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 없는 글이 될 지 모르겠다. 오늘은 화요일. 25살에 대구에 사는 띠동갑 남편이 사는 고향으로 시집온지
3년째가 되어간다. 여느 부부들이 가벼운 다툼을 하듯 우리 부부에게도 3년이란 시간동안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툼이 지나간 후에는 언제나처럼 '미운 정'이란 게 우리 부부 사이에서 민들레 씨앗처럼 그 작은 존재감을
'뿜뿜'하고 있었나보다.
현재 28살이 된 나는 대구로 무슨 뜻을 이루겠다고 결혼이란 것을 그리 급하게 했는지 하는 생각을 요즘에 종종 하곤한다. 약 3년 간 빈 공간동안 내 전공이기도 했던 태권도쪽 일을 최근에 시작해서인지 약간은 낯설은 감이 있다. 오랜만에 시작해서 낯설은 것보다 나에게 상사라고 할 수 있는 '관장님'이라는 존재는 소통하기 위해 다가가기가 부담되는 직함이다.
어느 지역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을 다시 시작해도 소통하기 위해 사범이 먼저 관장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어린 애가 대학교 1학년이 된 대선배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거는 것만큼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가령 2월 20일에 일을 시작했다면 이번 3월 20일 제 날짜에 월급을 '잘 챙겨주세요'라고 말을 걸만큼 난 결코 외향적이지 않다.
내가 사범으로 일하는 <d태권도장>의 관장님은 69년 생인 우리 아빠와 비슷한 또래이다. 대구에서 태권도라는 한 가지 길을 깊이 파고든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인 관장님의 수업 방식은 대부분 이렇다.
"발을 찼으면 손도 자세 잘 잡아야지!"
발차기 시간에 발동작만 정확하게 따라해도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관장님의 무의식에는 다른 생각이
저장되어있나보다. '나라면 이렇게 할텐데'라는 나의 생각보다 관장님의 불도저같이 힘차게 밀고 나가는 그 방식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여학생이나 7살이 흥미를 갖고 수업에 참여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20세기였을 때의 아이들보다 현재 21세기의 아이들 모습을 비교해보면?
이전의 아이들은 비교적 순응적인 태도가 많았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아이들의 유전자는 더욱 똑똑한 DNA인자를 지니고 있어서인지 어른이 학습을 통해 습득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특징이 있다. 또 스스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정답'을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000요!'라는 식의 주장을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굽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어린 경우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 5시가 훌쩍 넘어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수업 시간 15분을 남겨두고 있을 무렵 나는 곧 4월에 단 심사를 보러가는 저학년 1명과 고학년 1명에게 품새를 지도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7살 j군이 태권도에 흥미보다 체육관에 보관된 커다란 탱탱볼을 말타기처럼 재미있게 타고 노는 모습을 눈으로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j군이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천진난만한 나이라는 것을 나는 한 번 더 이성적으로 떠올렸어야 했다.
내 무의식에는 어릴 적 아빠에게 혼났던 기억들이 많아 8살 미만 아이들이 물 마시다가 흘리는 작은 실수를 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크게 부풀어오르는 내 안의 '화'라는 감정때문에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내 감정에 신중하면 존중받은 내 감정은 잔잔한 파도처럼 가라앉게 될 것을... ㅜㅜ
오늘 태권도장에서 일을 한지 한달이 조금 지나갈 찰나에 약간 크다고 할 수 있는 사고를(?) 쳤다.
정수기에 물 마시는 줄 알았던 j군이 미술 시간처럼 종이컵에 물을 꽉 차게 따른 것도 모자라서 쓰레기통에 해맑게 웃으며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실수로 일어난 일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나는 그 아이보다 나에게 먼저
'물 흘린 건 2분이면 금방 닦을 수 있을 거야. 나야.'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타일렀어야 했다.
아쉽게도 내 상상과 달리 이미 분노로 이성이 날아간 내 입에서는 그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말과 함께 놀고 있던 탱탱볼도 다시 정리하겠다며 내 손으로 가져왔다. j군이 속상했을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렇다고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으면 갔지 건물 밖을 나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결국 수업이 끝난 뒤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던 j군은 운 좋게 저녁 시간에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관 아저씨에게 발견이 되어 집에 갈 수 있었단다.
아이의 별난 행동에 담이 작은 나의 새가슴은 놀랐지만 더 놀라서 쉽게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 있다. 감정이 화로 치닫았을 때의 내 모습이다. 내 몸이 조금이라도 감정에 의해 불편하면 내 미간은 좁아지고 웃고 있던 얼굴도 건조하게 굳기 시작한다. 수업을 마친 뒤 외부 상황은 관장님이 차량운행을 해야 하는 보호자여도, 태권도장 안에서는 사범님이 보호자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나의 모습을 요약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에 나조차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걸 느끼고 있다.
시원하게 터놓고 말하면, '융퉁성' 없는 사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무의식에 조약돌처럼 자잘한 집단 무의식을 해소할 때까지 감정을 통해 불쑥 불쑥 나오는 습관이 있다면
오늘처럼 얼른 발견하여 내 스스로를 더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싶다. 나야, '나만이 가는 길' 화이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