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야자 시리즈] 편지로 조우했던 이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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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내용은 앞의 에세이에서 이어집니다.



 반장이 편지를 쏟아놓은 책상 주인이 편지들을 집어 뒤로 넘긴 것들 중에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나도 편지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편지 나눔이 끝나고 얼마 안 가 종이 쳤기 때문에 편지를 바로 읽을 순 없었다. 아이들 모두 그 수업 시간엔 여학생의 손길이 담긴 그 편지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어떤 여학생의 마음이 그 봉투 속에 들어 있을까.

 그 다음 쉬는 시간에, 파스텔톤의 작은 봉투에 든 편지를 꺼내자, 접혀있던 여러 장의 편지지가 딸려 나왔다. 첫 편지의 내용은 자신에 관한 앙케이트였다. 이름, 신체조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등 자기를 알리기 위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적어놓았다. 그 편지는 아직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소개서였다. 누군가가 읽어줄 거라는 기대를 담은, 병에 담긴 편지와 같았다.

 편지의 주인은 차분한 말투에 귀여운 글씨를 가졌다. 지금 그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30여 가지에 달하는 질문에 답을 하며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나의 첫 편지도 그 같은 내용이 될 것이었다.

 그 날, 야간 자율 학습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평소에 공부를 하던 전교 2등 녀석도, 꾸벅꾸벅 졸던 녀석도, 턱을 괴고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던 녀석도, 나처럼 적극적으로 다른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녀석들도 그 날 만큼은 모두 연습장의 빈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아 첫 편지의 초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그 일은, 무엇보다 우선순위의 자리에 올라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다른 세계와 통신하는 행위였다. 언젠가는 평생을 함께 할 다른 행성 종족과의 조우였다. 그것도 나처럼 쑥맥이었던 녀석들에겐, 첫 조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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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처럼 우리 반 친구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단 한 번도 같은 곳을 바라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그 날만큼은 한 방향을 향해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린 미지의 행성에서 우리의 심장을 쥐고 흔들 존재를 만나길 바라면서, 행성의 대기권에 우주선의 머리를 디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연습장에 쓴 초고를 문구점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고른 편지지에 정성스레 옮길 것이었다. 우리들 중 몇몇은 초등학교 시절 경필 대회를 앞두고도 해본 적 없는 글씨 연습을 했을 것이다. 글씨를 통해서 글의 내용이 다 전하지 못하는 묵시적인 메시지가 그녀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글씨는 내가 그녀를 대면하는 첫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초등학교 경필 대회에서 글씨로 탔던 두 개의 상은, 내게 글씨에 대한 묘한 자부심을 주었는데 실제론 그 상들은 편지용 글씨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정자체로 쓸지, 아니면 편하고 귀여운 글씨체로 쓸 지부터 고민했다. 난 첫 편지엔 정자체를, 그 다음 편지부턴 편한 글씨체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로서는 나름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었고, 글씨에 대한 나의 감각을 간접적으로 뽐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리긴 쉽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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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자체와 편한 글씨체. 느낌 차이가 있다.

 야자 시간에 연습장을 펴서 그녀가 보낸 것처럼, 30여개의 앙케이트를 작성했다. 그걸 작성하면서 나는 나 자신과 먼저 대화를 해야 했다. 이 편지는 아무렇게나 써서 보낼만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에 대해 드러내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지도 몰랐다. 나의 내면에 급히 새로운 부서를 만들고, 그 프로젝트를 관장한 적절한 목소리를 그곳으로 발령 내야 했다.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 그녀와 긴밀한 교감을 나누는 편지에 관여할 내면의 목소리를 모집하는 공고를 듣고 화답한 것이, 바로 내 안에서 별 존재감 없이 배회하던 ‘로맨티스트’다.

 그 시기는 내 안의 몬스터가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던 때였다. 펄떡이던 정욕과 육체적인 쾌락,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몬스터로부터 나와서 나의 내면에 유포되었고, 그걸 즐기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나를 옥죄는 갖가지 제약과 사회적인 규범 때문에 간신히 최소한의 도덕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로맨티스트는 나의 내면을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불러 주는 이도 없고, 자신이 쓰일 만한 곳도 없었다. 굶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로맨티스트적인 것은, 경우에 따라선 사춘기 소년에게 적이나 다름없었다. 오글거리는 감성, 속삭이는 목소리, 따뜻한 눈빛과 관심.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내보이는 건, 소년에게 옷을 벗고 돌아다니라는 주문과 다를 바 없었다. 소년은 내면을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매서, 마음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누군가에 대한 직접적인 호감 표시도 금물이었다. 그것이 미덕이었고 소년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었다. 하지만, 로맨티스트는 소년에게 요구했다. 걱정이 되면 걱정을 내비치고, 호감이 있으면 호감을 드러내고, 위로하고 싶으면 손을 내밀라고.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소년에게 로맨티스트는 배척당했다.

