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 나 힘들다 잊지마
나 : 나도 힘들다 잊어줘
A양: ㅋㅋㅋㅋ 그건 어렵겠어 미안. 다 해도 그건 안됨
나 : 난 바라는거 그거 하난데 너무하네 그거 하나도 못들어주고....
A양: 그거 빼고 말해
A양과 나의 대화다. 자기를 잊지 말라는 여자, 잊어 달라는 나. 우리는 그런 사이다.
몇년 전, 이사를 하고 낯 선 곳에서 새로 시작한 일이 도서관 자료실에서의 근무였다. 나에겐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과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시기였다. 기간제 근무여서 관 둘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것도 나에겐 장점이었다. 일이 생각같지 않더라도 언제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선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만난 A양은 나의 후임이었다. 내 근무 기간이 끝날 즈음 한달 정도의 기간을 두고 인수인계만 해주면 딱히 볼 일 없는 사이.
A양은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학에서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아 전공과 관련된 공부는 잘 하지 않았다. 막상 졸업할 시기가 다가오고 무슨 일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다가 배운 여자(?)가 되고 싶다며 대학원을 문헌정보학과로 갔는데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정작 사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오게 되었다.
함께 근무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언니는 내 누울 자리라며 나에게 도망갈 생각 말라는데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보통 그러다 마는게 대부분이고 난 어차피 근무기간 끝나면 굳이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A양은 초반에만 불타다가 금새 식는 여성이 아니었다.
굳이 안먹겠다는(음식 솜씨가 별로다.) 도시락을 내 것까지 싸와서 먹자고 하고, 직접 만든 향초를 사무실로 가져와서 선물하고(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나만 줘서 괜히 불편했다.), 새로 요가복을 살 때마다 풀로 착장하고 사진을 찍어보냈다. 사진을 볼 때 마다 깜짝깜짝 놀래서 나한테 이런거 보내지 말라고 말을 해도 이쁘지~ 내사랑♡ 이러면서 하트까지 달아 보내면 나는 더이상 대꾸할 의지가 없어진다. 더 이상의 실갱이가 소용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중에 니 남친한테 보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안듣더니 결국 요가복 입고 자수 놓으러 가던 카페 직원의 대시를 받고 3년 째 연애 중이다.
내가 그곳을 나온 후에도 어디야? 하면서 집착하는 남친처럼 수시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 안궁금해? 라며 자신의 안부 묻기를 종용했다. 내 답이 너무 뜸하면 우리집을 찾아오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는데 친구가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자기가 만든 향초와 물물교환하기 위해 가방을 지고 버스 타고 왕복 3시간 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그녀에게 도서관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온다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A양이 싫지 않았다. 반갑다며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강아지 같았달까? 뭐가 좋아도 이것저것 생각하고 눈치 보느라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그냥 넘기기 일쑤인데 사람에 대한 호감을 눈치 보거나 아닌 척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 신선했다.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먼저 들이대면 오히려 뒤로 주춤하는데 A양은 내가 한발 물러나면 두발 다가와서 내가 피할 틈을 주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내가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두고 지켜봐주기도(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같기도....) 했다.
하지만 A양은 사람에 대한 감정만 솔직히 표현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A양이 미대를 나왔다는 사실은 그녀의 특별한 패션 취향(혹은 그에 대한 고집)으로 느끼곤 했는데 첫 출근날은 초임 선생님처럼 검은 스타킹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를 단정히 입고 왔었다. 그때가 늦가을 이었는데 어느날 그녀는 전체가 짙은 주황색에 카라만 녹색인 반코트를 입고 와서는 오늘의 컨셉은 잘 익은 홍시라 했고, 어떤 날은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술녀 한복집 딸같이 보이고 싶다며 개량한복 비스무리한 것을 입고 와서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얼마 전엔 팔목부터 어깨까지 큰 프릴이 달린 초록색 맨투맨 티를 입고 온 A양을 보고 다른 직원이 그 프릴 주임님이 손수 다셨냐며, 오늘의 컨셉은 공룡이냐고 물었다는 걸 보니 아직 본인의 취향을 잘 고수하고 있는 듯 싶다.
