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단체 손님

in #busy7 years ago

door3.png

대략 보름 전 젊은 처자 셋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홀에서 일하던 날이라 직접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들어와서는 가게 안을 둘러 보더니 메뉴판을 보자고 한다.

"왔구나!!"

이건 단체 예약이다.
식사하시러 오는 손님들은 들어오면 일단 자리에 앉게 마련이다. 인테리어가 맘에 들면

어,예쁘네.

말은 해도

가게 예쁜데 메뉴판 좀 볼게요.

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어도 자리 잡고 가방 놓고 겉옷 벗고 둘러보지, 냅다 핸폰 먼저 꺼내서 찍으러 다니지 않는다.

단체 손님 예약을 하기 위해 답사 나온 사람들은 일단 문을 삐죽 연다. 들어와서는 천천히 말없이 가게를 스캔하기도 한다.
여기서 퉁명스럽게

누구세요?

하면 십중팔구는 단체 손님을 놓친다. 퉁명스러운 상대에게

저, 예약하러 왔는데요.

라고 되려 손님이 친절하게 얘기해도 1차 응대에서 이미 실패한 가게 직원의 급 친절 변신 모드는 변절처럼 보여서 면이 안 서게 된다. 손님은 말은 공손해도 기분까지 공손해지지는 않는다.
단체 예약을 위해 방문한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선다 해도 너무 굽신거리고 간이며 쓸개까지 다 빼 줄 것처럼 굴면

"장사 안되는 집이구나. 애쓴다. 맛이 없나?"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다. 적당히 꼿꼿하고 적당히 길 자세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다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비록 결정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젊은 처자 세 분은 가게를 둘러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얼마든지 보라고 하고 2층도 있으니 올라가 확인하시라고 했다. 즉 미끼를 먼저 던져서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려는 작전을 구사했다. 단체 손님이라고 지레짐작하고 2층까지 손수 모시고 올라가서 설명하면 얘기가 도돌이표가 된다.

"장사 안되는 집이구나. 애쓴다. 맛이 없나?" :))

예약하러 오는 사람 입장에서 과잉 친절은 더 불편할 수도 있다.
스윽 둘러 보더니

2층이 좋겠네.

그런다.

"걸려 드러쓰..."

2층은 대략 20석이다.

인원이 좀 적어도 통으로 쓰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손님들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점잖게 배려받는 기분이었겠지만 나는 막 던져보는 거였다.

20명이 넘을 수도 있는데... 애매해서요.

"빙고!!!"

원래 인원은 40여 명인데 양식을 안 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팀을 두 음식점으로 나눠야 한다. 그런데 그게 확실하지 않아서 20명이 될지 30명이 될지 모른다. 암튼 최소 10명은 한식을 드신다고 한다. 이럴 때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 통쾌한 승리가 찾아올 것이다.
막 던지기 2탄!

배달해 드릴게요.
요 앞에 낙지집 있는데 거기서 가져오면 됩니다. 단체로 오시는데 따로 드시는 것도 보기 그러니까요.

그래도 괜찮냐는 감동의 눈빛을 나에게 선사한다.

"완전히 빠져 드러쓰..."

종결 초식.

그냥 편하게 여기서 드세요. 1층 통으로 비워 드릴게요.

손님 세 분은 그러면 정말 고맙겠다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시켜 드셨다.
최종 관문이다.

'맛은 어떤지 확인하는 거겠지."

계산하고 나가기 전 명함을 받고 방문 날짜를 약속받았다. 맛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6월 30일 토요일 12시에 44명이 가게에 들이닥쳐 1층을 점령했다. 먼저 온 다른 손님들은 미리 2층으로 올려보냈다. 주말이라 해도 12시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얼마 되지 않는다.
낙지집에서 배달한 음식은 없었다. 내 감동 서비스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ㅋ
44명에 메뉴 42개. 제대로 한 건 했다.
이 구석까지 찾아와서 맛있게 먹고 가시는 분들, 모두 고맙고 여태껏 음식을 허투루 만들지는 않았다는 보람도 챙겼다.
그날 오후에는 무슨 열대성 폭우 같은 게 쏟아지더니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

Sort:  
@sadmt님 안녕하세요. 깜지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깜지님 감사요..^^

우훗, 경축!!!!!!!!!
44명에 메뉴가 42개라니..대박 !!!!!!!

