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아닌 다른 작가가 썼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호탕한 전투장면 하나 없이 작은 성에 갇힌 왕과 신하들의 말장난과 처절하도록 비참한 민초들의 삶만 가지고 읽는 내내 1636년 병자년 남한산성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소설가의 재주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문체는 과장되지 않고 냉혹할 정도로 담담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만주에 흩어진 여진족의 여러 부족을 모아 1616년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워 임진왜란과 부패로 국력을 상실한 명나라를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친명배금의 외교정책으로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 강조하던 인조는 정묘호란의 교훈을 되살리지 못하고 제2차 침입(병자호란)을 받게 되는데 제대로 전투 한번 해보지 않고 강화도로 피난 가다 적군에 길이 막히자 급히 남한산성으로 가게 된다.
소설은 작은 성에 갇힌 왕과 신하, 자신의 운명을 운명에 맞길 수 밖에 없는 가련한 민초들의 47일간의 이야기이다. 비록 죽을지언정 굴욕적인 항복은 있을 수 없다는 척화파 김상헌과 살아야 왕권과 조정과 대의를 지킬 수 있다는 주화파 최명길, 이도 저도 아니고 눈치만 살피는 영의정 김류,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조, 몸서리치게 추운 겨울의 남한산성은 먹을 것도 땔감도 성을 지킬 군사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진 장수도 없어 보였다.
삶이 허무하고 답답하다. 탈피구가 없다. 애초에 12만 청병과 싸울 의사가 전혀 없는 신하가 오직 대의만 들먹이며 말로만 충절을 얘기하는 장면엔 구역질이 난다. 백성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위정자라면 대의보다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외교는 나라간의 예의가 아니라 한 나라의 존망이 달린 중요한 문제이다.
임진왜란 때와 같이 이순신, 권율 같은 장수들의 눈부신 활약도 보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의연히 목숨을 버린 의병들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번의 기백 있는 전투도 없이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만다.
"청병은 산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비록 세자와 수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청으로 잡혀갔으나 산성 안을 도륙내지 않고 그냥 물러갔다는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속에 삶이 있다.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과 죽음을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할 것인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할 것인가? 의를 세운다고 이을 버려야 할 것인가?
삶에 정답은 없다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무기력하고 패기도 없는 왕과 조종 신하를 모시고 살아가야 했던 조선의 민초들이 불쌍할 뿐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정치모리배들이 우리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두 눈 부릅뜨고 살펴 봐야 할 것이다.
말이 칼이 되어 자웅을 겨루는 듯한 전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어요.
예 감사합니다. 목숨이 백척간두에 처했는데도 말장난만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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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현재의 있었던 일이 미래에도 일어날거에요.
역사는 계속 반복되니깐요.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 정치인들이 정권잡는데만 골몰하여 인기영합 정책만 펼친다면 나라 망하는 건 금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