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번 여행] 배 고픈 나에게 큰 위안을 준 곳 "Cherry Hill"

in #tripsteem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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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추억은 썩 좋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춥고 배고픈 기억이 많다. 머나먼 타지에서 믿었던 한국사람에게 두 번의 사기를 당하고 외국에서는 절대 한국인을 믿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니 즐거움이 사라지고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굳은 결심과는 달리 외로웠다. ‘이게 고독이구나’라고 절실히 느낄만큼 철저하게 혼자였다. 내심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원했지만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가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지만 어떠한 도움도 요청할 수 없었다. 새장에서 탈출한 새처럼 도망치듯 떠나 왔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새장속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싫었다.

사실 그런 환경을 만든 것은 모두 나의 불찰이었다. 사전 계획과 별다른 준비없이 무작정 떠난 호주는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나름 궂은 아르바이트와 숙소생활을 해봐서 잘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큰 실수였다. 부족한 돈은 아무리 쪼개도 모자랐고, 끼니를 걱정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맬번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닿았다. 주인이 배려해 주어서 한 방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니 렌트료를 반씩 부담하면 되고, 식비는 당분간 자신이 부담할테니 맬번으로 넘어 오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 당시 나에게 이보다 달콤한 피난처는 없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맬번으로 향했다.

맬번에 도착한 다음날, 친구는 나의 손을 이끌고 갈 곳이 있다고 했다. 맬번에서 꽤 큰 규모의 체리밭인 "Cherry Hill". 그때 당시 입장료가 7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작 7천원의 입장료조차 부담스러웠던 나. 솔직히 이런 비용도 아끼고 싶었다. "안가면 안돼?"라고 묻는 나에게 "한국에 있을 때 니가 나 먹여 살렸었잖어. 이건 내가 낼 거야"라며 앞장 서서 가던 친구의 뒷모습이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우리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싱싱하고 맛 좋은 체리를 한 바구니 가득 담은 것도 모자라, 잇몸병이 의심될 정도로 입 주변에 피칠(?)을 하며 먹었다. 내 생에 이렇게 맛있는 체리를, 이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은 적은 처음이었다.

체리 농장은 꽤나 넓어서 어느 곳으로 가도 체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체리나무 그늘은 시원한 안식처를 제공해줘서 먹다 지친 몸을 뉘이고 휴식을 취하기 안성맞춤이었다.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니 피크닉 차림으로 나와 돗자리를 펴고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이 상당 수 보였다. 이전 같았으면 그들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겠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체리 하나에 포만감을 느꼈고, 체리 하나에 위안을 얻었고, 체리 하나에 행복했다. 행복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아둥바둥 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날부로 나에게 체리는 하나의 과일이 아니라 호주 생활의 큰 전환점이 된 소중한 열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체리는 상당히 고가의 과일이다. 7달러로 배터지게 먹고도 한 바가지 싸들고 왔는데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기를 주저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Cherry Hill"이 생각난다. 가진 게 없는 나에게 큰 위안을 준 그곳이.


호주에서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그나마 웃다 만 얼굴로 찍은 것만 몇 장 남았을 뿐. 호주 여행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즐거웠던 추억이 남아 있는 사진이 있어 이렇게라도 글을 남겨 본다. 안녕, 나의 암울했던 20대 ^^


여행지 정보
●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주 멜버른



[멜번 여행] 배 고픈 나에게 큰 위안을 준 곳 "Cherry 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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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체리로 배 채우시던 이십대의 팥쥐님이세요? 훈남이시네요. ㅎㅎ

ㅎㅎ 저는 20대에 perth 밑에 시골에서 사과따고 있었는데.ㅋㅋ

왠지 팥쥐형 힘든모습이 얼글에 드러나보이는 것 같다.

미국도 체리는 비싼편이에요.ㅎㅎ

호주에서 믿을건 대만애들뿐임 ㅋㅋ 대만애들 천사야 천사

아이고 호주에서 그런일이 있었네요. 젊어서 힘든일 다 경험했으니 이젠 행복만 남아 있을 거예요..

저는 해보지 못했는데 워킹 홀리데이, 힘드셨다지만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체리를 서리해 온 팥쥐는
되팔기를 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했다...
끄읏-

20대 시절 여행중 멜번의 을씨년스런 날씨와 이국적인 풍경이 새록새록 기억에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