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성과 여성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와 다른 남성을 비교해도 어떤 남성과 어떤 여성이 다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다를 것이다. 내가 가진 다름의 기준에서 성(gender)을 다른 요소(ex.말투, 취향, 습관, 성격, 성장환경 등)보다 별스럽게 대우해 줄 이유가 없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각 개인의 다름을 느끼는 감각 이상으로 발달해야 된다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에 대한 분별과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킨십
연애 강의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므로 본론을 이야기 하겠다. (이 글에서 스킨십은 섹스를 의미한다.) 스킨십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우선 순위가 있다면 나는 내 욕구를 가장 아래에 둔다. 내가 무성욕자이거나 현자라서가 아니고 그 것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상대방이 원하는 (심리적, 신체적)상태에서의, 상대방이 만족을 느끼는, 하루나 이틀 후에 그 것을 생각해도 기분 좋은' 스킨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순전히 나를 위해서 이런 방법을 택하는데 스킨십과 관련하여 내가 싫어하는 기분은 위의 세 가지와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썩 원하지 않는 (정신적, 육체적)상태에서의,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는, 하루나 이틀 후에 생각했을 때 불쾌한' 스킨십을 혐오한다. 내가 이타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얼마나 부담없고 즐겁게 그 행위에 임했는지'가 내 쾌감을 극대화시켜 주기 때문에 그런 기준을 택한다. 반대로, 데이트 간의 식사 메뉴나 볼 영화의 종류를 정할 때에는 내 취향을 많이 반영시킨다.
왜?
나는 스킨십(섹스)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행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이루어지는 장소나 분위기까지도 여성 위주로 선택해야 한다. 스킨십이 통상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유교적 가치관이 완연한 한국 사회의 여성이 (결혼 전)스킨십에서 느낄 무의식의 죄책감 내지 부담감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사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한다. 하지만 순대국밥을 먹든, 파스타를 먹든, 독전을 보든, 데드풀을 보든 (스킨십을 함에 있어 나와 그녀가 가진 입장의 차이만큼)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없기에, 그녀가 특정을 하지 않는 이상 내 기호를 반영한다.
프레임을 통한 시선과 분별
내가 섹스에서 (행위 자체의 성사부터)상대방의 선택을 최대한 배려하는 이유는 그 이에게 행위가 부담스럽고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 이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흔하지는 않겠지만, 같은 이유로 여성이 내가 하는 것과 같은 배려를 남성에게 해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노약자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인과 신체적 약자를 무조건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고 비교적 장시간 서 계시는 일이 힘들 수 있는 사람들(보통, 노인이나 신체적 약자)을 배려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건장한 청년이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다리를 후들후들 떠는데 노약자석을 빌려주지 않을 사람은(본인이 노약자라고 할지라도)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감에 있어 서로에게 가지는 기본적인 믿음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믿음을 저버리는 소수의 사례를 끌어다가 일반화 시키면서 젊은이들은 노인이 노약자석을 당연한 권리로만 여긴다며 비난하고 여성은 남성이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취급한다고 화를 낸다. 프레임'만' 통해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절대로 올바른 분별이 아니다. 나는 그 것이 '헤어나오기 힘든 편견에 스스로 몸을 담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에 프레임을 앞세운다면 그 때부터 프레임은 해악이다
가령, 동일 노동에 동일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면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점'을 가지고 지적해야지, '동일한 노동을 해도 왜 여자의 임금이 더 적은 것이냐'를 내세우면 안 된다. 현실에 팽배한 남녀 처우에 대한 격차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의를 이루어가는 절차에서 성별(gender)이라고 하는 특정 요소를 맨 앞으로 내세우는 순간, 해결을 향한 공정한 접근보다 성 갈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일단 성 갈등 구도가 되면, '동일한 노동을 했음에도 여성이 받는 상대적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측에서는
'직장에서 해낸 과업의 종류와 질로 각 개체의 업무수행적 동질성을 증명하는 일'보다 '왜 여성은 정수기 물통을 갈지 않고 남성을 시켰는지', '왜 업무가 많은 날 또는 연휴를 이룰 수 있는 날에만 생리 휴가를 사용했는지' 등에 대한 답변을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나는 필요 이상의 성 갈등 구도가 이해되지 않고 일상적인 것까지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으로 만들어 논란에 불을 지피는 이들(특정 언론)의 행태가 싫다. 내가 남성이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누군가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도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각 판단의 준거가 명확한지 아닌지를 지적해야 한다. 요는 '남과여'처럼 명확한 프레임이 진리처럼 보이겠지만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복잡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러한 단일의 표준은 해결 방안이기보다 해악이라는 뜻이다.
