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오가다 눈길을 잡는 것이 있어 들려보니 참 좋은 동화 한편을 만났다. 안선모 작가의 작품인데 카페에도 몇군데 올려져 있고 해서 저자의 동의를 받은것은 아니나 여기서 올려도 될것 같아 올리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자의 동의를 얻어 동화 작품 전시회를 가져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인이 된 소년
안선모
“6개월이야, 6개월! 딱 한 학기라고.”
사정하는 듯 애원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자 나의 굳은 결심이 조금씩 풀어졌다. 죽어도 시골에는 안 내려가겠다는 결심 말이다.
“알았어요. 한번 참아볼게요.”
나는 부랴부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가져갈 게 너무 많다. 게임기도 가져가야 하고, 휴대 전화도 챙겨야 하고, 만화책도 챙겨가야 한다. 그러다 문득 텔레비전에 눈길이 머물렀다.
‘설마 텔레비전이 없는 건 아니겠지⋯⋯.’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엄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시골이라도 있을 건 다 있어.”
“참! 약도 챙겨야지.”
엄마가 병원에 가서 미리 지어온 약 봉투를 내밀었다.
“어휴, 지겨워.”
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약이라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
“약 잘 챙겨서 먹고, 피부가 가렵다 싶으면 연고를 얼른 발라야 해. 그건 잘 알고 있지?”
“엄마, 시골에도 병원은 있겠지요?”
"그럼! 읍에 나가면 큰 병원도 있어.”
엄마는 아무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나는 통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곧 그곳이 좋아질 거야.”
나는 절대로 그럴 리 없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득 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났다. 내가 시골에서 가장 불편 했던 것은 몸을 씻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골에는 내가 싫어하는 모기와 징그러운 벌레들이 너무 많았다. 그뿐이 아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도시처럼 불빛이 많지 않아서 사방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외할머니와 6개월을 지낸다고?
그렇지만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나의 아토피 때문에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온갖 좋은 약이란 약은 구해 주시고, 아토피에 좋다는 환경을 만들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는데도 그 괴물 같은 녀석은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래서 결국 엄마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치료법이 외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에 머무는 것이었나 보다.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록 불편한 일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아토피 때문에 고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6개월만 참으면 아토피가 사라질까?’
‘아니야 그렇게 쉽게 치료될 리가 없지. 고생만 하고 돌아오는 건 아닐까?’
‘그래, 이번 한번만 참아보다….’
엄마에 이끌려 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나는 머릿속으로 아토피와 시골에서의 불편함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시골로 가는 길은 온통 초록 물결로 출렁거렸다. 창밖으로 바람결에 흔들리는 초록 잎이 무척이나 싱그럽게 느껴졌다.
“찬호야, 저게 뭔지 아니?”
엄마의 말에 나는 무심히 창 밖을 보았다.
“저게 바로 보리야, 보리.”
그러면서 엄마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추네.”
엄마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심드렁하게 다시 창 밖을 보았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엄마는 저런 게 뭐가 좋다고 흥분을 하는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시골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엄마는 나를 시골에 내려놓고 엄마는 오던 길을 되짚어 올라갔다.
“어머니, 우리 찬호 잘 부탁해요. 어머니만 믿어요.”
떠나는 자동차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괜스레 눈물이 북받쳐 올라 눈가가 촉촉해졌다.
“찬호야, 얼른 들어와라. 할미가 부침개 해 놨다.”
나는 얼른 눈가를 문지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외할머니는 시골에서 오랫동안 혼자 사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랑 이모들이 모시고 가려 했지만 외할머니는 싫다고 하셨단다. 이런 시골이 뭐가 좋을까? 시골에서 쓸쓸히 혼자 사시는 외할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
“찬호야, 얼른 올라와라. 식으면 맛없다.”
마루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 부침개가 놓여 있었다.
“오다가 뭘 먹어서 지금 생각이 없는데요.”
내 말에 외할머니는 단박에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조금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얼른 마루에 올라앉아 부침개 한 움큼을 떼어 내어 입에 넣었다. 그제야 할머니 표정이 환해졌다.
“건넌방 다 치워놓았다. 혼자 자는 거 무서우면 할미 방에서 같이 자고.”
