품의 시퀀스를 따라가는게 쉽지않다고 느껴지셨다면 혹시 다음에 또 다른 공연을 보시게 되면 그땐 유튜브 등으로 미리 한번 보고 가시는걸 추천해드려요! 한번 보고 가면 실제 공연장에서 그만큼 더 많은걸 보실 수 있거든요!!!
그렇군요! 생소한 동작들이 나타내는 몸짓의 확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시(詩)를 바라보듯 몸짓을 바라보는 것일지도요.
Youtube를 미리 보는 것을 고려해보겠습니다. 시간만 많으면 2-3편 정도 미리 보고 갈텐데, 생업이 저를 놓아주지 않네요 (ㅠㅠ)
반갑습니다. 역시 고맙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일반인들이 인지하기에 다소 어렵고 고루할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발레의 무수한 변주들에 대한 감정들을 어떻게하면 잘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감정들이 발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잘 향유될 수 있을 것인가."
제겐 "as like as steemit" 이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다음 공연때에는 꼭 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드립니다.
스팀잇도 마찬가지 생각이 듭니다. 교양(?) 부터 전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컨텐츠의 목표와 방식이 스펙트럼처럼 분포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독자를 포괄하는 글쓰기는 결국 불가능하기에
궁극적으로는 결국 구별짓기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만, 이건 비단 스팀잇만의 특성 때문에 생기는 일은 아니겠지요. 발레의 경우에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을 보신다면, 어지간하면 실패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
어렸을 때 '프리마돈나'라는 만화를 보며 발레 용어를 알게 되고, 발레에 대한 환상을 키워 왔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발레를 보면 저에겐 동화같고, 환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요. 이 세상의 움직임이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 아름답습니다.
아. 그런 만화가 있었군요. 새로운 정보 알아갑니다. 제가 생각보다 순정만화 류도 상당히 즐겨보는 타입이다보니, 즐거울 것 같습니다. '스바루' 라는 만화도 참 유명한데,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농담이지만, 사실 우리는 보는 것에서 만족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해보면, 저질 몸매와 체력이 드러나기 때문에 (...) 여튼 저도 발레를 보다보면 몸이 저렇게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사실 테크닉 이외에 표현력은 결국 경험과 삶의 연륜에 따라 쌓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종종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의 원숙함이 생각보다 섬세해서 놀랄 때가 많지요.
우와~^^
며칠 전 꿈에 삼촌이 나오셔서
저에게 "넌 지젤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가셔서
지젤 공연을 폭풍 검색했는데...
이곳에서 지젤 후기를 읽으니 무지 반가운데요!
기회가 되면 꼭 보고싶은 공연입니다.
지젤이 참 아름답고 순수한 캐릭터라죠. 순수함과 아름다움만 닮으시면 되겠습니다. :)
지젤의 삶의 스토리는 사실 불쌍하고 기구해서요. (ㅠㅠ) 여튼 꼭 한번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기회 되시면 가까이서 한번, 멀리서 한번 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가까이서는 춤의 디테일을, 멀리서는 군무의 정갈한 느낌을 보실 수 있겠습니다.
네~ 제 전문이에요.
긍정적이고 좋은 것만 보는거...^^
순수함과 아름다움만 닮겠습니다.
멋진 가이드 감사드려요~!!
저도 지젤이라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문외한인지라, 글을 보고 유튜브로 지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궁금한 것이 @qrwerq님처럼 발레를 직접 배우는 관객이 아니거나, 혹은 발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 공연을 직접 관람해도 즐길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국 어디까지 즐길 수 있을 것이냐에 관한 스펙트럼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미술 혹은 그 이전 시기의 미술만 하더라도, 어떤 관람객들은 표현, 사상, 생각, 감정, 시대에서 가지는 의미를 모두 읽어내는 반면 어떤 관람객은 즐거움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떠한 방식이든, 몸짓에 집중할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wonderina 님 글을 봤던 기억이 있네요. 체코에서 직접 발레를 봐야겠다 알아봐놓고서는 지갑사정때문에 결국 못보고왔던 아픈 기억이 납니다..
기회가 또 있으리라 믿습니다. 유럽 여행을 부담없이 여러번 가실 수 있도록 충분히 성공하셔서, 자주 방문하셔서 보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생각들을 늘 담담하고 조리있게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요하고 잔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삽니다.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아 발레를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가끔 티비로 보던 짧은 영상이 제가 아는 발레의 모두 이죠. 발레리나(리노)의 몸짓과 음악도 결국은 공유와 소통에 대한 노력일 것임을 느낍니다. 같은 주제와 내용이어도 그 표현방법은 다양한 양상을 띄겠죠. 기회가 되면 발레를 보고 싶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연기한 것 중에 지젤이 있음을 원더리나(@wonderina) 님 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보며 그 내용보다 점수, 이겨라.... 정도의 생각으로 봤던 거 같습니다. 부끄럽네요. )
누구나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추구할 수는 없기에,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배우고 익히고 해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발레를 배우기 전까지는 사실 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 기억에 남지 않고 단지 공연 잘 봤다 정도의 감상에서 머무르곤 했습니다. 사실 그리고 그러한 감상도 나쁜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스스로 더 즐기고 즐거워지려하기에 좀 더 깊이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