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영화 이야기 - 보헤미안 랩소디,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in #kr6 years ago (edited)


movie_image.jpg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



    Queen  

1985년, '라이브 에이드'의 그 거대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는 뒷모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제된 그날의 프레디 머큐리와 무대, 의상을 모두 소환하며 반가움으로 포문을 연다. 오프닝은 순간적인 아이스 브레이킹을 통과하며 낯설음에서 반가움으로, 그리움으로 관객의 감정을 빠르게 바꿔놓고, 곧장 더 낯선 시절, 퀸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1970년으로 넘어 가지만 이미 누군가에게 쇼는 시작되었다. 머릿속에 그날의 공연, 그날의 무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적절하고 선물 같은 오프닝은 없을 것이다.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프닝이 빠르게 지나간 후부터 영화는 놀랍도록 영화적 야심을 버린다. 최후의 20분, 다시 라이브 에이드 무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영화는 1970년부터 1985년까지 있었던 퀸의 결성 과정과, 공연, 성공, 갈등을 시간 순서대로 스케치할 뿐, 거기에 특별한 극적 긴장감이나 영화적 트릭을 넣고 가공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를 끌고 가는 건 8할 이상이 그 시절 퀸의 음악(과 그 음악에 반응하는 관객)이고, 나머지는 빙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만큼 기가 막히게 실제 인물을 재현해낸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이다. 이미 전설이 된 그들에 대한 헌사가 지나쳐서 영화가 겸손해진 것일까, 아니면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진 것일까?

movie_image (1).jpg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결국 일체의 영화적 트릭을 배제하고, 모든 일화를 단순 스케치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논란이 될 법한 내용에 전혀 무게를 두지 않으면서, 다소 심각해질 수 있는 모든 테마가 관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가볍게 증발한다. 이민자 출신, 가족 갈등, 종교, 동성애, 에이즈까지 프레디의 일생에 있었던 모든 갈등 요소를 다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 갈등의 순간마다 적절하게 퀸의 명곡을 깔아주면서 그것으로 아쉬운 부분을 채워 나간다.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제작에 깊이 관여한 점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건, 본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전개하는 과정에서 더 보여줄 것과 덜 보여줄 것을 직접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사실이다. 뒷 이야기로 전해진 것은 동성애 성향이 강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프레디 머큐리의 동성애자 생활과 타락, 짐 허튼과의 관계를 통한 회복을 좀 더 직설적으로 다루고 싶어 했지만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의 반대로 갈등이 심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런 충돌도 있었을 법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스트레이트 워싱 논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촬영 2주 분량을 남겨놓고 영화에서 물러났고, 촬영 소스만 남겨 놓은 상태에서 최종본에는 관여하지 못 했으니 브라이언 싱어가 원래 구상했던 영화와 어떻게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2주의 촬영 기간에 어떤 부분이 촬영되었느냐에 따라 영화가 꽤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매우 심심한 데다가, 지순한 첫사랑을 뮤즈로, 타락한 팜므 파탈을 남성으로 대체한 익숙하고 진부한 삼각 구도로 프레디 머큐리의 사랑과 일탈을 그려 넣고, '그땐 그랬지'라는 부담없이 친숙한 플롯으로 '락스타의 일대기'를 나열함으로써, 특별한 주제 의식이나 연출 의도가 모두 사라진 채, 다큐멘터리보다도 무미한 영화가 되어 버린다.

5bdbbc64220000e503dda425.png
<사진 출처: 허핑턴 포스트>

하지만, 정말 어이없게도 이 영화는 관객의 가슴을 뛰게 하고, 누군가에겐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놀라운 일은 이 영화의 모자란 부분을 관객이 직접 채운다는 점에 있다. 퀸이란 그룹을 몰라도, 객석에 앉아만 있으면 '내가 이렇게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익숙한 멜로디들이 있다. '라이브 에이드'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무대의 똑떨어지는 재현이 반갑다. 그리고 거기에 40년전 추억속에 있는 내가 겹쳐진다. 그 시절음악과 함께 그 시절로 돌아가는 120분의 타임 트래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이 영화는 가지고 있는 숱한 단점을 뻔뻔하게 덮는다. 그리고, 마지막 20분에 그 단점들을 완전히 잊게 하는 마술을 부린다.


"Nothing really matters..."