무엇을 분별하고 무엇에 공감하는가
남과여, 노(老)와소(少), 부자와 빈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대의를 위해서 관습적인 성 역할이나 신분의 차이 정도는 얼마든지 내려놓고 역전을 허용하는 마음가짐
이 것이 올바른 분별이다.
내 작은 불편으로 상대의 큰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작은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
내 작은 배려로 상대의 큰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배려하려는 마음
우리는 최소한 우리 자신이 느끼는만큼, 타인도 같은 상황에서 힘들거나 불편할 것을 알기 때문에 돕는다. 이 것이 공감이다. 이 것들을 전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이름 붙이지 않았는가? '소시오패스'라고. '소시오패스'라는 이름만 보고도 경악을 느끼면서 왜 우리는 일상에서 올바르게 분별하고 공감하는 바를 실천하지 않는가? 고작 '페미니즘'이나 여혐이니 남혐이니 하는 이름 안에 갇혀서 싸우는 것이 우리가 이 사회를 사는 방식인가?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여자친구와 여혐이라는 단어 속의 여자는 서로 다른 차원에 사는 존재들이 아니며 세상에서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리 아빠와 남혐 속의 남자 역시 동질성이 없지 않다. 올바로 분별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따로 할 필요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이름에 집착할수록 자신이 그 안에서 얻고 싶어하는 정보만 얻는 경향이 있어 싸움만 격화될 뿐이다. 누군가 누구를 좋아하고 아끼는 일이, 누군가 누구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일이 그 이가 가진 한 두 가지 요소(ex. 성별, 나이)로 비롯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이유도 미움의 이유도 지금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합리적이었으면 좋겠고 글에서 언급한 분별과 공감을 모두들 가지고 있으면서도 프레임을 내세우기 위해 그 것을 숨기지는 않기를 바란다.
인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성 차별적 요소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성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역할에서 기인하는데 그 역할론은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낡았고, 또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바뀌어 왔는데, 인류는 아직 그 낡은 통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페미니즘이나 마초를 공부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성질을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필요해 보입니다.
하나 더, 우리가 쉬이 프레이밍을 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간편하기 때문이죠. 언제 어느 때고 바뀔 수 있는 입장은 나중에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 당장 상대와의 다툼을 간단하게 종식시킬 수 있기도 하겠거니와 상대방의 기분이 엿 같이 만들어 놓기에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지요.
사건과 사물, 사고를 분별할 때, 각 개체를 인식한 다음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을 따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만 다루는 것. 사실 그게 편하지 않습니까? 일반화는 대게가 그런 이유로 편하게 쓰이지요. ;)
전체적인 부분을 동감합니다. 이 글에 대해 느낀 바를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네요. 공감한다는 말이 충분했으면 좋겠어요.
동일노동 동일임금...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있는것 자체부터 해결되지않고 있는데요 뭐... 저기의 차이가 없어지면 비정규직이 많은 여성일자리에서의 차이가 줄어들지않을까 보이긴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에 대한 분별과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글을 극단적 페미주의자들이 좀 봐야될 글귀 같습니다~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본질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기 마련이죠. 오늘도 하나 배워갑니다. ^^*
이 글이, 우리 인간성에서 발현되는 민망함으로 묻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홍보해
누님..감사합니다 ㅜㅜ
하나씩 내 스스로만이 아니라 상대를 진정 바라봐주고 하나씩 내어준다면, 다른 상태, 그 자체에서 이거니저거니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스스럼없이 있는 그대로의 소통을 한다면 실로 더할나위 없이 기쁠텐데말이에요. 정말 통감하는 바입니다. 가든 팍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