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중문 근처에 장보고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법화사가 있습니다.
제주 4.3 항쟁에 중산간 마을이 소각되면서
고려시대 지어진 법화사 터가 발견되었고
현재는 새로 단장한 대웅전과 구품연지 연못.
2층 규모 누각 구화루가 있습니다.
서귀포시 하원동에 자리한 법화사(法華寺)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23교구 관음사의 말사다.
후기 신라시대,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 활동했던 해상왕 장보고가 건립한 사찰로 전해진다. 완도 청해진의 법화사와 더불어 산둥반도에는 법화원, 제주에 법화사를 창건하고 바다로 나가는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는 한편 세계로 향하는 해상세력의 근거지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법화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해오지 않으나, 1982년부터 8차례에 걸친 발굴로 법화사지의 규모가 확인됐다. 특히 1992부터 1997년까지 발굴된 명문기와를 바탕으로 고찰하면 1269년(원종 10년)에 중창을 시작해 1279년(충렬왕 5년)에 불사를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기록에 의하면 법화사의 노비가 280명에 달해 그 규모가 상당히 컸으리라 추측 된다.
당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약 330㎡ 규모로 파악됐다.
이 시기 법화사에는 노비가 280여 명이 있었고, 법화사에 봉안된 아미타삼존상을 명나라가 반환 요구했을 때 이를 전남 해남에 숨기기 위해 만든 감실의 높이와 폭이 각각 7척이었다는 기록으로 봤을 때 당시 법화사의 규모가 도내 최대 규모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법화사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는 본격적으로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530년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법화사의 존재가 나타나지만, 이원진의 <탐라지>(1653년)에는 폐사돼 초가 몇 칸만 남아 있다고 기록돼 있다.
폐사된 법화사터가 드러난 것은 4·3항쟁 당시 중산간 일대 마을이 불타버리면서이다. 법화사터는 1970년 지방기념물 제3-13호로 지정됐다가, 1982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1983년에 발굴된 대웅전터에 1987년에 새로 세운 대웅전이 있다.
법화사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경내에 자리한 구품연지다.
이는 본래 불국사 앞마당에 있던 큰 연못의 이름인데, 극락정토 구품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연지를 일컫는다.
법화사지의 구품연지는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특히 7차례의 사찰 주변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오백나한전 터를 비롯해 여러 동의 건물과 9900㎡ 규모의 구품연지가 실제 존재했음이 확인됐다.
법화사는 1987년 대웅전 복원을 시작으로 2001년에 구품 세계관을 상징하는 구품연지를 복원하며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2004년에는 구품연지 안에 178.2㎡ 규모의 2층 누각인 구화루(九華樓)를 완공하며 1단계 복원사업을 일단락 지었다. 2007년부터는 일주문·사천왕문·나한전·승방·강당 등을 추가로 복원, 법화사의 옛 모습을 재현했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출처 : 제주新보(http://www.jejunews.com)
구품연지 가장자리에는 진분홍꽃 가득 피운 베롱나무 두그루가 나란히 서 있으며
누각 앞에는 커다란 연잎 사이를 헤엄치는 오리 몇마리와
하얀 연꽃 여기저기 바쁘게 날아다니는 벌들과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산책하는 몇몇 사람들과
피고지고 다시 피는 아름다운 꽃들이 사찰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태양이 뜨거운 여름 어느날 서귀포를 지나가시게 되면
누각 아래 그늘에 누워서
천년 전에도 불었던 그 바람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Photographed by Jaybirds
유난히도 베롱나무을 좋아하시는분이 지금은 저희 곁에 안계시네요.
그분을 뵙는다면 세상을 다가진 기분일것 같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이다. !!!
님이 애타게 기다리시는 그분을 꼭 뵙기를 바랄께요.
그렇게 진심으로 누군가를 보고싶고 기다리는 마음은..
전 언제적 일인지 기억도 안나요. ^^;;;
날씨 좋은 날 여유롭게 거닐면 참 아름다울 것 같네요! :)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라 한가롭게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예요.
풍경이 너무 좋네요. 연꽃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니.
여유롭고 한가해서 좋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