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오늘부터는 신두팔촉에 갔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신두팔촉은 카트만두 북동쪽에 있는 넓은 산간 지역의 이름입니다. 인구 대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저는 신두팔촉에 두번 갔었습니다. 순간순간 기자의 정체성과 한 사람의 감수성 사이에서 갈등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신두팔촉 이야기는 2회 이상 이어질 예정입니다. 바로 써내려가겠습니다.
나는 신두팔촉에서 성한 집을 한 채도 보지 못했다.
도착한 첫날 참상을 스케치했지만 다음날 쓰지 못한 이유는 신두팔촉(신두파초크)으로 가는 기아대책 구호단 일행을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 써도 크게 상관없는 스케치보다는 당장 일어난 상황을 써서 하루를 버티는 편이 여러모로 나았다.
출발 전날 밤 브리핑에서 네팔에 살고 있는 문 선교사가 신두팔촉의 피해상황을 브리핑했다. 2015년 4월 29일 밤까지 1300여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인구는 카트만두의 10분의 1도 안되는 30여만 명. 나중에 집계된 걸 보니 당시 지진 사망자 중 40%가 신두팔촉에서 숨진 것으로 나왔다. 몇 시간 전 신두팔촉에 다녀왔다는 CBS 후배를 만났는데 흙덩어리가 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카트만두와 신두팔촉은 직선거리로 약 25km 밖에 안 떨어져 있었지만 그 많은 산을 뚫어 터널을 낼 기술이 없는 나라인지라, 산 허리를 빙빙 둘러서 길이 놓여 있었다. 그런 길마저 지진 피해로 상태가 온전치 않아, 차를 타고 서너 시간을 가야 했다.
우리는 몇 대의 4륜구동 SUV와 트럭을 나눠 타고 신두팔촉의 입구에 해당하는 시파갓 마을로 향했다. 카트만두의 도로엔 차선이 없었다. 카트만두를 벗어나자 비포장도로가 중간중간 나왔다. 길가에 포격을 맞은 듯 부서진 건물들이 지나갔다. 카트만두 외곽엔 벽돌을 굽는 가마를 낀 벽돌공장들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네팔에서 널리 쓰이는 건축재인 적벽돌은 흙으로 빚어 장작을 태우고 남은 열기로 굽는 방식이라 강도가 약했다. 부잣집을 제외하고 이런 벽돌로 만들어진 집들이 태반이라 지진에 속절없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카트만두에서 본 부서진 집들은 대부분 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비구비 길을 돌아 가는 중에 카트만두에서 신두팔촉으로 가는 차와 오토바이가 상당히 많아서 조금 놀랐다. 버스엔 사람들이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차선도 없는 도로에선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자주 일어났다. 사고가 났는지, 나자빠진 오토바이 옆에 사람이 드러누워 있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차는 부지런히 덜컹거리며 갈 길을 갔다. 산길 중턱에 무슨 카페 같은 게 있었다.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카페는 등산, 트래킹 하는 사람들을 보고 운영 중인 것 같았다. 기아대책 간사가 건네 준 네팔식 밀크티(였던 걸로 기억한다)를 받아 마셨다. 네팔에서 먹은 네팔음식 중에 그나마 먹을만 했다.
카페에서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한국 적십자 구호단장인지 뭔지 감투를 썼다. 그에 관한 평가는 생략하겠지만
그의 활동은 TV를 통해 드러났고 히말라야를 밥먹듯 간 만큼 유창한 네팔어를 구사했다. 그는 드러났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이 훨씬 컸다.