글쵸,, 대박이었습니다... 대애박!!

사장님과 예약하러 온 손님 사이의 심리가 아주아주 잘 표현되어 재미있습니다.
단체손님 대박~. 축하합니다~^^

오랜만의 대박이었지만 저는 오너는 아니어요..
울 가게에서는 매니저로 통합니다..ㅎㅎ

축하드림니다..
장사는 참 어려워요...

특히나 손님 상담 하기란
정말 힘든것 같습니다
홧팅!!입니다 ^^*

홧팅 고맙습니당..
요즘 장마에 태풍에 장사가 시원찮은데 이런 거라도 한 번씩 걸려야죠..ㅎㅎ

미끼를 잘 고르고 던질 줄 아신다는.....엄지척!!

다년간의 경험?? ㅎㅎ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단체 예약 원하는 손님들은 빈정상하지 않게 해 드리고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서비스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역시 전문가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ㄷㄷ

ㅋㅋ 훅을 거니 바로 걸리데요..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이러면 바랄 게 없겠네요..ㅎㅎ

칭찬의 풀봇~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당... 풀봇은 사랑...??

요즘 고민이 많이되는 부분인데 영업비밀(?)을 풀어놓아 주셨네요. ^^

이쪽에 계신가 보네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ㅎㅎ

착착 감기는 초식에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아마도 음식이 최종 결정타였겠죠. 사장님께서 유피님께 보너스를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ㅎㅎㅎ

예의 있는 분들이라 예약부터 방문 후 가실 때까지 큰 문제 없이 잘 지나갔어요.. 수요일 20명 예약이 있는데 요즘은 비 땜시 파리 날리고 있거든요. 이런 건이라도 있어야죠.. ㅎㅎ

열대성 폭우는 @sadmt 님 고생해서 푹 쉬라고 오는 축하의 비였네요.

가끔씩 그래야 가게 하는 맛이 나죠 머. 그래도 월말에 한 건 제대로 였습니다.

요즘 팽팽 노는데 이런거라도 한번씩 하니 다행입니다. 잘들 가시고 나면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ㅎㅎ

완전 대박! 완전 고수!!! 사업을 하셔야겠어요 ㅎㅎㅎㅎㅎ 손목은 괜찮으시죠?

사업하다가 한번 말아먹었거든요...ㅎㅎ 다시는 사업 안 할 겁니다..ㅎ
한번씩 심하게 돌리면 왼손목에 조금 무리가 가긴 하는데 좀 지나면 괜찮아 집니다.
걱정까지 해 주시고... 흑

요럴때 꼭 제가 하는 말이 있는데요.

나, 이뽀옹~?

에잇! 음성지원이 안되서 맛이 안나요! 아무래도 쉐프님이 좀 맛나게 덧글 달아주셔야 할듯 해요. ㅋㅋㅋ 여기서 이러시믄 안됩니다~ 이런거 말고욧!

크림파스타처럼 부드럽게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이러시믄 안됩니다~

일주일에 이런 손님 두어 번만 받고
나머지는 휴가와 보너스를^^

그럼 얼마나 좋을까요...ㅎㅎ

밀당의 고수시군요!

근데 왜 연애는 그렇게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아주 옛날 이야기입니다.^^;;

영업의 왕이시군요! ㅎㅎㅎ 전 회사에 있을 때 의전을 할 일이 많아 회사 근처 음식점을 모조리 돌면서 인테리어 사진도 찍고, 수용인원과 방의 유무, 메뉴와 가격도 확인해서 파일로 정리해두고 두어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막내여서 귀찮은건 죄다 절 시킨거죠ㅎㅎㅎ 그 때 제가 sadmt님을 만났더라면 완전 홀려들었을것 같네요^^

