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 그야 물론, 간단한 일이지. 뭘 연주해 볼까나... 후우... 잠깐 쉬었더니 잘 안 되네.
린 : 아니... 굉장히 잘 하던데. 그건 그렇고 굉장한데. 바이올린만이 아니라 피아노까지 칠 줄 알다니 말이야.
엘리엇 : 아하하, 대단한 건 아냐. 음악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대부분의 악기들을 그냥 좀 건드려본 것뿐이니까.
린 : 그것도 충분히 대단하거든. 이렇게 확실하게 몸에 배어있잖아.
엘리엇 : 실은 나, 존경하는 피아니스트가 있어. 음악을 시작한 것도 그 사람의 영향이니까... 바이올린이랑 비슷하게 열심히 했었어.
린 : 흐음... 그랬구나.
엘리엇 : ...근데, 결국 요만큼도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더라고. 여러 가지 악기를 조금씩 연주할 줄 안다고 해도 그냥 잔재주만 많고 잘하는 건 없는 거고... 난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의지" 같은 게 약한 것 같아. 그래서... 음악 쪽 진로도 포기해버린 게 아닐까.
린 : 엘리엇...
엘리엇 : 미, 미안. 갑자기 이런 얘길 해버렸네...
린 : 아니... 말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엘리엇이 정말로 음악을 좋아한다는 게 확실하게 전해져왔고 말이야.
엘리엇 : 어...
린 : 엘리엇이 여러 가지 악기를 조금씩 건드려봤던 건, 아마도 단순히 "공부"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거야. 분명히 순수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음악" 에 다가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고. 진심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것... 그것도 충분히 훌륭한 재능이라고 생각해.
엘리엇 : 린... 난 틀리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린 : 응...?
엘리엇 : 아하하, 아무것도 아냐. 격려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기운이 나네. 다음 달 연주회... 어떻게든 열심히 해 볼게.
린 : 그래, 나도 응원할게.
[김나지움]
린 : (라우라...? 이런 곳에서 뭘...)
라우라 : ......
린 : (...오래 집중하고 있구나. 지금부터 검 연습이라도 하려는 걸까...? 라우라의 단련이라...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은데.)
라우라 : ......
린 : (...조금 떨어져서 견학해 볼까.)
라우라 : 이얍! ㅡ야앗! ㅡ하아아앗! ㅡ후우우우우...
린 : 하하... 역시 대단하네.
라우라 : 린... 어느 틈에.
린 : 미안, 멋대로 견학 좀 했어.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을 걸 수가 없더라. 하지만 덕분에 좋은 걸 구경했어.
라우라 : 후후... 그대도 사람이 고약하군. 지금의 베기에 망설임이 있다는 건 간파했을 텐데.
린 : ...미안, 쓸데없는 배려였구나.
라우라 : 아니... 내가 미숙한 것뿐이지. 검을 휘두르다 보면 조금 기분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린 : 역시... 피 때문에?
라우라 : ...알리사도 말했었지만, 연상으로서 좀 더 여유를 보여야 할 테지. 나도 알고 있다... 다만, 납득이 되질 않아서. 아무래도 난 생각보다 훨씬 완고한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린 : 라우라... 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자세히는 몰라... 그래도 무리하게 어른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우라 : 뭐...?
린 : 우린 아직 학생이고, 누군가에게 배우는 입장이야. 검도 그래. 연습하면 금방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우라 : 린...
린 : 만약 기분 전환이 하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불러줘. 마찬가지로 검의 길을 걷는 자로서, 대련 정도는 같이 해 줄 수 있으니까. 뭣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라우라 : 아니... 지금은 괜찮아. 오늘은 조금만 더 혼자서 검을 휘두르며 생각해볼까 해.
린 : ...그래.
라우라 : 하지만 내가 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때는 다시 한 번 내가 신청하도록 하지.
린 : 그래, 알았어. 그때가 오길 기대하면서 기다리도록 할게.
라우라 : 후후... 그대에게 감사를.
