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 - 오래전에 썼던 시시한 시들

in #bus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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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에 가입하면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산문 부류의 글은 거의 써 본 적 없지만 시는 예전에 써봤기 때문에 가능하지 싶었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 오랜 시간을 두고 발효시킨 묵직한 표현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공기 중의 부유물과 다름없다. 쑥스럽고 창피한 글을 그래도 올리기로 한 것은 혹시 사람들이 칭찬이나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볼 만 하다고 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과 더 중요하게는 시 외에 문자로 전달할 만한 나만의 컨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는 건지 먹는 건지 잊을 정도로 글과는 관계없이 살아와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거지로 한 편을 썼다. 쏟아내면 느낄 수 있는 허무하고 나른한 쾌감을 아주 오랜만에 맛보았다. 옛날에 썼던 시들도 뒤적거렸다. 20대 때 썼던 시 몇 편을 포스팅했었는데 [오마주 프로젝트]에는 이것들을 먼저 소환하고 싶다. 사실 이런 시시한 시를 쓰기 위해 밤잠을 설쳤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글 올리기를 클릭하는 것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뻔뻔해졌다. 그리고 이런 시는 쓰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건조주의보

바삭거리는 과자처럼
하늘이 부서진다
절구통 속 썩은 빗물도 말라가고
썩은 초가지붕도 무너진다

흙먼지 날리면서 시야를 가린다
산등성이 고라니 한 마리 말라 죽은 뒤
소나무도 등을 굽었다

기다림을 안다면
꼼짝없이 타 죽어도 말이 없지만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 마디는
단지
건조주의보

밤낚시

머언 기차 소리 달려드는 밤에는
땅끝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린다
무심한 낚싯대 끝에 하세월이 대롱댄다

풀벌레 우는 맛에 기다림을 잠시 잊고
배낭처럼 메고 다닌 버거운 인연마저
가물치 방생하듯이 훌훌 털어 속죄하고

산처럼 묵직하게 하늘처럼 고요하게
하룻밤 목석으로 잃은 것이 사람이면
미풍과 고기 두 마리 내게 남은 전부였다

꿈꾸는 물위에서 졸고 있는 낚시대는
송사리 물질하는 자장가를 들었는지
수초가 부끄러워서 보듬기를 바라는지

새벽녘 꽁지 따라 기차 소리 달아나고
물안개 이불걷어 소금장수 눈 비비면
내버린 흔적들 찾아 되돌아서 떠나겠지

눈쌓인 마을

새색시 소매 끝처럼 팔랑거려서
사뿐히 절하고
햇빛이 댕기 풀어주면
수줍은 눈물 반짝거렸다

모가지 밑바닥에서
터져 나오는 하얀 설움
하얀 순수

백지장에 옮겨 놓은 대지의 흔적이
작별인사 같았던 눈부신 아침이었다

[오마주]프로젝트로 재 발굴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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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mt님 글 처음 본 게 지리산 종주기였는데, 그 때, 이 분은 산꾼이 아니라 문학도같다라고 느꼈는데, 역시 그랬군요 ...

최근이네요.. 오랫동안 이웃으로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자란 글인데 최상급으로 말씀해 주시니 쑥스럽네요..ㅎㅎ

지난 글이나 사진을 꺼내보면 당시의 추억이 새록 생각나곤합니다. 당시의 감성을 잘 읽을 수 있어 좋았던거 같습니다^^

20대에 저런 감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연애에는 잼병이었다는 걸 인증하는 겁니다..ㅎㅎ
그래도 내 젊은 시절 한 페이지겠죠..

ㅎㅎㅎㅎ 드뎌 시 재개봉하십니까? 잘하셨어요! 넘 그리웠거든요. 일케 다시 보니 집나간 며느리를 다시 만난것처럼 반갑습니다 ㅎㅎㅎㅎ
(마지막에 omaju 태그 추가하세요)

제시카님이 강력 원하셔서 재개봉했습니당...ㅋ
집나간 며느리 아지 몇마리 더 있는데... 오마주 같은 좋은 기획이 한 번으로 끝나면 안되잖아요...ㅎㅎㅎ
태그 추가할게요..ㅋㅋ

태그만 추가할게 아니라 오마주 프로젝트하시는분 @stylegold 님한테 댓글로 알려줘야하나보네요. 전 그분 덕분에 오마주 시작했어요. 옛글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ㅎㅎ

시를 읽으면서 차분하고도 순수한 기분이 들어 좋았습니다.
지금 쓰는 시는 어떨지 궁굼해졌어요.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요즘은 시가 잘 안 나와서 걱정입니다..ㅎㅎ

유피님의 블로그를 처음 방문했을 때 시를 보고 클릭했었는데.. ㅎㅎ
오랜만이네요. ㅎㅎ
그러고보니 유피님을 알게된지도 꽤 된 것 같네요! ㅎㅎㅎ
주말 화이팅하셔요!!

