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다 - 허은실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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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다>

사타구니께가 간지럽다
죽은 형제 옆에서
풀피리처럼 울던 아기 고양이
잠결에 밑을 파고든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더니
콧망울 바싹 붙이고
허벅지 안쪽을 깨문다
나는 아픈 것을 참아본다
익숙한 것이 아닌 줄을 알았는지
두리번거리다
어둠 쪽을 바라본다
잠이 들어서도
입술을 달싹인다
자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들의 꿈은 쓴가
더듬는 것들의 갈증 때문에
벽을 흐르는 물소리
그림자 밖에서 꼬르륵거리고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詩 허은실

아마 백번은 더 읽은 듯 하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박혀,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곁을 주지 않던 아기고양이가 잠결에 와서 내 사타구니께를 깨물더니 곤히 잠이 들어 꿈을 꾸는지 입을 달싹인다. 익숙하지 않은 곁을 두고 잠이 든 고양이의 꿈은 쓸까. 더듬는 것들의 갈증... 이란다. 타인을 더듬는 것들에게 갈증이 존재한다는 작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마음을 꺼내 놓는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 저는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근데 요새는 시를 읽는 순간이 참 좋습니다. 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말이 없는 친구의 표정이며, 그 친구의 감상이며 시선입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친구를 내가 혼자서 조용히 떠올리고 그의 짧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그 친구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하루를 떠올리며 가장 후회하는 시간은 바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던 하루의 어떤 시점입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내 마음이 많이 전달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나이가 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깨닫습니다.

가끔은 옅은 미소가, 말없는 움직임이 그 친구의 의사이며 메시지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다다르면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인 것입니다.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시인의 상념과 말할 수 없는 고뇌를 보며, 급기야는 내가 처한 현실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시는 계속 보아야합니다. 읽고 읽고 읽다보면 그러한 것이 보일 수도 있고, 비단 작가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독자만의 해석에 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내가 더듬고 있는 타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도 모르게 내게 파고들어 늘 그러하듯 깨물며 잠드는 고양이가 있는지 떠올립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고양이의 잠들며 입을 달싹이는 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그 꿈을 궁금해 한적이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합니다.

그러다 깜짝 놀라, 내 지문은 아직 남아 있는지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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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으음 먼가 울림이 있네요... 사람사이의 관계라는게... 어떻다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저 읽는 내내 울림이 진했어요. 금요일 밤에 올릴 글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꼭 올리고 싶었던 글이에요.

우리는 타인이라는 빈 곳을 더듬다가
지문이 다 닳는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하고 마음 한 켠이 아픈 구절이네요..ㅜㅜ
학창시절을 벗어나 각자의 삶을 살면서 마음은 아닌데 어긋나고 서로를 원하는 타이밍이 맞지 않고 그렇게 서운한 감정이 쌓이고요. 그래서 요즘 제가 꽂힌 단어가 '서로' 였어요. 관계에 대해 새로이 깨닫는 요즘입니다.
타인의 빈곳을 만지며 지문이 닳기보다는 나를 채우자고 생각했어요 - 너무 좋네요 이 시의 표현이ㅎㅎ

@icemilktea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서로’라는 말이 또 제 마음에도 와닿네요. 타인은 기대기도, 나에게 기대게 하기도... 나름의 이유로 인해서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적절하게 나, 우리가 아닌, 그저 타인으로 남겨 두어야 할 때가 많은것 같아요.

시는 계속 보아야합니다. 읽고 읽고 읽다보면 그러한 것이 보일 수 있고

저도 그렇게 해요. 그러면 조금이나마 시에 스며 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읽었을 때믄 도무지 모르겠더니 이젠 제 스스로 이해하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됐어요.

시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고 읽는 때에마다 느낌이 달라서 참 신기해요~곁을 내주지 않는 아기고양이가 파고들어 계속 되고 싶어 아픔을 참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비슷한 것 같네요~

저도 같이 느꼈어요. 고양이... 로 표현된 그... 그녀... 그들

사람과의 관계에는 다른 사람이 주는 아픔도 참아내야 결실이 있는 것 같아요. 지문이 닳도록 타인을 만질 때 타인도 나를 위해 아픔을 견디고 있겠지요? 시에는 참 의미가 함축적이라 두세번 생각하게 되네요~^^

저는 시가 참 어려웠는데, 나이가 드니 시가 좋아지더라구요! 좀 여유로움이 생겨서일까요 ㅎ

아마도 그런것 같아요. 뭐 여전히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나이를 이만큼 먹었으니 마음이 여뉴로워진건 사실일듯 해요^^

많이 공감되는 이야기에요~
친구와 수다로 공감을 하지만, 결코 이야기의 반이 쓸데 없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기도 하지요~~ 이야기의 끈을 끊지 않기위해 발악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중에서 말실수라는것들이 튀어나오지요~~
말을 하더라도 정말 한번 더 생각하고 소중한 말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네요~~

저도 그래요~ 답글 감사해요 늘~

아주 좋은 시선입니다. 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은실 선생님의 시는 종종 타인을 관찰합니다, 아니 타인을 관찰하다가 결국 시선은 자기에게 와닿기도 합니다.

시는 어렵습니다. 저도 종종 다른 사람들의 시를 읽으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여백을 문지르다 도저히 닿지 못하겠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어를 읽고 곱씹다보면 소화가 되곤 합니다. 소화는 결국 외부와 나의 교감 - 혹은 그래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재해석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씨를 뿌리면, 잎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삶과 시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사람마다 관점은 다를수가 있기에...)

문장 하나가 콕 박히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그리고 그 문장이 결국 그 시를 해석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네 모든 글이 그런것 같아요. 아무리 긴 글이라해도 한 문장이 가슴이 확 박히는... 그 글로 시 전체를, 책 전체를 기억하기도 하지요.

저도 시를 잘 모르다가 빨책 덕분에 시가 좋아졌어요.

빨책이 여러모로 좋은 일 하네요^^ 저도 시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냥 혼자서 읽고 읽다가 처음 써보네요 이런 글...

하...그래서 저는 시를 사랑합니다
때론 툭 던진 그 단어에
머리 속을 채우고 단어를 씹고 씹어보죠
그리고 그 단어의 맛이 느껴지면
작가와 나만의 맛이 되니까요

표현이 좋습니다. 작가와 나의 것이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