할머니는 나를 아직도 한참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혼자 자는 걸 무서워하는 나이가 지난 지가 언제인데.
부침개를 먹고 나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6개월 동안 내가 쓸 방이었다. 자그마한 방에 앉은뱅이책상 하나만 덜렁 놓여 있었다. 게임기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다지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휴대 전화도 소용이 없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바빠서 오랫동안 통화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휴, 여기서 어떻게 여섯 달을 견디지?”
할머니 방에 작은 텔레비전이 한 대 있기는 했다.
“할머니, 여기 텔레비전은 잘 나와요?”
“안테나를 손 봐야 할 텐데. 그래, 마침 잘 됐다. 김씨한테 가서 안테나 좀 봐달라고 하면 되겠구먼.”
할머니는 소쿠리에 인절미를 주섬주섬 담더니 산기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산 입구에 가면 작은집이 하나 있어. 이것을 가져다 드리고 할미가 안테나 좀 손봐달라고 했다고 말씀 드려라.”
나는 할머니가 가리킨 산을 바라보았다. 제법 높은 산이었다. 그 산기슭에 누가 산다는 걸까? 저기 산다는 아저씨가 안테나를 손봐주면 텔레비전은 볼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가 들려준 떡 소쿠리를 들고 주춤주춤 길을 나섰다.
시골 냄새가 풍겼다. 쇠똥인지 두엄인지 알 수 없는 냄새에 나는 코를 싸 쥐고 투덜투덜 볼멘 소리를 내며 걸었다.
“시골에서는 꼭 이런 냄새가 나더라. 퀴퀴한 냄새.”
집 뒤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어갔다.
“어디 집이 있다는 거지?”
한참을 걸었는데도 집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저만치 작은 집이 보였다.
“어, 저기 저 집인가?”
쓰러져 가는 작은 오두막 굴뚝에서 연기가 폴폴 나왔다.
“마음의 오두막?”
나는 집 앞마당에 꽂혀있는 팻말에 적힌 글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마음의 오두막이라?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꽉꽉꽉, 꽥꽥꽥.”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어디선가 커다란 거위 두 마리가 바람처럼 나타나 내 허벅지를 마구 쪼아댔다.
“아이쿠, 사람 살려.”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이리저리 거위를 피해 달아났다. 거위는 뒤뚱거리면서도 계속 쫓아왔다.
“누구 없어요? 누구 없어요?”
“꼬꼬댁! 꼬꼬, 꼬꼬댁! 꼬꼬.”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닭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다가왔다.
“저, 저리 가! 가란 말이야!”
나는 마당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거위들과 닭을 향해 마구 소리를 쳤다.
“누가 오셨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저씨가 집안에서 나와 나를 바라보았다.
“좀 말려주세요, 예?”
“꽉꽉아, 꽥꽥아, 꼬꼬야. 손님대접을 그렇게 하면 되겠냐?”
그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거위와 닭이 순간 조용해졌다.
“얘, 이것 좀 보렴. 오목눈이가 알을 낳았단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손바닥을 조심스레 펼쳐 작은 알을 보여주었다.
“오목눈이가 뭐예요?”
숨을 고르며 묻는 말에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보니 너 서울뜨기구나.”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서울뜨기라는 말이 이렇게 듣기 싫을 줄이야.
화가 나서 말없이 떡 소쿠리를 건네자 털보 아저씨가 또 웃었다.
“소쿠리를 보니 빨간 기와집에서 온 손님이구나.”
“자, 네가 이 알을 저기 새집에 넣어주고 오렴.”
신기하게도 오목눈이는 우체통 속에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건네준 새알을 들고 조심스레 새집으로 다가갔다.
“둥지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른 알들도 있을 게다.”
나는 우체통 안에 놓인 작은 둥지 안에 새알을 조심스럽게 놓았다. 둥지 안에는 푸르스름한 새알이 네 개나 더 있었다.
어느 새 어미인 듯한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주위를 돌며 휘휘 날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 살포시 앉는다.
“못 보던 사람이 나타나서 경계를 하는 거야. 제 알 꺼내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겠니?”
