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라디오] Our Spanish Love Song by Charlie Haden and Pat Metheny

in #kr7 years ago (edited)


소크라테스도 아닌데, 학생들에게 늘 질문을 던진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가진 특권이 있을까? 뭐라 대답을 하면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선생이란 걸 잘 아니까 다들 저 인간이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하는 눈치로 바라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같은 질문을 다시 한번 비슷한 문장으로 바꿔보았다. 일반적인 감상자들 말고 음악을 실제로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여전히 대답이 없다. 생각해보지만 잘 떠오르는 게 없는지, 아니면 그냥 조금만 어색하게 기다리면 무슨 얘기를 하겠거니 하는건지 알 길이 없다.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을 내뱉는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을 듣는 것, 내 소리가 더해지기 이전 상태의 음악을 듣고 거기에 필요한 소리를 상상해 완성해 가는 것, 무대 위에서 음악을 가장 가까이 들을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아닐까? 아무리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이라도 무대 위에서 함께 음악을 듣지는 못할테니."

아마 누군가와 연주하며 감동을 받은 다음날 쯤 되었을 것이다. 리허설이건 공연이건 이 사람의 소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니 이건 정말 행운이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얼마 뒤, 양재천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러 걸어가는 동안 이 노래를 다시 반복해서 들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둘의 연주. 그때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답을 더하기로 했다.

음악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보상이란 음악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아마도 그것 뿐일거라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이 벅차올랐는지 모른다. 이십 년 넘게 들어온 곡을 다시 들으며 그 안에 담겨있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서 말이다.

이십 년 동안 들었던 솔로도 악보로 적어보니 잘못 들은 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겠죠.

IMG_3489.JPG

Sort:  

글을 읽고 학생이 돼 생각해봤는데 저도 선뜻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대답은 여러번 곱씹어봤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선 매번 안틀리는 것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대답은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그냥 리스너로 남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음악을 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리스너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곡들을 직접 카피해보고, 피아노로 더듬어볼 때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돼요.

이 앨범도 많이 들었는데, 음악적인 부분에 집중해 들어보니 또 다르게 느껴지네요. 어쩔 수 없이 팻 메스니에 집중하게 되는데, 재즈베이시스트가 듣는 찰리 헤이든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올려주신 직접 그린 악보가 넘 좋습니다

저는 음악을 하고 나서 리스너로 더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인 것에 더 빨리 다가가게 된 것 같고, 내가 어떤 음악에 반응하는지 조금 더 잘 알게되었다고 할까요? 음악을 분석적으로 듣는 것에 비판적인 분들 있는것도 알지만, 나를 감동시킨 음악이 도대체 왜 내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게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겸허하게 감상하게 하는 점도 있구요. 저 사람들이 한 음악을 평생 근처에도 따라갈 수 없겠구나 하며 직감하고 난 다음, 한없는 좌절을 거치고 난 뒤에도 기어이 음악을 놓지 않고 살아가다보니 어느새 저런 음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통로 역할을 해 준 그들에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찰리 헤이든....돌아가셨을 때 많이 힘들었어요. 웬만한 가족 친지의 죽음보다도 훨씬 더 무겁게 와닿았습니다.

음악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도 좋다고 느끼는 곡은 간단하게라도 카피를 해보는 편인데요. 카피를 하는 것과 그것을 분석하게 되는 원동력은 '좋다'라는 막연한 감정이기에, 분석적으로 듣는 것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것을 왜 좋게 느끼는지 알게 되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기억해뒀다 곡을 쓸 때 쓰기도 하고요.

저는 비틀즈, 그 중에서도 폴 매카트니의 곡들을 듣고, 분석할 때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근처에도 따라갈 수 없다는... 그럴 때 또 저의 존재 가치가 작아지기도 하는데, 요즘은 조금씩 받아 들이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키스 자렛과 찰리 헤이든이 함께한 쟈스민 앨범을 무척 좋아합니다. 키스 자렛이 죽으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한 세대가 저무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저도 악보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필사로 이렇기 멋진 악보를 그릴수 있는 귀와 손을 가진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글씨를 못쓰는 사람은 악보도 예쁘게 못그리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손으로 그린 악보들이 죄다...

새삼 그동안 합주를 하면서 내가 선배들의 연주를 눈 앞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축복이었구나 하고 기분 좋은 기억들을 추억해보게 되네요.

아 저 글씨 정말 못씁니다 ㅠ 어렸을때 하도 글씨를 못 쓰니까 어머니께서 동네 서예학원에 보내셨을 정도로 ㅎㅎ 서예는 전국대회 대상 몇 번 받을만큼 잘 했는데 붓으로 노트필기하는건 아니죠! ㅠㅠ 음악 시작할때는 도레미 말고는 아무것도 안들려서 카피한다는 건 그냥 남의 얘기였는데 꾸역꾸역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