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섭 장군은 전투부대 파병을 하기전에 김성은 국방부 장관에게 한국군이 단독으로 작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한국군이 한지역을 맡아서 작전을 하면 굳이 미군에게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 것이다. 김성은 장관은 이훈섭 장군의 주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전투부대 파병을 앞두고 다시 미측과 협상을 했다. 미측은 자신들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가지겠다고 주장했다. 협상이 이루어졌다. 미측에서는 NATO에서 근무하던 쿡이란 이름의 대령이 대표로 참석했다. 미측은 지휘통일과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훈섭 장군은 끝까지 한국군이 한지역을 맡아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며칠간 협상이 계속되었으나 진척은 없었다. 사나흘째 되던 날에 쿡 대령이 짜증이 나는지 화를 내면서 가방을 싸서 그냥 나가버렸다. 미군 대령들은 한국군 장군보다 나이도 많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미군들이 한국군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월남에서는 한국군 장군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인지 화를 낸 것이었다. 그러자 이훈섭 장군은 “야 쿡 대령 당신 너자리도 돌아오지 못해 ?” 하고 하더니 회의도 끝나지 않았는데 대령이 장군에게 경례도 하지 않고 나가는게 어디있냐고 큰소리를 쳤다. 어떻게 대령이 장군에게 경례도 하지 않고 가는 그런 군대예절은 어디서 배웠냐고 질책했다. 나토에서 그렇게 배웠냐 ? 하면서 꾸짖었다. 그러자 쿡대령은 자신은 가는게 아니고 화장실에 간다고 둘러댔다. 그러자 이훈섭 장군은 “야 이새끼야 왜 거짓말을 하냐? 화장실 가는 놈이 무슨 가방을 가지고 가냐?”라고 하면서 크게 상소리를 했다. 쿡대령은 오늘 딴일도 있고 해서 가야 되겠다며 경례를 하고 가버렸다. 그자리에 있었던 미군 소령이 나중에 “그 한국 장군 대단하다”고 이야기 했다.
군수와 보급에 대해서는 미측과 협상이 끝났다. 미측이 모두 지원해주기로 했다. 작전지휘권만 합의가 되지 않았다. 당시 교섭의 총단장은 이세호 장군이었으나 작전지휘권관련 협상에 대해서는 관여를 하지 않았다. 이훈섭 장군은 미측에게 최후 통첩을 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으니 우리는 내일 오후 비행기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이다.
미측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주월미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한국군 협상 단장인 이세호 장군을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당시 통역관은 안대위로 나중에 철도청장까지 한 사람이었다. 이대용은 이세호 장군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를 조언했다. 한국군과 미군 그리고 월남군이 서로 협조기구를 만들어 작전을 수행하자고 하면 통역장교가 영어로 잘 이야기 할 것이라고 했다. 아침 9시 이대용과 이훈섭 장군이 이세호 장군을 수행해서 웨스트모어랜드 장군 사무실로 갔다. 그러나 미측에서는 웨스트모어랜드와 이세호 장군의 단독회담이라며 이대용과 이훈섭 장군의 배석을 거부했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이세호 장군에게 자신들의 방침을 잘 알테니 전작권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세호는 종이에 3개국 군이 서로 협조해서 작전을 하자고 이야기 했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이세호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합의했다. 그리하여 한국군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월남파병 당시 한국군의 단독작전수행에 대해서는 이세호 장군과 채명신 장군이 서로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이훈섭 장군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물론 이세호 장군이 웨스트모어랜드 장군과 최종협상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이훈섭 장군이었다. 그러나 이훈섭 장군이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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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어렸을때 한국에서 버스안 라디오에서 듣던 정치 드라마들이
셍각납니다 ㅎㅎ.
銃이 아니라 그저 숟가락만 들고 다니는 앙칼진 영혼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