[본교사 앞]
린 : (휴~ 오늘은 여러 가지 있었구나. 지하 4층에 나타난 붉은 문은 꽤나 신경 쓰여... 뭐, 됐어. 슬슬 기숙사에 돌아갈까?)
(기숙사로 돌아간다.)
엘리엇 : 앗, 린도 들어가는 거야?
린 : 응... 어라, 다들 돌아가는 중인가.
알리사 : 응. 어쩐지 오늘은 좀 지쳐서 말이야.
가이우스 : 나도 오늘은 이만들어가기로 했다.
마키아스 : 후우, 실은 조금 더 자습을 하려고 했었지만.
린 : 하하, 그래. 아... 라우라랑 피는 없나.
엠마 : 예... 조금 찾아보긴 했지만요.
유시스 : 흥, 어린애도 아니고 알아서 들어오겠지.
린 :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그럼 먼저 다들 기숙사로ㅡ
엘리제의 목소리 : ㅡ오라버니.
린 : 에ㅡ
알리사 : 어머...
엘리제 : ......
엠마 : ...여자아이?
마키아스 : 저 교복은...
린 : 엘리제...!? 왜 여기...
알리사 : 엣...?
엘리엇 : 서, 설마 린의 여동생!?
린 : 아, 응... 하지만 엘리제, 이런 시간에 대체 왜ㅡ
엘리제 : ㅡ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죠.
린 : 엑.
엘리제 : ㅡ처음 뵙겠습니다. 린의 여동생, 엘리제라고 합니다. 귀가하시는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잠시 오라버니를 빌려도 괜찮을지요?
[본교사 옥상]
린 : 후우...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실제로 만나는 건 반년만... 아니, 7개월만인가?
엘리제 : ...예. 작년 말 제가 유미르에 귀성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봄에 오라버니가 여기 입학하신 이후로도 만날 기회는 있었을 텐데요.
린 : 아니... 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여튼 그게 바빴던지라... 거기다 여학교의 외출 허가는 간단히 나오지 않잖아?
엘리제 : 그것과 이건 별개의 이야기에요. 트리스타에서 제도까지 철도를 이용하면 30분 정도... 중앙역에서 여학교가 있는 지구까지 도력 트램을 이용하면 20분 정도... 여동생의 얼굴을 보는데 그 정도 시간마저 할애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시다는 거군요.
린 : ㅡ미안해! 그에 관한 건 정말로 미안했어! 실습이나 시험 때문에 바빴던 건 확실히 맞지만... 그러려고 했다면 만날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엘리제 : 하지만, 뭐죠?
린 : 아니, 그... 연말에 만났을 때 쌀쌀맞았던 것 같길래. 오빠를 성가시게 여기게 된 건 아닐까 싶어서 피해 다니게 되고 말았달까...
엘리제 : 싸, 쌀쌀맞게 굴거나 하지 않았어요! 그건 저기, 조금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할까...
린 : 개인적인 사정?
엘리제 : 어, 어쨌든! 제가 오라버니를 성가시다고 생각할 리 없으니까요! 예, 정말로, 하늘의 여신께 맹세코 천지가 뒤집히더라도 그럴 일은 없어요!
린 : 그, 그래... 그럼 다행이지만. 앞으로는 시간을 내서 제도에 엘리제의 얼굴을 보러 갈게. 이번처럼 엘리제가 놀러 와도 좋고.
엘리제 : 저, 정말요!? ㅡ어흠, 예. 그 정도는 남매로서 당연한 교류가 아닐지.
린 : 하하,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하러 일부러 이런 시간에 찾아온 거야? 그런 것치고는 말이고 뭐고 다짜고짜 들이닥쳤다는 느낌인데.
엘리제 : 남매의 교류가 적은 것도 물론 큰 문제지만... 제가 오늘 찾아뵌 주된 이유는 달리 있어요. ㅡ아무래도 정말로 자각이 없었던 것 같군요.
린 : 어... 그건, 저번에 내가 보냈던 편지 아냐? 아, 맞다. 노르드 고원에 갔을 때 가져온 선물을 받으러 온 거야? 일단 현지의 귀여운 장식품을 사 왔는데...