영화의 최후 20분은 다시 웸블리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장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영화는 실제로 20여분간 진행된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 퀸 공연 장면을 피아노 위의 맥주컵 위치까지 정확하게 재현해낸다. 이 순간을 위해 영화 전체가 달려온 것처럼 공연 현장의 전율이 전해지고, 거기에 합성으로 구현해낸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과, 라미 말렉을 비롯한 배우들의 재현이 합쳐지면서, 영화 전체가 아무리 함량 미달이라도 이 20분 만큼은 지적할 수 없는 가공할 순간이 되어버린다. 물론 영화의 힘이라기 보다는 실화의 힘이고, 음악의 힘이다. 그렇다고 해도,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이 아쉬워지지 않는 것은 이 장면 때문일 것이다. 욕이 나올만큼 부족한 영화가 극장을 나올 땐 만족스럽다 못해, 눈물이 나는 신기한 영화, 관람을 추천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라이브에이드에서 끝나지만, 이후 5년 정도 이어진 프레디 머큐리의 삶은 자막을 통해 짧게 언급된다. 그리고 'Don't stop me now'와 'Show must go on'까지 2곡의 노래가 크레딧과 함께 이어지니까 영화가 끝났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끝까지 자리 지켜주길 권하고 싶다. 쇼는 멈추지 말고 계속되어야 하니까.



 트리비아


 베이시스트 존 디콘 역의 배우는 '조셉 마젤로'다. 11살 때 쥬라기공원을 찍었던 그 깜찍한 남자 아이. 실제, 존 디콘과 너무 닮아서 놀랍기도 한.
ixd1dt.jpg

  보헤미안 랩소디를 퇴짜놓은 EMI의 고위 관계자는 마이크 마이어스. '웨인스 월드'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로 오프닝을 열었던 그 배우. '웨인스 월드' 오프닝을 보면 마이크 마이어스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첫 소절이 '스카라 무슈'였다. 이 영화에서는 본인이 '스카라 무슈가 대체 뭐야?'라고 말한다.
waynes-world-563x360.jpeg

 'I want to break free'의 그 괴이한 드랙퀸 뮤비는 실제랑 똑같다. 하지만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드랙퀸이 라미 말렉의 재현보다 훨씬 더 괴랄한 느낌이다. 콧수염까지.
5819FCBB-late-queen-singer-freddie-mercury-on-i-want-to-break-free-music-video-it-still-makes-me-chuckle-every-time-i-see-it-rare-bbc-1-audio-interview-streaming-image.jpg

이번주 라디오 방송 주제는 'Queen' 특집으로 이어갈 예정.

Layout provided by Steemit Enhancer
Sort:  

앗~! 요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용~!

어제 관람하여 상세히 정독했어용~!
영화 관람전에는 어떠한 글과 심지어 트레일러와 포스터도 안보려는 블루엔젤 ㅋㅋ
선입견과 편견 없이 영화 만나려는 블루엔젤~!

퀸 음악만이 영원히 남을 영화였어요~!

행복한 화욜 보내셔용~^^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음악과 관객이 다 한 영화예요 ㅋ

그렇죠~ ㅋ

늘 고민해야 할
재연과 재현을 넘어
서사를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많은 부족함이 남았어요~!

번역 자막 또한 최악이었죠~! ㅠㅠ
어찌 퀴어를 퀴어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번역가의 주관과 대중성을 의식한
자의적으로 게이라는 번역을 함~!
이 번역가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함~!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우왓.. 황석희가 욕을 먹다니 ㅎㅎㅎ

뜨아~!
필명 작은평화 시절 그립숩니드앙~!
대중 브랜드 번역가 변한 모습과 태도는 최악이죵~!
시사회 후 번역 확인 및 제안 모두 묵사발
초기에는 모두 감안하다가...ㅠㅠ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블루님 뭔가 영화계에 깊숙하시군요 ㅋ

뜨아~! 비밀 아닌 안비밀~ ㅋㅋㅋㅋ
다른 번역 작가님들도 어마어마하게 싫어하드군요 너무 대중성에만 치우쳐
이제는 번역가로서 땡입니드앙~!

이 작가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단순 번역 대중 봇에게는
가와세나오미 감독님의
<빛나는> 작품을 꼭 강제 필람시켜주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제일 최악은
블레이드 러너 번역~!