지진으로 굴러내려온 커다란 바위가 도로 중간에 놓인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산간 국가의 산간지역으로 들어섰다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시파갓 마을 입구 앞엔 시냇물인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인드라와띠 강의 지류라는 설명을 들었다. 입구 물가에 '갓'(힌두교식 장례를 치르는 강가의 화장터)이 마련돼 있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쓰려고 만든 것 같았다. 갓 위엔 타다 남은 숯 무더기가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가족의 장례를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을은 정말 신두팔촉으로 들어가는 길목 같은 위치에 있었는데, 그 길목이 다 무너져서 길이 끊어진 꼴이었다. 마을의 건물 1100채 중 215채가 무너졌다고 했다. 길가에 건물이 늘어선 형태였을 마을은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돌무더기였다. 그 돌무더기들을 밀어내고 길을 뚫기 위해 포크레인이 들어와 있었다. 결국 우린 그날 마을에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건장한 청년들로 구성된 마을 자경단 정도 되는 사람들과 선교사가 부지런히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결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구호단은 물자를 풀었다. 이날 라면 30개들이 500박스, 천막 250개를 나눠줬다.
기자들은 마을 곳곳을 다니며 참상을 스케치했다. 마을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어 놓고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마스크 없느냐" "그 쪽은 가면 안 된다 위쪽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고 이방인 기자를 챙겼다. 나는 데스크를 받기 전 기사에 이렇게 썼다.
포클레인은 이미 파헤쳐진 마을을 다시 헤집었다. 주민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더러는 뻥 뚫린 천장 밑에서, 난간이 떨어진 발코니에서 목을 길게 빼고 포클레인을 쳐다봤다. 포클레인이 무언가를 퍼 올릴 때마다 이들의 새카만 눈동자가 이를 좇았다.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집이 있던 자리엔 돌무더기만 남아 있었다. 아낙은 망연자실한 채 그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노인은 부러질 것 같은 농기구로 돌무더기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천진하게 뛰어다니다 덜 무너진 건물 근처에 갔다가 아버지에게 혼쭐이 났다. 가족들은 요리인지 곡식 한 줌인지 모를 식사를 마치고 아낙은 소똥무더기 옆 도랑이나 새어나온 논물에 설거지를 했다. (2신 기사 링크)
문 선교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식수였다. 심각한 수자원 부족 국가인 네팔에서 수인성 전염병 등으로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네팔에서 부족한 것이 물이 아니라 수자원이라고 설명한 데엔, 물은 많은데 쓸 수 있는 물이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기사에 썼듯 네팔 사람들은 어디 물이라도 고여 있으면 그걸로 그릇을 씻는 등 아무 물이나 막 썼다. 소가 옆에서 똥을 싸고 있는데 그 옆 논에서 물을 받아다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 문 선교사가 걱정하는 이유는 무너진 건물 속에 부패한 시신이 누워있는데 거기서 나온 물도 아래쪽으로 가면 다 섞여서 결국 누가 쓸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문 선교사의 괴로운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돌무더기 속에 시신이 누워있고 사람들은 들어갈 집도, 야생을 피할 곳도 없었다. 남의 집 살이를 하거나, 나눠준 천막에서 야영을 해야 했다. 복구작업은 진척이 없는데, 국제구조팀은 입구만 더듬다 카트만두로 돌아갔다. 신두팔촉 사람들은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다.
네팔을 나온 뒤 집계된 수치에 따르면 신두팔촉 인구의 60~70%가 지진 피해를 입었다. 이 지역 사망자는 3,107명으로 네팔 전체 지진 사망자의 40%에 달했다.
God help the people of Nepal and all the people in need.
Wonderful thing you doing @shiho.
Keep on writing.
Thank you I'll keep going. By the way can U read Korean language?
각종 악재를 이겨내고 쓰셨군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내용은 심각한 이야기지만요...
고맙습니다. 청와대의 오늘 자료공개 어떻게 보시는지 여쭙고싶네요
청와대 자료공개는 정국반전카드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네요. 왜 빨리 사과했는가를 생각해보니까요 ㅎㅎ
자료공개로 청와대는 당분간 정국의 주도권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청와대에 정치9단들이 모인거 같습니다. 야당들은 거의 청와대에 놀아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참고로 우병우 막내처제와 장시호는 베프입니다. 우병우가 처제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건 이 때문입니다.
