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해지고 만다.
조금 지나쳤나. 누군가와의 만남 후에 바로 반추하는 버릇이 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가 흘러나오든지 팟캐스트의 유익한 이야기가 반쯤 귀를 지나가고 사람이 가득 찬 버스 맨 뒤의 한 칸 앞자리에 몸을 구겨 넣고 창가가 아닌데도 창문을 바라본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널 무렵 한 번 밤하늘을 쳐다본다. 그날의 달과 공기와 온도를 떠올리면 그 만남은 더욱 오래 박제되곤 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됐던 걸까?
여러 실험과 우연한 경험과 수없이 변주되던 고민 끝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살아온 인생을 그 사람을 통해 듣는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운이 좋은 날엔 죽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여지없이 멀리 가 버린다. 이쯤 담백한 만남으로 마무리될 기회란 걸 알면서도 핸드폰 창에 뜬 시계를 애써 무시하며 친절한 척 묻는다.
"시간 괜찮으세요?"
거기서 안 괜찮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은 나와 닮은 듯 다른 두 사람과 만났다. 이상한 조합은 잘 녹아들었고 익숙하게 우울증과 또라이, 아픔, 인생의 의미와 허무주의에 대해 익숙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를 묶을 수 있는 말은 '시니컬'이었다. 한 사람은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사람의 손을 살짝 잡고 언젠간 놀랍게도 살아있길 잘했다. 자신이 좋아지는 날이 온다고 무리가 될 걸 알면서도 굳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그 사람을 포옹해줄 용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둘이 남게 되자 아주 잠깐 들었던 정보를 유추해 그 사람의 인생을 기억 속에 재현하기 위한 질문을 던졌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오늘 그 장소는 더없이 그러기에 완벽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모든 걸 다 알면서도 기꺼이 적당한 속도와 양으로 대답을 해준 후 잊지 않고 내게 간간히 질문을 해주었다. 이상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충분한 경험을 했고 나는 우리가 지극히 정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동의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자신에게 가혹해지지 말라고 했고 그는 그러기엔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비논리 속 논리를 찾아보겠다고 해줬다.
꼭 그렇다. 충분히 열심히 잘 살고 멋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학대하고도 학대하는지 모른다. 그럼 난 굳이 굳이 그 사실을 꼬집어 말해주고 그들은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씩 그렇게 또 만나게 되는 거다. 아니 사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다. 역시 또라인가.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관심사도 삶의 방식도 다른데 어딘가 닮아있는 사람 게다가 내게 호의를 지니고 열심히 대답을 해주는 사람에게 적당히 호감을 갖기가 어렵다. 문득 내 마음에 너무 많은 사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몇 시간의 대화로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언제나 끝까지 듣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입이 바싹 마르도록 대화를 하고 나면 질문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도 먼저 자리를 파하자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어색하게 때를 넘기고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돼서야 헤어짐을 고한다.
모든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늘까지 버티고 의연하게 살아온 매일매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도 아무 일도 없는 듯 하루의 삶을 사는 그 모든 이야기가 애틋해서 그만 안아주고 싶어 진다. 물론 그건 정말 너무 나가는 거니까 간신히 참아낸다. 왜 한국은 포옹이 인사가 아닌 거야란 작은 불만을 뒤로하고.
P.S. 그래서 오늘은 글을 써봣습니다.
나이먹을수록 누군가의 말을 듣는게 싫어지기마련인데, 고물님은 호기심이 많은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요.^^
설교나 잔소리같은 건 저도 잘 못듣겠어요 ㅎㅎ 맞아요 다행히 여전히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왕성해요+_+!
인간에 대한 사랑... 고물님. 오랜만에 글 읽으니 좋습니다. ㅎㅎ
저도 이렇게 도잠님을 보니 참 좋네요- 특기는사랑이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 마음껏 안아줄 수 있으니까요 ㅎㅎ
(얘네들도 크면 포옹을 피하겠죠 ㅠㅠ)
어쩌면 파치님 생각보다 더 오래 허그를 허락할지도 모릅니다.
아이들과의 허그 생각만해도 좋으네요 :D ㅋㅋ 저희 조카는 저에게 한 번도 안긴 적이 없답니다.
고물님은 용감하신 것 같아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일은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쉽지 않거든요~^^
용감한걸까요?
보통 대부분 재밌는 경우가 많아서 용기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일이 점점 줄어드니까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어쩔 땐 한발자국도 밖에 나가기 싫기도 해요. ㅎㅎ
엇 ㅋㅋㅋㅋㅋ 정말 케쥬얼한 자리와 케주얼한 대화였지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 타인을 만나본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연이 있기 마련이고, 그 사연들을 듣는 것은 재미있거든요. 너무 제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왠지 고물님이 성격상 먼저 부르실 것 같지 않으니, 다음에는 제가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학대, 자유, 행복 등 결국 다 연결되어 있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흡사 행복하지기 위하여 불행해져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항상 생긴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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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 여전히 안바쁘고, 덜 바쁘다고 생각합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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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왠지 루스터님이 이 글을 무지 나중에 발견하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로 보셨네요. 루스터님도 즐기시는 것 같아서 안심했어요. 저는 오히려 너무 제 얘기만 많이 했다는 반성을 하며 집에 왔는걸요? ㅋㅋㅋㅋ 이상하네요.
학대, 자유, 행복, 불행이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말에는 공감이 가요. 하지만 안 바쁘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번아웃되지 마시고 더 바빠질 생각하지 마시길
루스터님 역시 예리하시네요. 불러주시는 날을 기다려볼게요.
시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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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룸구님 저에게 시간 내주시는 건가요? ㅋㅋ
제 병적인 수줍음 치료 후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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