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산 둘레길을 걷다가 보면 거치는 곳이 약사사 입니다.
오늘은 약사사에 대한 안내 문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총2개의 안내판이 있는데 하나는 해당구청에서 표시한 안내판과 다른 하나는 서울시 전통사찰에 대한 안내표지판 내용입니다.
약사사
개화산의 울창한 숲과 한강변을 비롯한 빼어난 주변 경치로 인해 겸재가 그림의 소재로 즐겨 찾았던 약사사!
신라때에 주룡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이 산에 살면서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 세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셨으며, 선생이 살던 곳에 언제부터 인지(고려 때) 절이 생겼고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하였다.
겸재의「개화사」라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절은 냉천이 있어 병자가 목욕을 하면 오랜병도 낫는 약수터라고 하여 조선 말기쯤에 약사사로 불려졌다.
17세기 이전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알 수 없고, 다만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9호인 3층 석탑과 제40호인 석불이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약 7~8백년의 역사가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출처: 개화산 약사사-강서구청>
서울시 전통사찰
SEOUL TRADITIONAL TEMPLE
소재지 : 서울시 강서구 금낭화로17길 261
약사사는 개화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경내에는 고려 후기 삼층석탑과 석불이 있어서 적어도 고려 후기에는 창건되었다고 유추된다.
1486년(성종 17년)에 완성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이 주룡산에 있다고 나와 있다.
조선 후기 작성된 <양천읍지> 에 따르면 신라 때 주룡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 머물렀다 하여 주룡산이라 이름하였고,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봉화를 받는 산이라 하여 개화산으로도 불리었는데, 조선 초기 봉수대가 설치되어 전라도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하였다고 한다.
1737년에 이르러 송인명이 개화사에서 공부하고 재상이 되어 그 인연으로 절을 중수하였고, 순조 이후에는 약사사로 개칭하였다.
1827년 송숙옥이 쓴<개화산약사암증건기>에 의하면 '약사암' 이라하고 삼한고찰로 표기하였다.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은 개화사라는 제목으로 사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의 사찰령으로 약사암은 잠시 봉은사의 말사가 되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사찰이다.
1928년에는 원표스님이 약사전을 고쳐지었다. 1984년 설호스님이 다시 고쳐지었으며, 1988년 요사채와 범종각을 신축하였다.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은 영혐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여 향화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 약사사 안내판>
개화산에 대한 명칭과 약사사에 대한 역사적 유래를 알고 나니 그동안 무심코 지나가는 곳도 다시금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는가 봅니다.
20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