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내 사고를 다 표현할 수 없듯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행동으로 다 풀어낼 수 없다.
A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그 이의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의심이 오해라고 여기고 내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무리 기분이 안 좋은 날도 너를 보면 웃을 수 있었지만, 가장 기분이 안 좋은 일은 늘 너때문에 일어났다. 세상과 등지고 지내도 너만 있으면 괜찮았는데 너와 등지고 지내는 하루 이틀은 내가 다른 세계 안에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이 실감나지 않고 생판 모르는 타인이 또다른 이에게 내지르는 짜증에 내 마음이 부서지곤 했다.
나는 매일 너와 싸우고 한 두 시간 뒤에, 또는 세 네 시간 뒤에 너를 내 품으로 불러서 끌어 안고 잠이 들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어느 것 하나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너의 애정을 볼모로 내가 왜 그런 무의미한 다툼을 매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니가 없으면 단 하루도 마음이 즐거울 수 없던 나날들이었는데..늘 니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너를 웃게 하고 울게 하는 일조차 전부 내 권능인냥 생각하고 우리 둘만 있던 세상에서 독재자처럼 행동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을 내뱉기 싫어서 나는 10년이 넘게 그 시절 그 행동의 이유를 모른다고만 했다. 바로 이 문단 안에서도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B
너의 거짓까지도 사랑하겠다고 말했던 건 거짓이었다. 나는 내가 너에 대해서 가지던 욕망이, 너가 나에게 가지던 것보다 크던 시절에 늘 되뇌였다. 언젠가 그 욕망의 크기는 역전될 거라고, 어김없이 내가 원하던대로 되었고 너의 기만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던 나는, 내가 너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갈망하는 너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기만에 속아 넘어가 준 값을 받게 됐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고통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몫인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너의 기만을 사랑한 것은 그 순간에 내가 느낄 만족감을 위한 포석이었다. 다시 말해서 너의 거짓까지 사랑한 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은 없으면 좋겠지만 내 인생조차 거짓으로 점철한 내가 어찌 그 상황을 비난할 수 있겠니, 단지 나는 안쓰러웠다. 거짓은 언제나 '순간의 안락'을 위해 '불안의 지속'을 감수하는 불쌍한 행동이니까.. 아무리 내가 너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고 거짓말한 들, 너는 그 말에 속아 넘어가지도 영원처럼 보이는 순간의 안락을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위태로운 안락을 함께 느끼고,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다행히 '지금은' 서로를 끊어낼 수 없는 둘 안의 집착과 욕망이 존재함을 확인하며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 않음을 탓하기에 앞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자꾸 만들어 내는 너의 행동은, 그 천박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한 행위들은 사실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너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단지 나처럼 속은 척 할 수 없는 사람을 나중에 니가 만날까봐 내 속이 상할 뿐이었다
C
결국 거룩하고 고귀했던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영원에서 순간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마몬으로끝내 바닥나버리는
인내 앞에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는 이기심과
감사함은 없는 아쉬운 맘 서운함
넬의 '현실의 현실' 중
나는 마몬으로 변한 적이 없다. 인내가 바닥나 버린 적도 이기심과 서운함만을 드러낸 적도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너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나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니가 원하는 곳까지만 배웅하고 나는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으면 된다. 아니면 이런 행동은 만나는동안 속으로 삭히는만큼 가끔 너무나 차가웠던 내 태도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나는 착하기보다는 나쁜 사람이고 너를 괴롭힌 적은 없지만 편안하게만 해준 적도 없다. 나는 아직도 매일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의 일부씩을 꺼내어 본다. 이 병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고치려는 마음은커녕 그런 감정의 소모가 나를 슬프고 즐겁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무플방지!
자발적으로 기만을 감수한 기억이란 쉽게 희석되지 않는 것 같군.
사람마다 기억은 다르게 기록되지요. 기만을 감수 했다는 것은 사실상 나를 속이는 일이었을텐데,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면 그것을 모를 수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은 결국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가 없더군요. 상대방의 나에 대한 기억은 내 겉으로 드러난 태도와 모습으로 기록되게 마련이구요.
내 상처의 흔적을 가끔씩 들추어 보는 것은 감정의 소모이지만 그 또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쁜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결국 시간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그래요..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어쩌면 그 우월감마저도 사랑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봐요.
제이미님의 말마따나 기만을 자처하고 그 후의 모든 것들을 감내하면서까지 어쩌면 그녀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방법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만이로군요. 도통 컴을 못해서 ㅠ. 가든팍님의 이런 글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지라, ㅎ 지독히도 가슴저리고 격한 사랑을 하셨군요.
뚜벅이 여행자님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그녀가 얼마나 가든님을 사랑했는지 말해줄 것 같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영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ㅎ
크크.
솔직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