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의 의무는 기성을 해체하는 일이오

in #kr7 years ago

#1
나는 어릴 때부터 기성(旣成: 이미 이루어짐. 또는 그런 것.)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이룬 기성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이가 성숙하네요. 어른스럽네. 똑똑하네요."

이런 류의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시절에는 더욱 더 '기성'에 박차를 가했다.

내가 생각하는 기성이란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단정'이다.

하나하나의 단정은 깊은 사색과 성찰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엔 단정 지을 주제와 소재가 너무나도 많아 그런 진중한 과정을 거칠 시간이 부족하고 귀찮기때문에.. 사색과 성찰이 없는 단정은 어떻게 지어지는가?

그야말로 속단이다.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내 마음 속의 편견을 유감없이 발휘하면 된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3학년 때 초등학교로 명칭 변경) 거수로 행해지는 조사가 많았다. 질문은 이렇다.

"집에 엄마 아빠랑 다같이 사는 사람 손 들어"
"집에 아빠랑만 사는 사람?"
"집에 엄마랑만 사는 사람?"
"둘 다 없이 할머니나 다른 친척이랑 사는 사람?"

이런 조사가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차치 하더라도 저 무개념의 방식은 8살 9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많은 것이 좋고 충분함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에게 손에 쥐어준 알사탕도 아니고 부모님에 대한 충분과 결핍의 상태를 저런 식으로 확인 하고 나면 그 어린 아이들의 마음 속에 어떤 편견이 남을까? 지금은 저런 야만적인 방식이 사라졌을 거라고 믿는다.

#2
우리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선택의 고민을 간소화 시켜준다는 점에서 좋을 수도 있다. 아니 사실 장점은 방금 말한 '고민의 간소화' 하나 뿐이다. 선택의 고민 과정에서 작용해야 하는 것은 가치 판단이다. 하지만 우리의 내부에는 기성의 편견만이 작용한다.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르쳐 주는 기관이 있는가? 당신은 장애인을 마주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나는 못 본 척을 한다.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못 본 척을 하는 것과 같은 감각과 정도로 못 본 척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같은 감각과 정도가 아니다. 못 본 척을 하고 안 하고의 의식이 전혀 없는 비장애인에 대한 내 자연스러운 행동과 분명히 그 존재감을 인식하면서 일부러 못 본척을 하는 장애인에 대한 내 행동은 차이가 있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미혼모에 대한 생각은 어떻죠? 나는 명칭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미혼모는 그냥 엄마가 아닙니까? 굳이 다른 이름이 필요할까요? 이 명칭은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거수 방식으로 당한 조사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되었으면 엄마입니다. 어떤 과정으로 엄마가 되었는지를 명칭으로 구별하고 싶으면 더 세밀한 기준과 더 많은 명칭들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고작 결혼 여부 하나로 엄마의 이름을 나누다니요. 이것은 편견의 탄생을 조장합니다.

#3
삶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답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기성세대입니다. 하지만 그 답은 정답이 아니죠. 기성복은 왜 기성복입니까? 85, 90, 95, 100, 105로 이미 옷이 만들어져 있어서 기성복입니다. 하지만 제 사이즈는 93인 것 같은데 이걸 어쩌죠? 매번 맞춤옷을 살 수 있는 돈과 가게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그냥 95를 입는 것이 서로 편한 일이죠. 바로 이 감각입니다. 개별의 특성을 반영시킬 수 없으니 뭉뚱그리는 과정, 여기서 편견이 탄생합니다. 처음에 말한대로 편견은 단정을 부르고 단정이 쌓여 기성이 됩니다.

개별의 특성을 하나하나 반영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최소한 편협한 시각이 생기지 않도록 합시다. 장애인에 맞는 대우란 사실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들은 장애인이 아니고 철수와 영희와 영수와 진우입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개별 존재입니다. 장애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어디 있습니까? 장애가 생기면 철수와 영희와 영수와 진우가 모두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자세'라는 모범답안에 똑같이 만족하게 됩니까?

한 명 한 명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해서 아닌 것으로 모범답안을 만들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그냥 함께' 살아 나가면 됩니다. 누가 길을 가다 넘어지면 가서 괜찮으시냐고 묻습니다. 휠체어로 넘기 힘들어 보이는 턱이 있으면 밀어 드릴 수도 있지요. 본인이 들기에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를 들고 가시는 할머니 짐을 잠깐 들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4
미혼모라는 명칭은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대체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엄마들에게 특별한 별칭이 없는 것처럼요. 누구의 편의를 위해 생겨난 이름입니까? 저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 중에 그 해체를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많이 외울수록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세상에서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요. 이미 만들어진 개념을 많이 떠들수록 생각이 깊다고 찬양 받는 세상에서 어려운 일일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어떤 편견을 만들어 내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는 그 편견과 단정을 물려주지 않아야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아직 기성세대가 아닌겁니다.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기성세대의 의무는 기성을 자랑스러워하고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성들의 가치를 다시 재보고 필요하다면 그 것들을 해체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철옹성 같이 쌓여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사실 장애인과 미혼모의 사례를 든 것조차 속이 상합니다. 저는 저 두 개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보고 있지 못 하다는 점에서 '편견을 가졌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저를 이상주의자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세상은 매우 요원합니다.