아저씨가 활짝 웃으며 오목눈이를 바라보았다.
‘아, 저게 바로 오목눈이구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작은 새를 바라보았다.
“만나서 반갑다. 우리 각자 소개를 해 볼까?”
털보 아저씨가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뜻인가 보다.
내가 쭈뼛서리며 손을 내밀자, 아저씨는 내 손을 덥석 잡아 쥐고는 사정없이 흔들었다.
“아야! 아파요.”
“허허, 사내 녀석이 엄살은?”
‘엄살이 아니라고요. 진짜 아프단 말이에요.’
나는 속으로 중얼대며 아픈 손을 호호 불었다.
“난 자연이 좋아 산속에 살고 있지. 농사도 짓고 때론 시도 쓴단다.”
‘시라고? 시는 시인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피식 웃었다.
아저씨는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얘야, 세상 모든 것은 시의 글감이 될 수 있단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소리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과 눈이 필요하단다.”
나는 털이 얼굴의 절반을 덮은 아저씨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시를 쓸 것 같지 않은 얼굴이었다. 차라리 산적이라고 하지. 그러면 믿어줄 텐데.
“하하하, 내가 따뜻한 마음과 눈을 가졌냐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는 있지.”
“자, 심부름 온 값이다.”
그러면서 아저씨가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내 첫 번째 시집이지. 보잘것없는 시인이 쓴 첫 번째 시집.”
나는 말없이 아저씨가 건네준 책을 바라보았다. 손바닥보다 약간 크고 손바닥 두께만큼 얇은 시집이었다.
“이제야 물어보는구나. 네 이름이 뭐니?”
“저요? 제 이름은 민찬호예요. 빨간 기와집 할머니 외손자고요. 여기에 오랫동안 있을 건 아녜요. 딱 6개월만 있다 갈 거예요.”
“6개월이라? 그것 참 섭섭한데? 그렇게 짧게 있을 거라니.”
아저씨의 말에 내가 입을 쑥 내밀며 말했다.
“6개월이 짧다고요? 저에게 6년이나 마찬가지인데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안테나에 대한 이야기는 잊은 채 부리나케 할머니 집 쪽을 향해 달렸다.
“쳇, 저런 아저씨가 시인이라면 나도 금방 시인이 되겠다. 시인은 뭐 아무나 되나?”
나는 아저씨가 준 시집을 마루에 탁 소리 나게 던졌다.
외할머니는 그새 또 밭에 나가신 모양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잠시도 쉬는 걸 보지 못했다. 갑자기 땅을 밟고 살아야 건강하다는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와, 앞으로 무지하게 심심하겠다.”
나는 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문득 파란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와, 멋지다. 하늘이 꼭 바다 같네. 저 구름은 멋진 돛단배 같고.”
이렇게 하늘을 본 게 얼마 만이던가. 도시에서는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 하늘을 올려다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나는 외할머니 댁을 돌아보기로 했다. 비록 오래 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건넌방 옆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 안에는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다. 부엌 옆에는 다시 작은 방이 딸려 있다. 나는 컴컴한 방을 흘깃 들여다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당에는 꽃밭과 우물이 있고, 뒷마당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다. 작은 싸리대문을 나서면 텃밭이 줄줄이 딸려 있다.
문득 어렸을 적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엄마랑 같이 외할머니 댁에 자주 온 것 같다. 요즘은 가끔 할머니가 올라오시기 때문에 할머니 댁을 올 기회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녁을 먹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자, 할머니가 웃으며 밖을 가리켰다.
“화장실이 밖에 있다고요?”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낮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 마당 한쪽이대 볼일을 보았는데 정말 화장실이 집 안에 없을 줄이야. 그렇다면 밤중에 급한 볼일이 있을 때마다 밖에 나가야 한다고? 여긴 시골이라 정말 깜깜한데. 그리고 혹시 산짐승이 있을지도 몰라.
“이 녀석아, 사내 녀석이 뭘 그리 놀라? 밤중에 급하면 이걸 쓰면 되지.”
할머니가 웃으며 요강을 내밀었다.
“어떻게 거기다 볼일을 봐요. 냄새 나게.”