 나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로맨티스트는 꼭 필요한 목소리였다. 첫 편지를 쓰던 그 순간부터 내 안의 로맨티스트는 활약했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난 그녀에게 나를 알리려고 노력했고, 그녀가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모든 신호를 감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녀의 말에 적절한 반응을 해야 했고,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감지해서 전해야 했다. 그저 어린 소년, 몬스터나 품고 있는 소년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서로 오간 첫 번째 편지를 통해 그 당시 그 애의 키가 나보다 2cm정도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째 편지에서 그녀는 그녀보다 작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너 귀여운 스타일이구나. 이담에 만나면 많이 먹여서 키 좀 클 수 있게 해줄게.”

 난 그 아이의 이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엔 그 말에서 느낀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걔가 솔직하고, 동시에 다른 이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마음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 애는 우리의 키 차이를 전제로 종종 누나 같은 말투로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주로 우리의 유머와 농담이 오가던 컨셉이 되었다.

 그녀는 자기의 일상을 잘 풀어 보냈다. 주변에 있는 친구 누가 있는데, 어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는 언니가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다른 학교 남자 애들과 이런 일이 있었다, 자신이 어떤 영화를 봤는데 느낌이 어떠했다는 등, 일기처럼 편하고 담담하게 자기 얘기를 했다. 누군가와 일상을 나누는 일은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세 번째 편지부터 우린, 편지를 집으로 주고받았다. 두 번째 편지 이후로 반장은 배달 서비스를 종료했고, 그때부턴 개별적인 관계로 발전시킬지를 각자가 선택해야 했다. 많은 친구들이 편지를 쓰는 일에 이내 흥미를 잃었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상대와 필담을 나누는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즐겁지 않았다거나, 편지 쓸 시간을 들이는 게 귀찮아졌거나 하는 등 이유는 다양했다. 소년들은 내면을 배회하는 로맨티스트를 불러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2~3주 정도가 지나자, 펜팅은 더 이상 우리 학급에서 이슈가 되지 않았다. 누가 계속 편지를 주고받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와 나보다 2cm가 컸던 그 애는 격주로 편지를 보냈다. 이번 주에 내가 써서 보내면 그 다음 주에 그 애가 써서 보내는 식이었다. 펜팅은 내 생활 습관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다락방이었던 내 방에 책상 하나가 있었는데, 급한 숙제가 없다면 별로 앉을 일이 없었다. 편지를 쓰고부터 난 책상에 자주 앉았다. 그녀의 편지를 거듭 읽고 할 말을 하느라, 그리고 좋은 글귀를 여러 책에서 찾아 쓰느라, 편지 한 통을 쓰는데 며칠씩 걸렸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다락방에서 두문불출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어머니가 올라와서 동향을 살피기도 했다. 엄마가 다락방에 올라오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우리의 교류는 6개월간 이어졌다. 꾸준히 글을 썼고, 가끔 시를 함께 적어보내기 위해 시를 찾아 읽었다. 마지막 한 달 정도는 전화통화도 했던 것 같다. 통화 횟수는 2~3번 정도 될까. 통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인사말을 나누고 편지를 언제쯤 보내겠다는 말 정도를 나누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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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스트가 없었다면 지속할 수 없었던 일

 대부분의 불안정한 소년이 그렇듯이, 마지막은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어 간단하게 끝이 났다. 가을이었다. 중간고사를 치루고 성적이 나왔던 어느 날 밤, 어머니는 원래 고만고만하던 내 성적을 편지쓰기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셨다. ‘여학생에게 편지나 쓰느라 공부를 하지 않는다.’ 는 요지의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지만, 무척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구구절절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을 늘어놓긴 싫었다. 난 소년이었다. 내 감정을 숨기는 것이 미덕이었던. 그때 로맨티스트를 적대시하던 예전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한편으로, 난 그 애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모든 시간들을 지키고 싶었다. 앞으로 누구도 그 일을 좋지 않은 일로 매도하는 것은 막고 싶었다. 결국 그 주의 토요일에, 그 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편지는 안 될 것 같아.”
 “그래.”
 “잘 지내.”
 “응.”