토요일이라 댓글도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가서 달게 되네요..ㅎㅎ
씬님과 인연도 벌써 몇 달은 지나갔죠..
그동안 스팀잇에도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었네요..
이번 주말 부자되십시오..ㅎㅎ

언어란...
참 신기한거에요
적절하게 사용하면 감동을 주니...^^*

헉 감동까지.... 완전 제가 감동했습니다..ㅎㅎ
부족한데 잘 봐주셔서 고맙습니당...ㅎㅎ

와~넘 잘쓰셨어요.'건조주의보' 좋네요^^

오 이런 직설적인 칭찬,,,, 고맙습니다.. ㅎㅎ

시가 멋집니다.
재능이 많으시군요.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불이님..
재능...gift.. 주실라면 좀 더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주셨으면 참 좋았겠다라고 생각한답니다....ㅠㅠ
스팀에서 즐기기 위한 것인데 뭐든 쓸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겠죠..ㅎㅎ

'이런 시'는 다시 쓰셔도 됩니다~!!!ㅎㅎㅎ
개인적으론 '밤낚시'가 젤 좋구요,
표현은 '햇빛이 댕기 풀어주면/ 수줍은 눈물 반짝거렸다'.. 엄지척!!^^

아우 고맙습니당.. 예전에 쓰고 나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무신 바람이 불어서 스팀에서는 막 공개하네요..ㅎㅎ
이런 칭찬을 기다린 거겠죠?? ㅋㅋ
스팀잇이 저같은 망둥이도 펄쩍 뛰게 만듭니다..ㅎㅎ

망둥이..ㅋㅋ
열심히 뛰어주세요~
그래야 저같은 꼴뚜기도 뜁니다~!ㅎㅎ

등 굽은 소나무, 미풍과 고기 두 마리...
'수줍은 눈물'이라는 표현이 멋지네요^^

보시는 분들이 그저 편안하게 보시고 잠시라도 위안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겠네요..
고맙습니다. 요호님..ㅎㅎ

시 쓰시는 분이셨네요.
전 '눈쌓인 마을'이 좋네요 ^^

요즘은 시가 잘 안 써진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ㅎㅎ
오죽하면 오마주를.....ㅠㅠ
그래도 예전 시들을 보니 왠지 뭐든 쓸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요즘은 시가 잘 안 써진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ㅎㅎ
오죽하면 오마주를.....ㅠㅠ
그래도 예전 시들을 보니 왠지 뭐든 쓸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처음에 비해서 정말로 부끄럽지 않아진다는 뻔뻔함! 그게 우리 스티미언들이 갖는 공통점일까요 ? ㅎㅎㅎ 저도 그저그런 글들을 자주 올리는 것 같아요 ㅋㅋㅋ점점더 그러나 sadmt 님의 시는 좋군요 ㅎㅎㅎ 잘보고가요.

내 나름 포스팅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는 하는데 신경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문제이긴 하네요..ㅎ
그래도 으쌰으쌰해서 스팀 날아가는 날까지 재미나게 지내야죠..

나른한 쾌감을 자주 맛보세요^^

그러면 좋겠는데 사실 요즘은 잘 안돼네요..

밤낚시가 인상이 깊어 몇 번을 읽었네요.
방생한 버거운 인연이 다시 낚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어요.

쑥스러운 시들인데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놔 준 물고기가 또 잡히면 그 물고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수없는 물고기겠네요..ㅎㅎ
생각해보면 가물치는 먹어야 되는 건데 왜 거북이라고 안하고 가물치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ㅎㅎ

아니 무슨 쉐프가 이런 시를 씁니까ㅜㅜ

북키퍼님은 무슨 과일 유통업자가 그런 글을 씁니꽈..
수출도 하나요??

ㅋㅋㅋ 수출은 무슨 ㅋㅋ 술이나 쳐먹지말고 뭔갈 하자는데 의의를 두고.. 우리동네만 섭렵 중입니다 ㅎㅎ

밤낚시 정말 오랜만에 읽는 시네요.
다시 읽어도 정말 좋은 시에요 새드님 ㅋㅋ

처음 포스팅할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액타님이 계셔서 참 든든했다죠..ㅎㅎ

밤낚시 낭송해주세요! 에예예!

헐,, 흠흠,, 낭송 들어갑니다..

나앙소옹

아무래도 저에게는 아재 dna가 듬뿍....

나만의 컨텐츠가 없다니요. 일기를 얼마나 잘 보고 있는데요.

산문 부류의 글은 거의 써본적이 없는....

그럼 일기는 뭔가요? 완전 글 잘쓰신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었는데 이런 시까지 있다니....
피쉬님 엄지 엄지 엄지척!!!^^

ㅋㅋ 넘 띄워 주시는데요.. 에잇 걍 하늘까지 올라가 버릴랍니당..
스팀잇이 쓰게 만드는 동기를 자꾸 부여하는 것 같아요..

시 좋은데요??
계속 쓰시길 응원합니다 ^^

백짓장에 옮겨 놓은 대지의 흔적이
작별인사 같았던 눈부신 아침이었다.

고맙습니다. 요즘 시가 잘 안된다는 함정이 있긴합니다..

시를 쓴다는 거 자체도 그리고 이렇게 좋은 시를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은 자제를..ㅠㅠ
시는 정말 그 상황을 상상하게 되는 멋진 힘이 있는 거 같아요.
눈쌓인 마을 시 너무 좋네요 ^^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참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편안한 주말 오후 되세요..ㅎㅎ

저는 형님 시 속에...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 오랜 시간을 두고 발효시킨 묵직한 표현들

이게 보이는데요. 정말 좋은 시입니다! 아니 좋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시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최상의 칭찬 땜에 코가 막 자랍니다..ㅎㅎ
많이 부족한데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스팀잇이 참 좋네요..ㅎㅎ

건조주의보 인상적입니다. 여러 존재가 사라지고 죽는 비극이 '건조주의보'라는 한 마디로 정의되는 마지막 부분. 죽음과 존재의 사라짐도 슬픈 일이지만 그 개별적인 사연을 가진 죽음들이, 단 한 마디로 뭉텅그려 정의되는 더 깊은 슬픔이 감지됩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썼을 당시 개인적으로 삭막한 경험을 하고 난 이후라고 기억합니다. 지방 어느 구석에 있었구요. 뭐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조금 반영되었나 봅니다.

머언 기차 소리에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네요. 대단합니다.!

고맙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인데 힘이 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