아깝.... 그 때 뵈었으면 정기 단체손님 예약이었는데요..ㅎㅎ
막내 시절에 귀찮은 일을 많이 하셨네요.. 그래도 덕분에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만한 대접을 하셨겠죠..ㅎ

인사팀이라 대표이사 손님들 의전이었어요ㅎㅎㅎㅎㅎ 지금 회사는 이런게 거의 없어서 좋으네요^^ㅋ

요즘 노쇼도 골치아프다고 하던데 다행이네요.. 손님맞는 노하우를 공개하셨네요^^

그런 경우도 있구요. 엊그제는 친히 전화 주셔서 예약 취소한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비록 두명이었지만.. 오히려 다수인 경우 날짜가 정해져있고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행사가 취소되지는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ㅎㅎ

장사의 신이시군요~!! 마음을 읽는 서비스
너무 멋지십니다~!!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사실 얘기가 부드럽게 진행되면 이렇게 잘되기도 하구요. 너무 깐깐한 분들은 은근 화가 나기도 합니다.ㅎㅎ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겠다는 믿음을 매번 제대로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와 피쉬님 영업노하우 너무 오픈하는거 아니세요~
멋짐 폭발입니다 ㅎㅎㅎ

이런거 오픈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죠.. 근데 별 필요없을 가능성이 훨씬 클거에요..
어디다 쓰겠어요.. 이런 거...ㅎㅎ

필요함을 보이면서도, 적절하게 거리를 두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손님들과 식당 사이에 하나씩 관문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홍보해

사실 잘 안될 때는 예약하고 당일날 안 오는 경우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말도 잘 통했고 시간 맞춰 와주기까지 했네요. 장마라 손님이 별로 없는데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유피님 ㅎㅎ 파주로 스윽 가서 파스타를 시켜먹은 다음 맛있었어요 -북키퍼 쪽지ㅡ남기고 올려다가 애새끼들 달고 가야할 판이라 참았습니다 ㅋ

돌아가셨나 보네요.
잘 하신 겁니다. 파스타 맛 보셨다면 필리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실 뻔 했어요..
오랜만에 오셔서 눈도장 많이 찍으셨나 모르겠네요..

아직 안갔어요. 오늘은 부산입니다. 남들은 1년동안 돌아다닐 거리를 일주일 만에 다니고, 불금을 수백번 할만큼의 술을 마시고, 몸이 축나는 중입니다 ㅋ 이미 배는 남산만 해지고 돌아가면 다시 폭풍 운동으로 날씬한 몸매를 찾아야 합니다 흑흑. 진짜 가고싶었어요 유피님 파스타 먹으러ㅜ 진심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ㅎㅎ
기왕 망가진 몸매는 가시는 날까지 걱정하지 마시고 맘껏 즐기시기를....ㅎㅎ

밀당이 생생해요^^

이런 밀당은 전문인데 다른 밀당은 못한다는게 함정임다..ㅎㅎ

돗자리 깔아드려야 겠습니다~ㅎ

복채는 500원으로 할게요..^^

와우! 한 건 하셨군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엄청난 두뇌게임이네요. 식당에 가서 밥만 먹는 저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그런지 더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요즘 너무 덥네요~ 다가오는 주말에도 한 껀! 하시길! 화이팅!

오늘도 20명 한 건 했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ㅋㅋ
평창 가시는 준비로 바쁘실텐데 더운 날 건강 조심하십시오..
단체 손님도 이렇게 잘 될때는 어떤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나 싶어요..ㅎㅎ

친절하되 자신있고 음식도 맛있는 곳이라면 충분히 갈만하네요 :) 입소문으로 회식의 성지가 되길 바랍니다.

딱 그 집이 우리집!!
친절하되 자신있고 음식 맛있는 집!!!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ㅎㅎ

하나씩 전진해서 목표를 달성해내는 스토리. 속이 시원하네요 ㅋㅋ

손님의 마음을 파악해서 맞춤제안까지 하시다니 방법을 잘 아시네요. ^^

이렇게 한번 성사되면 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항상 이렇게 잘되는 건 아니라는 게 문제긴 하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