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유시민 - <나의 한국 현대사>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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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시민에게 항상 두 개의 감정을 갖는다(암호 화폐 토론 이후 감정은 세 개가 될 것 같다). 그는 1959년에 태어나 스무살 때 독재자의 죽음을 경험했고 뒤이어 나타난 독재자와 싸우는데 그 이십대 전부를 할애했다. 민주화는 1989년에 성공했지만 그의 승리는 2003년이 되서야 찾아온다. 나는 그와 함께 승리를 만끽했다.

유시민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중요 내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한미 FTA 체결에 핵심 역할을 한다. FTA같은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왜 진보 정권이 앞장서 체결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훗날 유시민은 어차피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기에 그 흐름 속에서 최대한 이득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당시의 FTA라고 변명한 바 있다. 나는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죽을 힘을 다해 손에 쥔 민주화, 독재의 후계자들과 변절자들의 협잡을 이겨내고 세운 진보 정권이라면, 또 한 번 죽을 힘을 다해 막아내야 했던 게 바로 FTA라고, 당시의 나는 생각했다. 이후 유시민은 통합진보당 사태와 일련의 정치적 시련을 겪은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다.

그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2014년 7월 유시민은 <나의 한국 현대사>를 들고 대중에게 돌아왔다. 작가이자 한 명의 평범한 시민으로. 이 책의 첫 장은 '같은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모든 벗에게'라고 시작한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이 책이 그의 벗 뿐만 아니라 그의 적들마저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잠시후 나는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그가 말한 '모든 벗'에는 이미 그의 적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는 결국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아니, 주관적이지 않고서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단순히 사실의 총합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는 사실의 폐부를 꾹, 찌르고 들어가는 날카로운 창이다. 그 창날에 꽂힌 일련의 사실들이 역사를 만든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객관적이냐 아니냐 묻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질문이다. '객관'대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단어는 '균형'이다.

이 책에서 그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p.11)

라고 썼다. 거짓말이다. 그는 번민하되 냉정을 잃지 않았고 자부하되 흥분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를 절대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바보 같은 정치인처럼 박정희 대통령을 자근자근 다진 뒤 물에 헹궈 다카키 마사오와 여성 편력으로 차려내지 않았다. 물론 그는 박정희가 아니라 전두환과 싸워온 사람이기에 상대적으로 그에게 관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 진보 세력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준 무조건적인 증오와 비난을 생각해 볼 때 박통에 대한 그의 인식은 충분히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는 보통 사람 노태우를 칭찬하고 영원한 박쥐 이인제 마저 재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뿐만 아니라 양극화와 고용 불안이(비록 김영삼 정권이 일으킨 IMF 탓이 크지만) 진보 정권 10년 동안 급격히 진행됐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악한 사람의 선한 면, 선한 사람의 악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번민을 낳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그 번민에 휘둘리지 않았다.

유시민은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다. 사실 이런 균형은 똑똑한 진보주의자들이 보여온 전형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인이었던 시절엔 그런 '이성적 태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그를 질타하는 사람도 많았다. 맞는 말이다. 옳게 살아가려는 의지, 흥분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힘만으로는 결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현실 정치는 똥통이며 이기기 위해선 온 몸에 똥이 묻는 걸 개의치 말아야 한다. 하지만 잊지 않으셨겠지? 유시민에겐 더 이상 승리해야 할 선거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이 달려온 격동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역사를 거꾸로 돌린 어리석은 국민에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들고 왔던 불꽃을 앞서가는 세대에 전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고보면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언제나 고군분투의 행진이었다. 유시민은 이제 묵묵히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그 대열의 끝에서 걷는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숨가쁘게 달려온" 그의 등을,

아무 말 없이 밀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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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좋죠. 이번 사태로 많이 인식이 바뀐 분들도 있겠지만요... 문재인과 유시민을 동일 선상에서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 좀 미묘합니다만...

그동안 사람들이 유시민 싸가지없다고 손가락질 하고 핍박하고 그랬던거 보면 참 신기하죠. 그런거보면 역시 대중매체의 힘이 세긴 센가봅니다. 썰전하나로 비호감이 호감이 됐으니까요. 인간의 간사함에 화가나지만 배워야 할 점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평소에 하는 말과 논리가 저와 거의 100% 똑같아서 늘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바로 유시민 작가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치인 후원까지 하게 했던 정치인이 바로 유시민 작가이기도 합니다.

최근 가상화폐 관련해서는 그의 의견이 꽤 많은 국민과 사뭇 달라서 빈축을 사기도 했지만 말이죠 ㅎㅎ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서 죽는게 일상이었던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시대에 자기를 연행해가는 경찰들에게 '잘 먹고 잘 살아라 전두환의 개들아'라며 호기롭게 외치던 청년이 지금은 사회에서 알아주는 석학이자 작가가 되었다니,

이 책 역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

이 책은 수 많은 유시민의 책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만합니다. 잡혀갈 당시의 영상들 보면 유시민 작가님 눈빛이 흉흉하거든요. 대비해보면 참 많은 게 느껴집니다.

하늘에서도 밀어주시겠죠. 저도 같이 밀어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유시민 화이팅!

대학 새내기때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은 후 주~욱 호감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20년이 지났음에도 유시민님은 별로 변한게 없어보여 더 좋습니다. 이 책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시민 작가님 많이 유해지셨어요 ㅋ 옛날에 비하면 정말. 예전에 출판단지 쪽에서 일할 때 만나서 사진 찍은 적이 있습니다. 가문의 영광!

유해지는거야 세월이 흐르며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자 받아들일만한 변화죠. ㅎㅎ @usimin 아이디가 준비되었다는 글을 봤는데, 어서 유시민님을 스티밋에 모셔야겠네요.

'객관'대신 '균형'이라는 말이 참 많이 와닿네요. 배울 점이 참 많은 지성인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시민 작가님 반만큼만 살아도 성공한 인생일거 같애요. 열심히 배워야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행보와 관계없이 저는 그의 문장을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글에 보팅하고 팔로우하고 갑니다!!

저는 그의 문장만큼 그의 삶도 사랑합니다. 본 받을만한 작가에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만 암호화폐 토론 이후 유시민에게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균형적인 감각을 갖고 계신분인지 판단이 서질 않더군요.. 해당 책은 제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진 후에 읽어야겠습니다. ㅎㅎ 팔로우 하고 갑니다~~

유시민 작가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북리뷰네요. 꼭 읽어봐야 겠어요.

옛날 책도 좋은데 이 책이 개인적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 열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끊임없이 역사를 보려한 점이(물론 본인이 그렇게 보는것이 불가능할거라고 미리 독자에게 경고를 해줬지만) 많은 공감을 산것 같아요. 한국이란 나라를 한발짝 밖에 내놓고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라 아주 재밌게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경찰에게 달려갈때 눈빛은 흉흉했고, 정치판에 있을때는 꽤나 도전적인 눈빛(도베르만같이 날카로운)이었죠. 요즘은 많이 달라지신것 같아요. 매체의 역할도 컸겠지만 말하는 태도나 인상이 여유로워졌다랄까요. 암튼 요즘 주목하고 있는 지식인입니다. 그분의 책을 공수해서 읽어봐야겠어요.

네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부드러워지셨죠. 글쓰기, 독서 관련 책 빼고는 전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