나는 인상을 쓰며 할머니가 주신 요강을 도로 내밀었다.
‘그래, 6개월만 참자. 6개월!’
아침이 되었다. 아침상을 보니 영 입맛이 없었다.
“할머니, 소시지 같은 건 없어요? 시골사람들은 소시지 안 먹나요?”
“그깟 걸 뭐 하러 돈 주고 사먹니? 내 이따 저녁 때 맛있는 거 해 줄 테니 어서 먹어라.”
나는 할 수 없이 맨밥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할머니가 만든 반찬은 죄다 입에 맞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과자라도 많이 사올걸.’
처음 학교 가는 날이다. 나는 투덜투덜 학교로 향했다. 할머니가 데려다 준다고 하는 걸 간신히 말리고 혼자 가기로 했다.
‘그래도 곧 중학교에 들어가는 6학년인데…….’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운동장은 좀 넓은 편이었지만 학생은 전교생을 모두 합쳐도 30명이 채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두 학년이 한 교실에서 모여 함께 공부했다.
“민찬호, 시골에서 사는 거 처음이지? 처음엔 힘들겠지만 차차 지내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잘 지내보자.”
짝이 된 연수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이들 중에서 그래도 연수라는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뼛주뼛 앉아 있는 나에게 먼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는 것이 내심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찬호야, 너 수업부 끝나고 집에 가면 뭐 하니?”
연수 말에 나는 우물쭈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이곳이 도시라면 나는 당연히 학원에 간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니, 도시에서는 아예 그런 질문을 하는 아이도 없을 것이다. 모두 정해진 시간표대로 학원에 가기 때문이다.
“난, 털보 아저씨네 가서 시 공부 하는데.”
연수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시 공부? 그 아저씨한테?”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응, 그 아저씨 굉장히 유명한 시인이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왜 시골에서 사셔?”
내 말에 연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어디 살아야 하는데? 유명한 사람은 시골 살면 안 되니?”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차림새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내 말에 연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난, 네가 조금은 다를 거라고 기대했는데. 역시 너도 다른 도시 아이들하고 생각하는 게 똑같구나.”
그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뭔지 모르지만 크게 잘못한 느낌이 들었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자연을 소재로 한 멋진 시가 나온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니?”
“그, 글쎄⋯⋯.”
“이런 게 모두 도시 사람들이 갖는 자만심이야. 너도 마찬가지고.”
연수가 차갑게 고개를 홱 돌렸다.
방과 후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연수의 차가운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에이, 괜히 쓸데없는 말을 괜히 해서.’
“앗, 이게 뭐야?”
생각지도 않게 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엄마가 우산 가지고 교문 앞에 서 있었는데.’
빗속을 뛰니까 평소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엄마의 사랑이 문득 느껴지면서 괜히 서글퍼졌다.
“할머니!”
할머니는 집에 안 계셨다. 아마도 이웃집에 가셨나 보다.
엄마 때문일까? 아니면 연수 때문일까? 왠지 마음이 울적하다. 나는 마루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젖은 옷 때문에 몸이 으슬으슬 추워졌다. 베개가 될만한 것을 찾으려고 손을 뻗었다. 손에 뭔가 걸렸다.
“아, 그때 받았던 게 여기 있었네.”
털보 아저씨가 준 시집이었다
풀을 뽑으며
어느 날
풀잎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가냘프게 떨고 있는
풀잎의 신음을 들었다.
“미안해. 허락 없이 뽑아내서.”
“미안해, 허락 없이 여기 살아서.”
바람이 실어 나르는 푸른 속삭임
우리 모두 어우렁더우렁 함께 살면 좋을 텐데.
우리 모두 올망졸망 함께 숨 쉬면 좋을 텐데.
풀 뽑는 날이면
땅을 밟고 있는 두 발이 부끄러워진다.
“바람이 실어 나르는 푸른 속삭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를 읽었다. 동화는 많이 읽어 보았지만 시를 읽은 적은 드물어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의 연과 11행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밖에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시에 대해 공부해 둘걸.”
나는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시집을 다시 펼쳐 보았다. 자세히 보니 털보아저씨는 자신이 쓴 시 마다 친절하게 해설을 붙여놓았다.