엘리제 : 저, 정말요? ㅡ가 아니라! 편지 마지막 부분 말이에요!
졸업 후에는 군에 갈 가능성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집을 나올 생각이야. 그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께는 효도를 하고 싶다 생각하고 있으니 조만간 같이 상담해 주었으면 좋겠어. ㅡ그럼 이만. 다음에 또 쓸게. 부디 몸조심하고 건강히 지내라. ㅡ린 슈바르처.
린 : 아...
엘리제 : "그러지 않더라도 집을 나올 생각이야" 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아버님과 어머님께 효도라니... 뭘 새삼 격식을 차려가면서?
린 : ......
엘리제 : 혹시나 말인데요... 가문을 이을 생각이 없다든가. 그런 건 아니시겠죠...?
린 : ㅡ그 혹시나야. 나는 슈바르처가를, 남작위를 이어받을 생각은 없어.
엘리제 : !!
린 : 당연하잖아? 애초에 나는 양자이고 혈연이라 할 것도 전혀 없어. 네가 장래 신랑을 맞이해서 남작가를 잇는 것이 옳은 수순이야.
엘리제 : 마, 말도 안 돼요! 비록 혈연은 아니라 할지라도 슈바르처가의 남자는 오라버니 단 한 사람뿐... 제국법으로도 양자의 가문 상속은 제대로 인정되고 있을 텐데요!
린 : 그건 대체로, 양자로 들어온 아이가 "상응하는 혈통" 이었을 때의 이야기지... 나는 다르잖아?
엘리제 : ...아...
린 : 12년 전ㅡ 유미르의 영주이신 아버지께서 주워 오신, 눈보라 속에 파묻혀 있던 "부랑아" ...자기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를 양자로 맞이한 탓에 아버지는 사교계의 가십거리가 되셨어. 상식 밖의 짓거리 운운에 심지어는 "사생아" 라는 소리까지... [고귀한 피를 일절 이어받지 못한 잡종을 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인가!] 라며 헐뜯은 귀족도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잡음이 지긋지긋해져서ㅡ 유미르에 칩거하시면서 사교계에서도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게 되셨어...
엘리제 : ......
린 : 이 이상 나는 슈바르처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역시 받은 성까지 돌려드리는 건 어렵겠지만... 그래도 네 장래에 피해를 주게 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어. 내년에는 16세ㅡ 사교계에 데뷔할 나이잖아?
엘리제 : ...!
린 : 그러니까, 부디 이해해줬으면 해... 집을 나왔다고는 해도 유미르에는 가끔 얼굴을 비출 생각이야. 아버지와 어머니께도 키워 주신 은혜는 꼭ㅡ
엘리제 : ...몰라.
린 : 에?
엘리제 : 오라버니는 전혀 몰라... 아버님의 마음도... 어머님의 마음도... 내 마음도...
린 : 엘리제...?
엘리제 : 오라버니는 바보...! 벽창호! 둔탱이! 정말 싫어!!!
린 : ...아...
알리사 : 잠깐...! 뭘 멍때리고 있는 거야!?
린 : 잠깐, 왜...
알리사 : 아 진짜! 엿들은 건 사과하겠지만...! 빨리 쫓아가라니까!
엠마 : 여동생분, 울고 계시던걸요?
린 : !!
엘리엇 :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일단은 쫓아가야지!
가이우스 : 그래. 그게 오빠의 의무일 거다.
린 : ...알았어. 너희들도 내 동생을 만나면 내가 찾더라고 얘기해 줘!
마키아스 : 그래. 얼른 가.
유시스 : 훗, 따귀라도 한 대 맞고 오도록 하라고.
[본교사 1층]
린 : ㅡ안돼.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어쨌든 학교 내부를 찾아봐야...!
[김나지움]
린 : 라우라...! 혹시 엘리제를 찾고 있는 거야?
라우라 : 응. 방금 연락을 받아서 말이다. 찾고 있던 중이었다.
린 : 고마워... 은혜는 갚을게.
라우라 : 아니... 아직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감사는 나중으로 미뤄두도록 하게... 그보다 대략 사정은 들었다.