구본웅 화백의 친구의 초상.PNG

구본웅 화백의 '친구의 초상' 입니다. 모델은 시인 이상.

오해 하실까봐 첨언하자면, 기성세대의 이미지로 이 그림을 사용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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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사회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직관적이기도 하니까 뭐 폭력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리 정죄하진 않음. 인간성 그 자체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아마 이상의 이미지를 오해할 사람은 없을 듯?ㅋㅋ

헤헤..내가 괜한 걱정을 했군..! ㅋㅋㅋ

직관은 꼭 편견으로 부터 오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만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짐에 기인한 편집적인 직관이 편견의 다른 모습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합니다. 직관이 통찰이 되지 못하면 사고는 이미 굳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라 불리는 때가 오게 되더라도 우리세대가 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않게 된다면, 성급한 일반화로 만들어진 명칭은 좀 더 다른 편안한 이름으로 바꿀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을 가져봅니다.

말씀해 주신대로..사고의 유연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 감사합니다 ^^

멋진 글입니다.

짧지만 정말 감사한 댓글입니다. 자주 교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의 이미지를 오해할 사람은 없을 듯?ㅋㅋ2
(제이미님한테 개런티 내야할까...깨알 문학, 읽긴하는데 계속 댓글 못달고 있는데ㅠ.ㅠ)

기성이 단정이고 간소화의 편리함이 익숙해져 이미 전반적인 사회규범이 된 사례를 종종 마주합니다.
조금만 달라도 그건 틀렸다, 내지는 이상하다로 오는 직언을 직접 대면하면 먹먹할 때도 있어요.

대체적으로 간소화와 편리함이 수반되어 이것이 익숙함과 빠름.
과정이나 내면보단 결과와 보여지는 것에 주로 무게가 실리는 경우, 조금 쉬어가자고 한다던가, 주변을 둘러보잔 의미로 말을 건네면...대게 현실감각에서 처졌다거나 정신연령이 낮다로 치부된 사례도 봤네요.

단정에서 비롯된 선입견은 정말이지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기성과 단정 선입견에서 자유롭진 못한 것 같아요. 갈 길이 멀지만 가보는 중입니다. 좋은 글 매번 감사히 받아보고 있어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인데, 다른 생각이 드실텐데도 늘 제 글의 방향에 맞추어 생각해 주시고 좋은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배려의 마음은 늘 온전히 받고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티가든님!! ^^

다른 생각이 드는 경우가 (듣기 좋으시라고 하는 말이 아니고) 크게 없었답니다. 가든 팍님의 문장은 뚜렷한 의지나 견고한 생각이 들어있다고 생각이 되어 많은 생각을 파생하게 해주어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장 재밌는 건 개인적으로 제이미님하고 댓글 핑퐁?ㅎㅎ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뇌가 변화해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유추하는 쪽이 발달) 그런 측면이 있지만서도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어른이 더 멋지다는 것은 사실이죠.

결론적으로, 저는 기성 또는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 의무보다는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기성세대가 많을 수록 더 발전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죠 :D

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의무보다는 미덕을 스스로 행하는 이가 많아질 때 사회가 아름다워 질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모든 문제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우리 가든님... 애정하고

@홍보해

@홍보햐도 좋지만..애정해 주신다니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헤헤^^

개사원@garden.park님 안녕하세요. 입니다. @bookkeeper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기성'의 문제라기 보다 인간이 가지는 태생적 기질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네, 제가 이 문제를 기성의 문제로 보는 것조차 사실 하나의 단정이죠. 아직 식견이 부족한 입장이라 인간의 태생적 기질에 대한 부분까지 사고를 넓혀보지 못 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편견인 단정을 부르고....단정이 쌓여 기성이 된다...편견 요놈부터 처리를 해야겠네요!! 살다보니 '편의상'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없을순 없더라구요...그러더라도 그 편의가 편견이 되어버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려요!!

네, 너무 많은 부분이 편의를 이유로 뭉뚱 그려지는 세태때문에 글을 한 번 적어봤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저와 소통해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라는 명제를 머릿속에 단단히 넣고 다니는 수 밖에요. ^^; (그나저나 원래 착한데 나쁜척 하고 있는 거 맞네요.)

저는 행동이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글을 통해서 보이는 것의 반만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늘 목표입니다! 댓글 달아 주시어 기분이 좋습니다 ^^