껍데기가 뭡니까????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블루엔젤 스팀잇 시작 연결고리도 ㅋㅋㅋㅋㅋ
도대체 이 번역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번역한거임 구글링하다
마나마인 스팀잇 글에 낚여 시작~! ㅋㅋㅋㅋㅋ

Posted using Partiko Android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서 프레디의 목소리는 마크 마텔일걸... 합성이 아니고.

합성입니다. 라미 말렉의 목소리를 섞었다고 해요. ㅎ

다시 알아보니, 세명의 목소리를 때에 따라 섞어 썼다네...

와.. 형 글 잘쓴다!! 나도 이거 '영화는 좋다'에서 소개 영상보면서 이렇게 많은 곡들이 다 퀸 노래였다니... 하고 놀랐는데... 학창시절 사탄음악이라고 해서 안 들었건만 왠걸 거의 다 들어본 노래야...ㅎㅎ

오늘은 고양이 대신 이거로 ㅎㅎㅎ 난 국민학생때 저 라이브에이드와 '라디오 가가' 공연으로 프레디 머큐리를 처음 알았는데 정말 어린 마음에 컬쳐 쇼크가... 대단했지. 마돈나, 보이조지, 마이클잭슨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저 찐한 얼굴에 러닝셔츠, 가슴털... 뭐 저런 아저씨가 저런 예쁜 목소리를!!!

오!! 이번도 꼭 본방사수해야겠네 ㅋㅋ
내가 6개월을 기다려온 영화!!
이번주에 보러감 흐흐흐흐

두려움 없이 함께 전율하도록 해 ㅋ

저두 어제 스크린 x로 보고 왔어요
라이브에이드 공연장안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다녀와서 유투브로 그때 영상 찾아보고
영화와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써놓은 블로그도 찾아보고
퀸은 노래만 알았지
이런 이야기들은 전혀 몰랐는데
새로운사실을 많이 알았네요~
전 영화 너무 좋았어요^^

좀 더 잘만들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죠 ㅎㅎ

볼까말까 고민중인데 보러가는게 맞겟죠..?

스팀잇을 로그인하게 만들다니. ^^ 영화 보고 댓글 다시 달러 올게.

ㅋㅋㅋㅋㅋ 비번을 잘 보관했군

이런 그레있 영화를 ㅎㅎ
잘보고가 횽!

영화는 그뤠잇은 아닐망정 필견이라는 ㅎㅎ

'I want to break free'

고등학교 시절 가사도 모른체 흥얼거렸던 노래입니다.
애런님 리뷰를 보니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보세요 꼭 ㅎ

역시 영화방송인의 면모~~ 아론형 ㅎㅎ
퀸은 언제봐도 반가워 ㅋ

형 오랜만이야. 음악인 뀨형 ㅎㅎ 잘 지냈어?

그럼 잘 지냈지. 아론형은 꾸준히 내가 동태를 살피고 있었고 ㅋㅋ
내가 댓글을 안써서 그렇지 꾸준히 남들에게 보팅은 날리고 있었다구 ㅋ

살아있네 형 ㅋㅋ
형의 최근? 퀸 포스팅 라이브 에이드 동영상덕에 오늘 보헤미안랩소디 더 즐겁게 보고왔어
근데 포스팅은??

아 아오형 내 블로그의 첫페이지에서 보이는 따끈따끈한 포스팅을 또 봤구나~ ㅋㅋ얼마를 쉰거야 ㅋㅋ

와 멋진 영화평론같다 아론형~~~난 퀸을 잘 모르지만 나도 보러갈려고 ㅎㅎㅎ

학교 전공이 영화평론이었어 ㅎㅎㅎ

영화보고 옴!
기저귀 안차고 갔으면 큰일날뻔했어 ㅋㅋ
진심 ㅠㅠㅠㅠㅠㅠ 계속 전율이 ㅋㅋ

라디오도 본방사수!!
결국 6분짜리곡은 현대에서도 미친짓인가 ㅋㅋ
살짝 기대했는데 ㅋㅋ

보헤미안 랩소디는 다른 코너에 나갔어 ㅎㅎ 미안

형 포스팅이 너무 고급지다...
보헤미안 랩소디 곡이 너무 어려워 ㅋㅋ
이 영화 꼭 봐볼께 ㅋㅋ

잡지 방식 편집을 흉내내봤어 ㅎ

퀸을 전혀 모르던 20대에게도 멋진 영화였습니다.
좋은 후기 잘 보고 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