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글쓰기의 경지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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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의 언저리를 맴돌며 어떤 경지에 오르고 싶은 열망이 있지만, 그 경지라는 것이, 기계처럼 탁구를 친다거나 묘기하듯 공을 다루어서 보는 이의 박수를 이끌어내는 종류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이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나의 생각과 감흥을 얼마나 그 원형 내지 본질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가가 경지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라면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의 원형을, 글로 표현하고 바깥 세계에서 복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벼리는 일도 경지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그 경지에 오르면 모두의 박수를 받게 될까. "그 문장을 보고 감탄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내 글을 가슴에 대고 비비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글쓰기로 오를 수 있는 경지의 무상함이고, 또한 신비다.

 글쓰기가 등수를 정해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좋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천의무봉의 글에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 있고, 반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장으로 쓴 글에 감흥을 느끼며 젖어들 수도 있다.

 결국 '글쓰기의 경지'라는 것은, 이 정도 실력이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겠지 하고 재는 가늠자가 아니다. 그런 건 스포츠나 기술적인 영역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글쓰기로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아무도 아닐 수도, 모든 사람일수도 있다.

 글쓰기의 경지는 단지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 내가 본 풀꽃의 미세한 떨림을 글이라는 진동판으로 전달하여 독자로 하여금 세상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할 확률, 내가 잡은 손의 온기를 글이라는 전도판으로 전달하여 독자의 심장을 태워버릴 확률, 세상의 약하고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의 소리를 글이라는 귓속말로 전달하여 독자의 고막을 터뜨릴 확률. 그런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번째 독자인 나 자신이 내 글과 사랑에 빠질 확률을 높이는 일.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경지란 그런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것.

 오늘도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 고 믿으며 그렇게 글쓰기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P.S.

지난 주, 오키나와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 탓에 스티밋도 한 열흘은 푹 쉬었네요. 오키나와에 가서 느낀 상념들 천천히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그간 써 놓은 글들도 차례로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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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한숨 쉬고 오셨군요. 글쓰기의 경지와 함께 다시 글을 써주시니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ㅎㅎ 어서오셔요.

반가워요 레일라님. 애들과 실컷 놀고, 오키나와의 선선한 바람과 날씨를 만끽하고 왔습니다. 이번엔 다른 여행때처럼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없었어요. 너무 노곤해서 매일 자버렸어요.ㅎㅎ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ㅎ

즐거운 여행 되셨겠죠..ㅎ
확률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정의가 기막히게 타당합니다만, 제가 그럴 수 없을 거 같아서 안타까움이...ㅠㅠ

앗, 방금 유니콘님 남이섬 여행기 읽고 왔는데요! ㅎㅎ 찌찌뽕입니다.ㅋ
유니콘님이 그럴 수 없다니요,, 당치않습니다.

오랫만입니다. 쏠메님 오키나와 가족여행 후기가 너무 기다려지네요.
어떤 감성적인 여행이야기가 나올지 ^^

ㅎㅎ 여행 후기까진 아니고 단상 정도 올릴 계획입니다^^ 오키나와 참 좋더라구요.

지금도 글쓰기의 경지에 올라 계신듯 한데... 어디까지 올라가시려구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ㅋ;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올라가고 싶습니다ㅎ

와우~~~ 멋진 글쓰기입니다.

감사합니다ㅎ 오늘도 건필하세요!

아.. 여행 다니시면서 글을 역시 많이 쓰셨군요~ 올해도 좋은 글로 좋은 생각 많이 나누어 주세요~ 가즈앗!!! ㅋ

여행가서는 글을 못썼어요ㅠ 밤마다 쓰고 싶었는데 말이죠. 다녀와서 이틀새 쓴 글이 있고 쓸 글들도 있네요. 가즈앗!!ㅎ

“사랑은 스포츠다”라는 말이 있는데 글쓰기도 일종의 스포츠 같네요..

반복하고 연습하면 는다는 점에서는 스포츠와 비슷한 면이 있겠네요.ㅎ

내가 만족하는 글쓰기가 쉽지않네요ㅠㅠ 더군다나 사랑에까지 빠질 정도라면 ㅎㅎㅎ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오키나와에서 즐거운 추억 많이 쌓으셨나요? 다음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좋은 밤 되세요^^

그렇죠? 내 글에 만족하는 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많이 쓰는 수밖에 없겠지요ㅎ
오키나와 즐거웠어요. 축구 이겨서 다행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어제도 아이들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더니 축구시청을 놓쳤네요
글 조금 쓰다가 자려고 했는데...;;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ㅋㅋ 아이와 함께 잠드는 게 일상입니다.ㅋ

행복한 일상이네요~^^

감동적인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오키나와 여행 이야기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써보겠습니다^^

이미 경지에 오르신것 같은데요 ^^
글이 멋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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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이 멉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다녀오셨군요.
여행에서도 글쓰기만 생각하셨나봐요.
타고난 글쟁이십니다. :)

오키나와에서 밤마다 호텔방에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ㅋㅋ 글쓰기 생각보다는, 낮에 실컷 놀고,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글 써야 하는데,,' 그 생각을 했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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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ㅎ

솔메님 글이 뜸하다 했더니 여행다녀오셨군요!! 오키나와 여행기 볼 수 있는 걸까요? 기대가 되네요. +_+

얼마전 박준님 산문을 읽으면서 감탄한 적이 있어요. 제 문장이 너무 부끄러웠거든요. 책도 많이 읽고 글쓰기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여전히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런데 쏠메님 말처럼 어느정도 경지에 오른다 한들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글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기도 하네요.

첫 번째 독자인 나 자신이 내 글과 사랑에 빠질 확률을 높이는 일

보통 본인이 쓴 글은 재밌죠. 관대해지고 ㅋ 물론 가끔은 마음에 안드는 글도 있지만. 글쓰기의 가장 처음의 목적은 역시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네 일주일동안 가족들과 신나게 다녔지요. 여행기라기 보다는, 중간중간에 생각했던 짧막한 단상 위주로 올릴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한 느리고 단조로운 여행이라 여행기를 쓸 정도는 안 되는 거 같아서요.ㅎ

고물님의 글은 쉽게 마음에 와닿곤 합니다. 실제로 감정에 솔직하신만큼, 글쓰기에서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니까, 무척 흥미롭고 술술 읽힙니다. 계속 그렇게 써주세요.
매일 즐기며 글을 쓰시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습니다.^^

확률을 높이는 일이라니 좀 위로가 되는 것 같네요. 조금씩이라도 높이면 될 테니까요. 가족과 함께 즐거운 여행하셨죠? 선생님 가정에 새해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겠습니다 ^^

네 한걸음씩 확률을 높여가도록 해요^^
여행 즐겁게 다녀왔어요. 애플님도 멋진 일 가득한 한해 맞으시길 바랍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