린 : 그래... 미안. 가족간 갈등에 말려들게 해 버렸네.
라우라 : ...귀족이라는 신분에는 여러 굴레가 있다. 특히 그대의 사정은 귀족 중에서도 특수하다. 그대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없어.
린 : 라우라...
라우라 : 허나 이번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다. ㅡ그대가 찾아낸 길은 결코 [도망] 이 아니다... 매씨께 가슴을 펴고 그리 말할 수 있겠나?
린 : ...!
라우라 : 아니, 그만두지. 현시점에서 헤매고 있는 내가 잘난 체하며 할 소리는 아니군.
린 : ...그렇지 않아. 여길 잘 부탁해. 나는 다른 곳을 찾아볼게.
라우라 : 응. 맡겨두게.
[운동장]
피 : 응... 여기도 없나.
린 : 피...? 혹시 엘리제 찾는 걸 도와주고 있는 거야?
피 : ...응. ARCUS로 연락이 왔으니까. 현재로선 수확 없음, 이지만.
린 : 그런가... 고마워.
피 : ...여동생이나 집안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나 보네.
린 : ...하하, 들었구나. 난 유서 깊은 피를 이어받지 못했거든. 다른 귀족과는 사정이 전혀 달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을 나와야만 해. 엘리제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 : ...나도 엽병단에서 주워 줄 때까지는 외톨이였어. 친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래서 린의 기분은 조금 알 수 있을지도.
린 : 피...?
피 : ...하지만 엽병단은 내게 있어 "가족" 이었어. [내가 나가야 한다] 는 발상 자체를 하게끔 해 주지 않았어... 린의 "가족" 은 안 그랬어?
린 : 그, 그건...
피 : 뭐,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여동생을 찾자.
린 : ...응, 그렇네. 그쪽은 잘 부탁해, 피.
피 : 응.
[학생회관]
토와 회장 : 리, 린 군? 무슨 일이야? 그렇게 허둥지둥...
안젤리카 :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데.
린 : 회장님, 안젤리카 선배님. 저, 실은...
(여동생인 엘리제를 찾고 있다는 것을 둘에게 설명했다.)
토와 회장 : 엣, 린의 동생분이...!?
린 : 예... 이쪽에선 혹시 보신 적 없습니까?
안젤리카 : 미안하지만 본 적이 없군. 계속 여기서 잡담하고 있었거든.
린 : 그, 그런가요...
안젤리카 : ...흠, 그건 그렇고, 그 성 아스트라이아의 학생에 흐르는 듯한 스트레이트의 검은 머리라... 린의 여동생이고 하니 필히 정숙하고 아름다운, 마치 꽃과 같은 미소녀겠지... 저기, 발견한 사람이 귀여워해 준다는 규칙으로 참가해도 될까?
린 : 그,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토와 회장 : 어휴, 안제도 참!
안젤리카 : 아니,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어쨌든 나도 수색을 돕게 해다오. 도력 바이크로 학교 주변을 한번 돌아보도록 하지.
토와 회장 : 정말이지... 음, 학생회 쪽에서도 연락망을 돌려 볼게. 찾으면 바로 연락할 테니 다른 곳을 찾아 봐!
린 : 감사합니다...!
[본교사 앞]
린 : ...곤란하게 됐네. 거리로 돌아간 건가? 하지만 어쩐지 교내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크로우의 목소리 : (요! 후배. 뭐 하고 있냐?)
린 : 크로우 선배님... 그게, 사람을 좀 찾고 있어서요.
크로우 : 뭐야, VII반 동료 말이야? 아니면 2학년 여학생한테 고백 받아서 트러블이라도 생겼냐?
린 : 아뇨, 제 여동생인데 이 학교 학생이 아니거든요...
크로우 : 헤~ 여동생이 있었냐? 이 몸이 짐작하기로는 외동아들이겠구만 싶었는데.
린 : ...그건...
크로우 : 아, 그럼 아까 그 앤가? 제도에 있는 [성 아스트라이아] 여학교 교복을 입은 검은 머리 여자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