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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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의 추억
제가 속한 비공개그룹에서는 달마다 숙제 하나씩을 내서 특정 주제로 글을 올리게 합니다. 이번 달 주제는 '남들을 웃긴 사연'인데요..... 제 초보 시절 경험담을 올린 걸 보관차 퍼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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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딱지 붙이고 가는 차 보면 여러 감정이 들죠.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플러스 급브레이크 조심 플러스 너 운전 때려쳐라 등등.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은 있는 법이고 실수담 하나씩은 있겠는데... 저는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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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결혼하고서 신혼의 아내와 나 처남과 처남의 여자친구이자 현 처남댁은 캐러비안베이에 놀러가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러고 완전히 깜깜해진 다음 차를 타고 나오는데 에버랜드 진입로를 지나면서 저는 격하게 이건희 욕을 하게 됩니다. 구불구불 커브 길에 초보운전자로서 바짝 긴장을 했는데 길이 너무 어두운 겁니다. 하이빔을 켜고 눈에도 불을 켜야 좀 밝아집니다. 상대방 차가 오면 부랴부랴 하이빔을 꺼야 하고..... 신경 되게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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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긁어모으면서 진입로 라이트 좀 밝게 해 두지 어두컴컴하게 이게 뭐냐. 하여간....이건희 이 슈발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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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점에서는 아예 깜깜할 정도였고 라이트마져 효과가 있으나마나한 구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고도 돈을 벌지? 이건희 이거 하여간...... 비분강개는 지속됐습니다. 그때 현 처남댁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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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선글라스 벗으면 괜찮으실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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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초보운전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거디었습니다.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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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휘황찬란한 초보시절의 어느날, 저는 처가 식구들, 그러니까 장모님, 큰처남네 가족들, 아내, 작은처남을 모두 싣고서 한 번 쏜다!!!를 외친 다음 홍대 앞 판다로사라는 외식집으로 향했습니다. (판다로사는 지금은 없어져서.. '빕스'라는 비슷한 형태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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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철교 공사할 때고 양화대교 4차선으로 겨우 다닐 때입니다. 가히 전쟁을 방불케하는 차들의 끼어들기 혈투, 초보운전자를 귀신같이 알아보고 그 앞에 머리를 디미는 베테랑들의 간교함에 치를 떨며, 왜 양심없는 놈 끼어주냐면서 뒤에서 빵빵거리는 사람들의 레이저광선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양화대교를 건너는데 30분을 잡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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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못한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왜 끼어드는 차마다 다 넣어 주는데?"
"사람은 양보할 줄 알아야지."
"곧 죽어도 자기 운전 못한단 얘긴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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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구사일생 끝에 양화대교를 넘어섭니다. 이제는 다 왔다 싶어 초보운전사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헌데 판다로사는 대로변에 있지만 그 주차장은 홍대 앞 그 부산한 골목길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는 걸 안 순간 그 미소는 푸르게 얼어붙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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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래 걸어가는데 뒤에서 차가 빵빵거리면 으레 곁눈질로 쏘아보면서 "띠발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났냐? 어디서 빵빵거려?"라고 투덜대던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 골목길 들어서서는 10초에 다섯 번은 클랙슨을 울려대면서 "아 좀 비켜라. 이것들아 차 좀 가자."면서 핏대를 올려 댔습니다. 역시 사람 바뀌는 거 한순간입니다. 드디어 판다로사 주차장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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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면서 판다로사 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이건 또 뭡니까... 그 좁은 주차장 입구에 차 한대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전 당연히 그 차가 제가 진입하도록 후진해 주리라 믿고 차를 들이밀었습니다. 역시 클랙슨을 호기롭게 빵빵 울리면서요. 어랍쇼? 근데 이 차도 똑같이 앞으로 나오면서 클랙슨을 눌러 댑니다. 흘낏 백미러를 보니 도저히 후진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홍수..... 어떻게든 저 놈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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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뒤로 빠지란 말이야. 짜식아." 마구 삿대질을 해 댑니다. 그제야 앞차에 탄 놈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이 자식도 지지 않고 손가락을 내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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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 봤나. 뒤에 사람 많단 말야 "
오만상 찌푸리면서 동작 큰 손짓을 해 보이니까, 자기도 뒤에 뭔가가 있다는 시늉을 합니다. 야 상식적으로 네가 빼야지, 난 뒤가 대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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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새끼.,..."
이를 악물고 후진기어 넣고 차를 뒤로 물리는데 갑자기 앞에 있는 넘도 차를 빠꾸시키더군요. 오 그래... 이제야 네가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기어를 바꿔 앞으로 돌진한 순간, 이게 웬일입니까 그 차도 내가 후진하는 걸 봤는지 다시 제 코앞으로 밀고 나옵니다. 끼이이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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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는 충돌 직전 멈췄습니다.
"야 이 새꺄!!!!!!!!!!!!!!!!!!!" 차가 부서져라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을 쥐어 보이니까, 저 싸가지 홍콩 보낸 앞 운전자도 버르장머리없이 주먹을 들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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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차 안에서 참을 운전자 대한민국에 없습니다. 일단 차에서 내려서 시시비비 가려야 합니다. 씩씩거리면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저를 붙잡습니다. 옆을 보니 아내가 말을 잇지 못하며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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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깔깔깔깔... 형.."
"뭐야 저거 아는 놈이야?"
"에구 깔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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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지금 이 판국에 웃음이 나오니.... 니가 웃건 말건 난 저 새끼랑 얘기 좀 해야겠다. 하고는 거칠게 사이드 잡아당긴 후 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그러자 앞의 운전자도 문을 왈칵 열어제치더군요. 생기긴 참 더럽게 생긴 놈 같습니다. 어이.. 당신 하면서 삿대질을 하려는 순간, 저는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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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건...... 대형 거울이었습니다. 좁은 주차장 입구의 시야를 넓게 해 주기 위해 갖다놓은 아주아주 큰 거울이었습니다. 그 거울에는 처음에는 씨근거리는 콧김 내뿜으며 차에서 내렸다가 대체 이 망신을 어떻게 모면하면 좋을까 고민에 빠진 리정혁 대위 닮은 남자가 또렷하게 비쳐지고 있더군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제일 재밌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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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더럽게 생긴 넘이 순식간에 리정혁 대위 닮은 사람이 됐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