농부가 되어 살면 어쩔 수 없이 풀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식물과 사람이 서로 이웃이 되어 알콩달콩 살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풀을 뽑지 않으면 애써 심어놓은 작물들을 모두 망치게 되니까요.
어느 날 문득 풀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원래 주인은 저 풀들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풀과 함께 사이 좋게 살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졌지요.
나는 털보 아저씨의 마음을 상상하며 시를 다시 읽었다.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이 조금씩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풀을 뽑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 뽑힌 풀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모습, 그 풀들을 내려다보며 슬픈 표정으로 서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한번 시를 써볼까?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소설보다 짧은 글 정도라는 것 밖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려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써 보아도 시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비가 그쳤나 보다.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싸리문 쪽에서 할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찬호야, 할미가 맛있는 고기를 갖고 왔다.”
고기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여 후다닥 달려 나갔다.
할머니는 들고 온 봉지를 상 위에 풀어 놓았다. 나는 젓가락을 찾아 들고 와서 상머리에 앉았다.
“찬호야, 이거 좀 먹어봐라. 건넛마을에서 돼지 잡았다고 해서 다녀오는 길이란다.”
돼지고기라는 소리에 나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안 먹는데?”
“아토피 때문에 아무 거나 먹으면 안 돼요. 특히 기름기 있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요.”
그 말에 할머니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아무 거나 잘 먹으면 그 놈의 아토파도 다 이겨낼 수 있는 게야.”
“아토파가 아니고, 아토피예요.”
나는 시무룩해져서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 저녁도 맛있는 것 먹기는 틀렸구나.’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기 위해 앉은뱅이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전깃불이 팍! 소리를 내며 꺼졌다.
“할머니, 불 나갔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전기가 나갔구먼. 얘야, 부엌 옆 쪽방에 초가 있으니 찾아보려무나
내가 이곳에 온 첫날에 지나쳤던 그 방이다. 방 안은 너무나 컴컴해서 초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달빛이 이렇게 밝은 것이었던가…….
나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하늘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달이다!”
시골에서 본 달은 도시에서 본 달과 너무나 달랐다. 더 멋있고, 더 환하고, 더 아름다웠다.
나는 공책을 꺼내 떠오르는 생각들을 얼른 휘갈겨 썼다. 지금 써놓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흠, 이 정도면 괜찮은 걸.”
나는 어둠 속에서 휘갈겨 쓴 시를 들여다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를 읽지도 않던 내가 시를 쓰게 되다니. 스스로가 대견하게 여겨졌다. 내친김에 다른 시를 써보려고 했으니 단어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시를 쓴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인가 보다.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싸고 있는데 배가 살살 아팠다. 덥다고 아이스크림을 서너 개 먹어서 그런가 보다.
“연수야, 내 가방 좀 우리 집까지 들어 줄래?.”
이마에서 자꾸만 식은땀이 흘렀다.
“너 정말 많이 아프구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마루에 고꾸라졌다.
“배가 너무 아파. 빨리 의사 좀 불러다 줘.”
“그래, 알았어. 잠깐 기다려.”
연수가 달려 나가더니 잠시 후 털보아저씨와 함께 왔다.
“아저씨가 의사라고요? 면허증 있어요? 있으면 빨리 보여주세요.”
내 말에 털보 아저씨가 껄껄 웃었다.
“면허증 없는 돌팔이 의사란다.”
그러면서 털보 아저씨는 나를 똑바로 눕히고 배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보았다.
“흠, 다행히 충수염은 아니다. 연수야, 찬호 방에 불 좀 넣어줄래? 배 아플 때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해.”
“예, 알았어요.”
연수가 잰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자, 이것 좀 마셔 봐.”
털보 아저씨가 나를 일으키더니 뭔가 가득 들어있는 사발을 입에다 댔다.
“그게 뭔데요?”
“묻지 말고 마시기나 해. 마시면 배 아픈 게 싹 나을 거야.”
연수 말에 나는 아저씨가 내민 사발을 빼앗듯이 가져와 벌컥벌컥 마셨다.
“으윽, 쓰다.”