A양은 본인의 감정상태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에 대한 선호도 분명해서 가끔 톡으로 느닷없이 나 여기 가고 싶어 혹은 이거 하고 싶어 라고 url을 보낸다.
한번은 내가 쉴 때였는데 그녀의 요구를 계속 묵살하다가 가슴 속에서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자꾸 스멀스멀 기어나올 즈음 맘 먹고 너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그녀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빵을 사러 가자고 하던 A양.
그녀가 말한 주소를 네비에 넣으니 거리는 76킬로, SNS에서 유명한 빵집이라 영업 시간도 오후4시 반까지란다. 그 전에 인기있는 제품은 다 팔리는 일도 다반사. 나중에 빵을 사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오픈하는 날은 일주일에 단 4일, 하마터면 우리는 거기까지 가서 빵 구경도 못하고 올 뻔 했다.
나는 평소 빵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 왕복 150킬로를 빵사러 가면 뭐라도 사오고 싶어진다. 집에 와서 한봉지 담긴 빵을 보며 이것은 고도의 영업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 빵 맛은 내 이야기를 들은 어떤 분이 하신 말씀으로 대신한다. "70킬로를 달려가서 먹어야 하는 빵은 세상에 없다."
빵 사건이 있은 후 연락이 올 때가 지났는데도 잠잠하길래 역시나 불안한 마음에 너 왜 조용해? 라고 물으니 그 날의 외출은 두달 짜리는 될것 같다며 두달 동안 나에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A양은 눈치도 있고 배려심도 넘친다.
내 보기엔 누가 입을까 싶은 옷을 좋아하는데 그게 희한하게 잘 어울리고 , 어릴때 부유하게 자란게 몸에 배서 돈이 없을 때도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 퍼주는 것도 좋아해서 종갓집 맏며느리 마냥 음식해서 주변 사람 걷어먹이는 일도 A양의 일상이다.
이런 A양과의 만남도 매번 좋았던 것은 아니다.
A양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고 행동하고 정작 사람들이 그 행동에 어떤 피드백이 있으면 모르는 척 하는게 얄미워서 그런 부분을 지적한 적도 있고, 그 친구도 지인이라면 굳이 들추지 않고 넘기는 내 단점을 팩트폭행해서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다. 사실인지라 서로 인정은 하지만 아프다.
그래도 아무 이해관계 없는 어릴 때 친구면 몰라도 나이 들어 만난 사이에 이만큼 솔직할 수 있는 사이는 드물다. 언제고 연락해도 부담스럽지 않고 연락 받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은 사이.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만나올 수 있었던것 같다.
우리의 대화는 이런식....
오늘도 A양은 쇼핑을 한다. 얼마전 내가 여행을 갔다고 하니 라탄 가방 사진을 잔뜩 보내 사이즈별로 사오라 한다. 나와 갔던 아울렛에서 산 옷을 너무 잘 샀다고 빨리 다시 갈 날을 잡으라는 그녀. 나에게 액받이 무녀같다며 자기 액운을 가져가라는 그녀. A양은 쉬운 사람이 아니지만 곁에 두고 보면 가끔 웃을 수 있고(어이없고 기막힌 웃음 포함ㅋㅋ) 그녀 따라 나도 솔직해 질 수 있어서 좋다. 당당하게 기름 채워놓고 자기를 태우러 오라고 하니 조만간 또 날을 잡아야 겠다.
베프신데요.ㅎ ㅎ
아마도 빵 사러 더 멀리 가자고 하지 않는다면요..^^ㅋㅋ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감사합니다!!
글이 재밌어서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일님 글이랑 맛집 소개도 잘 보고 왔어요. 자주 놀러갈게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뵈어요~!!
really??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