 그 애 목소리엔 실망감이 묻어났지만, 내게 이유는 묻지 않았다. 우린 간단한 통화로 6개월간 일상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일을 마무리했다.

 내가 먼저 그 애의 손을 놓았지만, 한동안 그 마지막을 생각하면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미 내 속에서 존재감이 생긴 로맨티스트가, “이건, 쓸쓸하고 슬픈 일이야.”라고 끊임없이 속삭였다. 하지만 난 불안정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내게 진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마음의 손을 잡은 이, 꾸준히 내게 따뜻한 웃음을 보낸 이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귀한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 후로도 쉽게 떠나보내고 간단히 잃어버린 후에야, 그런 마음을 얻는 건 원래 쉽지 않은 행운 같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편지 왕래가 끊기고 그 애의 일상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지만, 난 그 애보다 훨씬 더 키가 더 커졌고, 내 안의 로맨티스트도 내 곁에 남았다. 첫 편지의 답장을 쓰던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처음 만났던 로맨티스트는, 내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다시 성년으로 자란 것과, 그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최근엔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나와 당신이 본격적으로 만났던 때를 한 번 떠올려보면 어떨까. 그 페이지엔 사춘기, 반장, 편지, 그리고 야간 자율 학습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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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요.

같은 방향을 보며 미지의 외계와 조우하기 위해 진지하게 몇 번씩이나 퇴고를 하며 꾹꾹 눌러 편지를 쓰는 고등학생라니 너무 귀엽네요.
스물스물 올라오는 로맨티스트의 기운을 적절히 몸사리며 사춘기 소년의 미덕을 지켜야하는 갈등이라니- 그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남학생의 마음을 이토록 귀엽고 따뜻하게 표현해주시다니.
오히려 어머님의 걱정에 무심히 이젠 편지를 못보낸다는 결말이 더욱 아련하고 소년답네요. 이 글 너무 좋아요 :D !!!!!

고등학교 시절 펜글씨를 연습하던 남학생을 봤었는데 특이한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솔메님을 보니 그 마음을 조금 알기도 하겠어요.
아! 글씨체가 정말 멋지고 솔메님다워요. 솔메체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떠세요? 글빨이 +5 증가할 것만 같은 글씨체

사춘기의 미덕과 로맨티스트의 발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소년의 정서를 잘 알아봐주셨네요ㅎㅎ
표현하고자 하는 걸 정확히 읽어주시는 고물님 같은 이웃이 있어서 쓰는 맛 납니다^^

펜팅은 최초의 시리즈 글쓰기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예술고의 그 친구를 만난 것 뿐만 아니라, 저의 내면과도 만나는 시간이었죠.
글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편지를 쓸 때만 등장하는 글씨체입니다ㅋㅋ 결혼 후엔 주로 부조 봉투를 쓸 때 사용하고 있지요ㅎ

연결고리역할을 해주는사람이 절실하죠...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요 체길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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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소식듣고 달아봤는데, 이리 빨리 찾아오시네요. 감사합니다ㅎㅎ

으앗 ㅋㅋㅋㅋㅋㅋ 지역은 다른듯 하지만 저도 해봤어요. 앙케이트팅(?)였나요? 이거랑 노트 주고 받는 것도요. 제가 주선한 적도 있는데 하필 애들 편지 걷은 날이 소지품 검사날이라... 그냥 삐삐를 자진 납세하고 나머지 소지품은 안 건드리고 넘어간 기억도;;;;;; (삐삐는 압수였고 앙케이트팅 주선은 정학이었던..)
글을 읽자마자 그 시절 생각이 나서 엄청 오글오글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오호~~ 써니님 반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군요!ㅎㅎ 반 친구들에게 일상의 활력을 주셨네요~~^^
정학에 삐삐 압수ㅋㅋ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용기!!

정학은 안 당하려고 삐삐를 냈더니 제 사물함은 안 뒤지고 넘어갔어요. ㅋㅋ 영향력이라기 보다는 그냥 호기심에 해본거죠.

친구들에겐 즐거운 기억이었을 거예요ㅎㅎ

ㅎㅎㅎ 그러고보니 제 친구 중 누군가도 어딘가에다 솔메님 같은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네요.