오호 우병우 처제와 장시호가 베프인걸 언론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도 헷갈리네요.. 워낙 복잡해놔서..
ㅋㅋ 전 자료공개 했을때 겉으론 일때매 욕하면서 속으론 전율이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순간 아니겠습니까 ㅎㅎ
막내처제는 장시호의 아들인 장x과 동계영재스포츠센터 주최 스키대회에 자기 딸을 보냈어요. 놀랍게도 남편 이장x은 스키쪽과 연을 맺고 있습니다. Gs건설에 다니는 일개 사원이 말이죠. 그딸은 주니어주제에 업체 후원을 빡세게 받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에서도 인터뷰할만큼이요~
오오 이건 들춰봐야겠네요
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0790(딸 이X예 입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76&aid=0002667947(후원기업 베X숲) 참고로 베X숲은 일전에 에프씨비트웰브를 부도낸 경영자와 같은 경영진으로 추정됩니다. http://blog.naver.com/kyy8280/220019434421(이태원에 있는 대사관저를 우병우 처제부부가 인수하고 낸 기사입니다. 추적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국정농단은 한두군데에만 있는게 아니라 진짜 줄기처럼 뻗어있습니다. 한국문화콘텐츠거래소라는 곳도 수상하지요~
너무 안타깝네요.. ㅠㅜ 그와중에 기자들 챙겨주고.. 진짜 고생하셨겠어요. 몸도 몸이지만 기자로서의 사명과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꽤 부딪칠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 앞에서 자주 무너지곤 했어요. 연재 끝나고 아이들 사진 찍어놓은 것 올려볼게요.
가장 위험한 것이 음식도 아닌 물이라는 말을 예전부터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니 실감이 되면서 마음이 아프네요 ㅠㅠ
마음이 아픈 글이지만, 꾸준한 연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이제 연재가 중반을 넘어가네요. 끝까지 잘부탁드려요^^
물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네요;;;
글을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이 먹먹해져요ㅜ
늘 좋은 글 잘 보고 가요^^*
늘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ㅋ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보통의 참상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생략하신 내용은 안봐도 뭔가 느낌이 느껴지는 이야기네요. 그네들도 사정이 있었겠지만요.
거기서 활동상은 못봤지만 개인적인 기록에 논란이 많으니까요 ㅋㅋ
경험을 되집는 것도 큰 괴로움이겠습니다. 이 연재의 끝에서 기자님이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숙제를 던져주시네요. 마지막 회에 잘 써볼게요.^^
역시 물이 중요하네요.
맞아요. 근데 문화가 그렇게 자리잡혀서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요.
문명의 이기일까요? 선진국으로 갈수록 순수함은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년전에는 사람간의 정을 많이 따졌잖아요. 사실 저도 기자분들 몇분 알긴하는데 shiho님 덕분에 기자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 좋아졌어요~~ 사실 네팔 지진이 언제 발생했는지도 까마득하고 이렇게 피해가 심했는지도 몰랐는데 덕분에 반성하고 가네요.
흠 저를 알기 전에 기자 이미지가 안 좋았다면 일적으로 기자를 접하셨겠군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ㅜ
와,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신문기자시라길래, 사실 전달 위주의 딱딱한 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장감도 느껴지고,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움, 일부 인사들에 대한 약간의 불만도 느껴지고.
내용은 안타까운데, 기자님 필력 덕분에 전 편안히 앉아서 여행기 읽듯 읽고 있네요. 고맙고, 죄송합니다.
저도 독후감 잘 보고 있어요. 책 많이 읽고 싶은데 게을러서 그러질 못하네요. 그래도 딱딱하긴 하죠 ㅋㅋ
아 참 끔찍합니다.
가슴아프고요.....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어린애들 눈동자가 글에 겹쳐 보이네요....
아이들이 지금도 눈에 밟혀요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