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봄이 오다) 15 끝없은 패주길, 갈곳은 없어지고

in #leedaeyong6 years ago (edited)

이 포스트는 이대용 장군의 한국전쟁 참전기 국경선에 밤이 오다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김중사는 군복을 입고 전진을 돌파하기는 불가능하니 사복으로 갈아입고 아군에게 합류하자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군인이 총칼을 버리고 사복을 입는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총칼을 들고 군복을 입은채 뙤놈들하고 싸우다가 그놈들을 죽여버리고 운이 다하면 우리도 죽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복으로 갈아 입는다고 해서 적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사복을 입고 가다가 불의에 적을 만나면 무엇으로 대항을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그야 말로 개죽음이라는 것이다. 군인은 죽을 때 자기 몸값을 적이 치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대용의 말이 끝난후 병사들은 모두 다 같이 군인은 총칼을 메고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문제를 제기했던 김중사도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가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리저리 헤메이다가 산으로 기어올라갔다. 한시간즘 올라가니 산중턱에 화전민이 살고 있는 초가집이 두채가 있었다. 그 집에서 10분간 휴식을 명했다. 인원수를 확인해 보니 낙오자가 여럿이었다. 중대 선임장교 서소위가 보이지 않았다. 발이 퉁퉁부어서 구두를 못벗던 중대 통신하사, 지난번 경상도 문경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던 신중사, 지난 7월 함창지구에서 부상을 입었고 제3소대 선임하사관 김 중사, 세번이나 적탄에 맞은 일이 있던 중대 로켓포 사수 김중사, 제4소대 선임하사관 신중사, 한국전쟁 초기에 부상을 당했던 중대 전령 박 하사 듣등을 비롯하여 백전불굴의 용사 10여명이 낙오되었다. 낙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극도로 피로하고 절망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살겠다는 욕망보다는, 어차피 죽을 몸,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렸으면 하는 충동이 격렬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어제 아침에 북신현동 방면에서 중대 주력을 엄호하고 전사한 줄 알았던 제2소대장 김소위가 중대 선임하사관 김 상사와 더불어 20여명을 인솔하고 우리가 오기전 약 10시간 전에 이곳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이대용은 인원을 점검해보았다. 이대용에게 남은 병력은 제1중대원 21명, 제2중대 하사관 1명, 제4중대 하사관 1명, 제3중대 및 제12 중대 일등병 각 1명, 적십자 병원 간호원, 2명, 전 북한 인민군으로 귀순한 병사 2명, 한청원 2명을 포함하여 모두 30명이었다. 이대로 강행군을 계속하다가는 전원이 낙오할 것 같아, 초가집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집주인과 병사들을 보내 낙오병을 찿아 오라고 보냈다. 두차례에 걸친 수색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새벽 5시에 집주인이 지어주는 옥수수 밥을 먹었다. 주인에게 낙오병이 나중에 이곳을 지나가면 따뜻하게 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새벽 6시에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면서 잘 보이는 돌위에 혹시 뒤를 따라 올지도 모르는 중대원과 전령 박재현에게 남기는 메모를 쓰고 돌로 눌러 놓았다.

전령 박재현 하사는 이대용의 당번병이었다. 적과 싸울때는 이대용을 보호하고, 전투중 무전기 사용이 허용되지 않을 때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대대장과의 연락을 유지시켜주었다. 휴식때에는 식사를 받아 오고, 행군때에는 이대용의 모포를 지고 나디는 측근이자 고굉지신이었다. 박재현과 이대용은 전장터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같이 한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중공군이 있는 지역에 13명의 부하를 남겨놓고 돌리는 발길이 무거웠다. 하사관들은 산아래를 하염없이 바라 보고 있는 이대용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가는 곳 마다 중공군들이 깔려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중공군들이 내려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중공군을 피해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위에서 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 간호학생 정정훈이 군용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먼산을 내려다 보며 시퍼런 얼굴로 덜덜 떨고 있는 모양이 석양에 비치어 처량하게 보였다. 이대용은 입동이라서 이렇게 추운가 보다 라고 이야기 했다. 정정훈은 추워서 시퍼렇게 된 입술로 빙긋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2중대 하사관 김중사를 포함하여 5명의 첨병을 앞세우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길을 걷기 시작한지 3시간 만에 신작로를 건넜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5명의 수색병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캄캄한 밤이라 지척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적진의 한 가운데니 이들을 찾기 위해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대원은 겨우 25명이었다.

다시 산을 두시간 정도 올라가니 산위에 화전민 초가집 2채가 있었다. 주인은 서른살 될까 말까하는 젊은이지만 상당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틀전부터 회천방면에서 내려온 중공군들이 이틀 밤낮을 계속해서 수백필의 발을 끌고 덕천방면으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덕천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방향을 바꾸어 맹산으로 가기로 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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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만으로도 질릴만큼 힘든 강행군 이었네요...

피난길이 고난길의 연속이네요...
부디 더이상 낙오자없이 아군과 합류하기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