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 김훈

in #booksteem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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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마동수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만주 일대를 떠돌며 파란의 세월을 보낸다. 혁명을 꿈꾸던 한춘파를 동지로 두고 그를 돕다가 해방 이후 조국으로 돌아온 마동수는, 한국전쟁 발발 후 피난길에서 남편과 젖먹이 딸을 잃고 미군들의 군복을 세탁하는 일을 받아 하던 이도순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를 낳는다. 만주와 상해를 떠돌며, 마치 세상 저 끝을 바라보다 건너가지 못하고 마지못해 돌아오듯 삶을 사는 마동수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어떤 책임도 없이 밖으로 떠돌다, 이도순은 물론 두 아들에게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의 희미한 고리처럼 드리워진 채로 죽는다. 남자에게 있어 아버지의 의미란, 살아서 든든한 산같은 존재든지, 없어도 될 성가신 장애물 이든지, 아예 없어서 빈 곳이든지, 죽어서 가슴 속에 아른거리며 남은 그리움 이기도 해왔다. 마동수는 세상에 활착하지 못하고 거점없이 떠돌며 다른 것을 찾아 끄달리다가, 아버지라는 그 어떤 의미도 두 아들에게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장남 마장세는 베트남 전쟁 참전 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베트남에서 제대했다. 전지에서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고, 군에서 만난 사람을 따라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사업을 성공시키며 가족과는 인연을 끊고 살고자 하지만, 출생부터 장성할 때까지 지울 수 없었던 핏줄이라는 인연은, 아버지는 물론이고 동생 마차세와 똑닯은 외모 만큼이나 완벽하고 질기게 그를 가족안에 머물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마장세는 동생에게 “니가 힘들겠구나”한다. 얼마간의 돈을 보내며 마음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힘듦을 객관화해서 밀쳐내고 거기에 간여하지 않으며” 그 질긴 인연의 잔여물같이 남아 있으려는 것들을 밀어냈다.

차남 마차세는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아버지의 죽음과 형 마장세와의 관계, 어머니 이도순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힘겹고 비루하고 적막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1920년부터 1980년까지 대한민국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소설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인생에 관여한다. 한국전쟁 직후 판자촌에서 형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고, 왜 매번 집을 나가는지, 아니 왜 집으로 가끔 돌아오는지 모를, 목울대가 아가미를 연상시키는 아버지를 따라 이발소에 가고, 고통스런 인생을 오롯이 토해내는 비참한 어머니의 인생을 힘겹게 받치고 성장한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지 않는 형을 기억하고, 아내 박상희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낸다.

마차세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일상의 밥먹기나 겨울의 추위나 음식냄새의 끄트머리에서 살아났다.” 아내 박상희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질감이 마차세의 마음 속에 쟁여지기를 바랬다.” 일상 속에서 그 인생의 빈 곳으로 자리잡은 무거운 허상, 아버지라는 존재의 지울 수 없는 쓸쓸함에 끊임없이 꺼둘리는 남편이, 그저 사소하지만 현실이란 거점에 정착하고 살아가기를 꿈꿨다. 그림을 전공한 박상희는 그림을 그리듯이 세상과 사물을, 사람을 더듬고, 마치 빈 종이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생각하고 행동하며, 마차세가 그 그림 속에서 평범한 요소로 작용하기를 원했다.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박상희는 그 중심에 서서 가족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침잠하고 친절한 인물이다. 우울하다 못해 비참해지려고 할 때마다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격려하는 듯 하며, 제 남편을, 남편의 가족들을, 그 자신들조차 버리고 없는 연대감으로 끌어안는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 자들의 침묵과 냉소가 가득한 작품이다. 그러한 차가운 온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함 이었는지, 작가는 인물들을 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와 같이, 성씨까지 붙여서 지칭한다. 철저하게 객관화 된 인물을 그리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묘사보다는 서사가 강한 작품이다. 단 한 사람, 마차세의 딸 ‘누니’만 마누니로 지칭되지 않는 것이 재미있다. 눈이 많이 오는 날 태어나서 누니가 된 마차세의 딸은 어떤 모습일까. 양갈래 머리로 유치원에 가고, 아버지의 날 아빠 마차세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서 행사에 참여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귀신을 무서워 하는, 유일하게 마차세가 경험하는 평범함이다. 그래서 누니는 마누니가 아니라 그냥 누니였다.