“몸에 좋은 건 다 쓰단다.”
“근데 제가 마신 게 뭐죠?”
“응, 질경이 뿌리 말린 것.”
“질경이요? 질경이라면 마당에 있는 그 질긴 풀?”
“그래, 맞아.”
순간 나는 속이 메슥거렸다. 하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용을 써서 그런지 몸이 무척 피곤했다. 나는 눈을 스르르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눈을 떠 보니 아저씨가 뭔가를 보고 있었다.
“어, 그건 내 공책인데.”
내가 달라고 손을 내밀자, 아저씨가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불평쟁이 시인님.”
아저씨는 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찬호야, 너는 내가 예전에 말한 시인의 눈을 가지고 있구나.”
털보 아저씨에게 칭찬을 받으니 무척 부끄러웠다. 여태까지 글을 써서 칭찬을 받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보고 시인이라고? 말도 안 돼.’
다만 이전과 변한 게 있다면 아저씨가 준 시집을 읽으며 주위의 모든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마음으로 사물의 심정을 상상하여 글을 썼다는 것 정도이다.
우르릉 쾅쾅.
여름이 다가오면서 비가 오는 날이 많아졌다. 밤새도록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졌다. 할머니는 밤새 논이 물에 잠길까 봐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이 말짱하게 개었다.
논에 나갔다 오신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논도 밭도 다 멀쩡하더라.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말이야.”
그때 갑자기 털보 아저씨의 애타는 음성이 들려왔다.
“꽉꽉아, 꽉꽉아. 꽥꽥아, 꽥꽥아.”
“앗, 아저씨네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나는 화닥닥 뛰어나갔다. 아저씨네 집은 계곡과 맞닿아 있어서 비가 많이 올 때면 물이 불어나 위험할 수도 있었다.
아저씨를 만나니 역시나 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냇물이 불어 거위 꽉꽉이와 꽥꽥이가 떠내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와 함께 물길을 따라 거위를 찾으러 나섰다. 밤새 내린 비로 시뻘건 냇물은 출렁출렁 넘칠 듯 위태로웠다. 결국 냇물을 따라 읍내까지 가 보아도 꽉꽉이와 꽥꽥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 그래도 다행이야. 둘이 함께 떠내려갔으니까.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겠지.”
“예, 맞아요. 두 녀석은 여행을 떠난 거예요. 더 넓은 세상으로요.”
“그래, 헤엄을 칠 줄 아니까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을 거야. 어딘가에 가서 잘 살면 되지 뭐.”
아저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저씨, 많이 속상하시죠?”
“이런 일쯤이야 뭐. 세상에는 이보다 더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곳곳에서 많이 일어나는데 뭐.”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의 얼굴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털보 아저씨 집에 찾아갔던 날이 떠올랐다. 문득 어디선가 거위들이 나타나 ‘꽉꽉! 꽥꽥!’히면 내 허벅지를 쪼아 댈 것만 같았다. 나도 이렇게 속상한데 아저씨의 마음은 어떨까.
“아저씨, 제가 거위를 주인공으로 한 시를 써 드릴게요.”
날이 점점 더워졌다. 아토피 환자들에게 여름은 괴로운 계절이다. 땀이 잘 나는 팔 안쪽이나 목덜미 쪽이 가렵기 시작하면 피가 날 때까지 긁어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생각해 보니 여기에 온 후로 한 번도 가렵지 않았어.”
할머니 방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빨갛게 돋아나던 팔뚝이며 목덜미가 멀쩡했다. 아니, 햇볕에 그을려 매끈거리기까지 했다.
“와, 신기하다. 할머니! 아토피가 없어졌나 봐요.”
“그게 뭐가 신기해? 내가 그랬지. 땅을 밟고 살면 건강해진다고.”
“예, 할머니 말이 맞아요. 할머니 말이 모두 맞다고요!”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또 어디 가냐? 밥 먹을 때 다 되었는데.”
“털보 아저씨네 잠깐 갔다 올게요.”
나는 털보 아저씨네 집을 향해 달리는 길에 나도 모르게 엄마가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추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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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동화네요. 시골에 와서 자연속에서 아토피도 치유하고...희망을 줍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