잘읽고갑니다.
팔로우하고 갈게요.

네 반갑습니다. 저도 팔로우할게요. 자주 뵈어요^^

이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얼굴이라도 보고 손목이라도 잡았어야 하는 거 아닙니꽈??

결국 몬스터를 소환했어야 하는 건가요.ㅎ '손목잡기' 옛날 사람 같아요ㅋㅋ

스토리텔링도 그렇지만 쏠매님 손글씨가 너무 멋지네요. 쏠메체인가요? 글씨체에 등록해서 쓰고 싶습니다!!!

팥쥐님 펜팅할 때 쓰세요ㅋ 아내분과 펜팅~~ㅎㅎ

잘 읽었습니다. 조금 다듬으면 멋진 한 편의 소설이 될 거 같아요. 제가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해서. :)

전 게을러서 펜팔이 금방 끊겼답니다. -_-;;

근데 글씨 잘 쓰시네요. 특히 편안한 글씨, 맘에 듭니다. :)

예전에 이 얘기를 모티브로 쓰기 시작했던 소설이 있는데, 어느 순간 멈추어 버렸어요. 장편을 계획했는데 3분의 1까지 썼다가 더 나아가지 못했죠. 여유가 될 때 멈춰버린 소설들 다 꺼내 먼지 털고 다시 쓰고 싶어요ㅎㅎ

어느날 제 방 옷장 위에서 발견한 부모님의 연애편지가 생각이 나네요. 지금의 두분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절절하고 따뜻했던.. 애절하고도 깊은 그 로맨스. 정말 충격적이지만 사랑스러웠던 그날의 그 감정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ㅎㅎ 어떤 이들은 편지를 과거의 전유물이라 말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가장 힘있는 마음의 전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메님의 설레는 이야기가 저를 또 웃게 만드네요 흐흐:-) 며칠 전에 저도 한국으로 아빠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엽서를 보냈어요. 장난가득한 말들이 가득했지만, 그것이 그들을 아주 활짝 웃게 만들었답니다. 여튼 이전이야기가 궁금해서 얼른 읽어보러 가야겠습니다 ㅎㅎ

와. 부모님의 연애 편지를 다 큰 딸이 읽는 장면은 참 영화같네요. 부모님의 편지를 읽는 기분은 묘할 거 같아요. 지금 보는 부모님과 예전의 부모님 사이의 괴리가 분명 존재할 것이니 말이에요.ㅎㅎ
손 편지는 여전히 힘이 센 거 같아요. 요즘 그 힘이 점점 잊혀지는 것 같지만 말이죠.

아빠에게 바다 건너 엽서를 보내셨군요. 나중에 제 딸이 저에게 엽서나 편지를 보낸다면 무척 감동일 거 같습니다. 아빠 자주 웃게 해드리시길요.^^ㅋㅋㅋ

성장 에세이를 한편 읽은 느낌입니다.^^
글씨 잘 쓰시는데요 ㅎ

ㅎ 네 성장 에세이 맞습니다. 지금도 성장 중입니다^^
글씨는, 겨우 편지나 쓸 정도입니다ㅋ

고등학교 때 저희반에는 영어 선생님이 주관한, 국제 펜팔 열풍이 불어서 세계 각지로 편지를 보낸적이 있었는데 아마 반 친구들 중 누군가는 쏠메님과 비슷한 과정을 겪지 않았을까 싶네요.

친구 중 하나는 중국동북부 지방의 여자아이와 연결이 되었는데 유일하게 한글편지를 답장으로 받았습니다. 사진을 붙인 자기소개 편지를 보낸 후 받은 편지의 첫 문장은, "ㅇㅇ야, 나는 길림성에 사는 ㅁㅁ라고 한다. 너 참 영준하게 생겼더구나"였습니다. 당시 집안 어른들이 쓰던 생소한 단어들을 재미있어하며 반 전체가 돌려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영어선생님이 주관한 국제 펜팔이라니! 정말 진귀한 경험을 하셨네요!ㅎㅎ 친구들 중엔 꾸준히 편지를 보낸 친구도 있었겠네요~~

ㅋ 영준하게 생겼더구나. 그 친구 이름이 영준이었다면 길림성식 유머였을텐데요. ㅎㅎ 외국에 사는 여자애에게 받은 편지라니. 정말 신기했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