@afinesword 님은 김훈의 작품을 필사했다고 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김훈의 [칼의노래]를 휴가 때 읽었다고 한다. 내가 따로 작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 않아도, 이미 김훈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게 존경받는 작가가 아닌가. 해방, 한국전쟁, 4.19, 5.16, 대통령 살해, 군부 쿠데타와 언론탄압, 유신정권... 그 모든 것을 겪으며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모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승우의 글을 읽으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전해져 온다. 김훈의 글은, 쓸쓸하고 비참하고 남루하지만, 어떤 지점에 머물다가 다시 다른 지점으로 다다를 때의 피로함도 함께하지만, 어딘가 모를 곳에서의 위로가 전해진다. 그의 문장들은 때로는 몽환적이다. 심지어는 시적이다. 나는 시 보다는 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소설가보다 시인들에게 더한 경외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시인들은, 아무리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낼 줄 아는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이 무슨 무지의 산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 작가는 시인에 가까운 소설가이다. 시로써, 그 모든 문장을 완성하고, 하나의 장대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그는 위대하다.

이 작품의 제목이 왜 [공터에서]일까를 생각해봤다.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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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시느라 그동안 뜸하셨군요. ㅎㅎㅎ

아니요. 그동안 좀 아팠어요 마음이ㅠ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셔서 그런가 봅니다 ㅠㅠ 공허한 마음은 다시 돌려보내세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집에 김훈 작가 책이 서너개 되는거 같습니다 ㅎㅎ

얼른 집어서 읽으세요 ㅎㅎ

제목이 왜 공터일까요..

제 짧은 견해를 적으려다가 말았어요. 인생을 열심히 살고 살았는데 결국에 내가 서 있는 곳은 허무의 공간이라는 것이라는 그런 뜻이 아닐까 해요.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야말로 헛헛하답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통과해온 우리네 혹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네요...정말 벗어나고 싶은 굴레가 있어 도망가고 도망가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다람쥐 쳇바퀴... 잘 보고 갑니다.

개털님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저도 책지기님의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텅빈 것 처럼 공허하지만 또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어서 공터라고 했을려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모두가 열심히 살아낸 인생이 결국엔 남은거 없이 모두의 인생이 공허하다는 뜻도 있는 듯 해요...

헉 제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ㅋㅋ

음 저는 아직 못 읽은 작품이네요. 읽어보겠습니다.

필사하신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요 ㅎㅎ

김훈 소설은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고... ^^

저는 몇 안 읽었는데 좋더라구요

간만에 콜라보래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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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오티님!

제목이 왠지 끌립니다..그런데 왜 제목이 공터인지는 알수 없음이군요.....궁금..ㅎㅎ

재미있어요 아주아주 문장이 너무너무 아름답다는

오랜만에 오셨네요.. 암울한 시기는 우리 스팀잇도 비슷하네요..ㅠㅠ

그러네요ㅜ 엉망이군요

김훈작가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상하게 한 번 읽고 나면 온몸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힘들고 진이 빠지더라고요. 제가 읽기에는 어려워서 그런 건지. ㅠ

어떤 느낌인지 알것 같아요. 몸이 막 가라앉는 그런 느낌... ㅎㅎ

근 5년 사이, 아버지와의 관계, 아들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의 무거움을 느끼게 되고 생각이 많아졌어요. 2세 계획에도 영향을 끼쳤구요. 읽으면 눈물 날거 같은 책이네요..ㅎㅎ

달걀님 반가워요. 저도 읽는 내내 우리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그 무겁고 진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읽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